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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디터 Aug 19. 2022

코시국 여행업계 존버 하기 vs 손절하기

코로나 학번은 불행하다지만, 코로나 사번은 불쌍하다.

너도나도 해외 나가기 바빴던 19년도,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들어간 여행업계.

당시 잘 나가던 회사에 들어가 신나게 회사생활을 배우던 중 갑자기 코로나가 터져버리며 직원들 얼굴을 채 외우기도 전에 대부분이 휴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나는 운이 좋게 살아남아(?)서 20년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코시국에 여행업계에서 버티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회사가 해외시장이 활짝 열려있을 때 벌어둔 돈으로 국내여행 팀을 꾸렸고, 그 밀물이 될지 썰물이 될지 모르는 파도 위에서 아슬아슬 버티는 뱃사공이 된 셈.


힘든 시기에 멋모르는 사회초년생인 나를 써주고 가르쳐주었던 시간이 감사했다. 침체되어 있는 시장에서 묵묵히 버티고 있는 회사, 이따금씩 회사 고인물들이 들려주는 멋진 회사 히스토리는 그 잘 나갔던 조직에 속해 버티고 있는 나는 행운이라는 달콤한 최면을 걸었다.

하필 팬데믹에 가장 취약한 업계에 사회 첫걸음을 디딘 나는 결국 ‘버티는 중’이라는 마법 같은 단어의 안정감에 빠져버렸다.


회사생활 스타트부터 시작된 코로나로 나에게 그려지는 사무실의 모습은 빈자리가 더 많은 게 당연한 공간이었다.

팬데믹 이전을 몰랐기 때문에 회사를 떠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자의든 타의든 ‘버티기’를 포기하고 ‘떠나기’를 택한 주변인들이 별로 부럽지 않았고, 백수는 아니라는 내 상황에 항상 안도했다.


하지만 그렇게 2년 정도 흐르니 과거에 젖어있던 고인물들이 하나 둘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도 멈춰있는 배는 안전하지 않다는 걸 느꼈나 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비어지는 책상들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급해졌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고 회사엔 연차를 내며 면접을 보러 다녔다.

내가 무시받을 스펙은 아니라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회사생활을 돌아보니 나는 별로 배운 게 없었다.

항해를 멈추자마자 탄 배에서는 내가 해본 것도 가본 곳도 없었다.

억울했다. 팬데믹 이전부터 내가 사회인이었다면 더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 더 나은 곳으로 점프해 업계를 떠났을 수 있었을까.


이 시국 속 나 같은 억울함을 가진 수많은 젊은이들이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내 젊음이 일에 대한 고생과 배움의 시간이 아닌, 버티는 시간으로 소비된 게 안타깝다.

무력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바쁘고 싶다. 20대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래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퇴사하고 비행기 표를 끊었다. 가서 ‘여행 에디터’라는 하고 싶던 일을 할 것이다.

돌아봤을 때 값진 선택이었다고 곱씹을 수 있도록 치열하게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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