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의 배경, 혼란에 휩싸인 국제정세
1917년, 제정러시아에서는 2월 혁명이 터졌다.
이 혁명으로 인해 차르(황제)가 폐위되고 공화정이 들어선다. 오랜 싸움 끝에 쟁취한 민주주의혁명이었다. 차르로부터 실권을 양도받은 사민주의자(멘셰비키), 자유주의자들이 공화국의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이들의 통치 기간은 짧았지만, 향후 러시아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중대한 시기임에는 틀림없었다.
당시 러시아사람들은 끝이 보이질 않는 전쟁과 빈곤에 지쳤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케렌스키는 당장 1차 대전에서 발 빼자는
대중의 요구에도 아랑곳 않고 항명 중인 전투병력의 전선배치를 지시했다. 이 밖에도 볼셰비키와 극우파의 갈등을 조율하는데 실패하는 등 혼란한 정국이 지속된다. 혼란을 대하는 임시정부는 무능했고, 대중은 분노했다. 1917년 10월, 레닌의 볼셰비키가 성난 민심을 추동하며 10월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다. 러시아의 사회주의혁명이 성공한 순간이었다.
볼셰비키는 숨 쉴 틈 없이 내전에 대비해야 했다. 레닌과 볼셰비키의 집권을 반대하던 자유주의자 중 일부, 극우파, 귀족, 상급군인, 지주가 군대를 조직한 것이다(백군). 백군은 전제정에 이어 민주공화정까지 뒤집어엎어진 정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들은 볼셰비키가 대중을 선동해, 기존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생각했다. 차르를 구슬리기도 하고, 또 차르에 맞서기도 하면서 민주주의혁명을 이끌었는데, 근본 없는 급진주의자들이 대중을 동원해 모든 걸 전복한 모양새였다. 이에 반발한 백군은 철저한 반공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다. 백군세력은 열세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에서 모스크바로 향한다. 백군의 거병을 파악한 볼셰비키는 트로츠키의 주도 아래 혁명군(적군)을 조직해 주요 거점을 탈환하기 시작했다.
1923년, 볼셰비키는 적백내전에서 승리한다. 백군의 패색이 짙어지던 1922년 즈음엔 사실상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했고 2년 뒤인 1924년에는 소비에트연방이 수립된다. 적백내전이 볼셰비키의 승리로 막을 내린 뒤 혁명지도자 레닌이 유명을 달리한다. 레닌은 살아있는 동안 노동자와 인민이 자발적으로 조직하고 참여한 소비에트(평의회)를 주목했다. 소비에트식 민주주의를 실험해 보고자 여러 정책을 도입했지만, 죽음을 앞두고는 공산당 내에 국가권력이 집중되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스탈린은 국가권력이 어디로 집중되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권력을 두고 트로츠키와 대립하던 스탈린은 레닌이 세상을 떠나자 당-국가로 집중된 권력을 거머쥐었다.
1918년, 러시아가 적백내전을 겪던 시기 독일사회는 독일사회민주당이 주도한 11월 혁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11월 혁명 이후 베를린의 소요사태를 피해 바이마르지방에서 제정된 헌법은 바이마르공화국의 근거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여는 듯했다.
그러나, 독일의 사회주의자 중 일부는 11월 혁명이 반쪽짜리 혁명이라 주장했다. 이들은 1919년 '독일공산당'을 창당하면서 민주공화정과 의회정치는 필연적으로 유산계급(부르주아지)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볼셰비키의 러시아 혁명과 마르크스주의의 원론해석을 근거 삼아 프롤레타리아독재의 필요성을 맹신했다. 이후 독일공산당은 극우세력과 갈등하며, 무력충돌을 빚는다. 여러 정치세력이 난립하던 시기, 독일사회민주당의 바이마르공화국은 여러 악재 속에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혼란을 제어하지 못한다.
지속되는 사회혼란 속에 아돌프 히틀러가 나치당에 가입하며 정계에 입문한다. 히틀러는 무솔리니가 주도한 검은셔츠단쿠데타에 심취했다. 자신 역시 그런 쿠데타의 주인공이 되길 원했고, 자신의 지지자들과 함께 길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대치하던 경찰의 발포로 희생자만 남긴 채 무산됐다. 폭동을 바탕으로 바이마르공화국을 전복하려던 히틀러는 자신의 방식이 먹히지 않자, 다른 전략을 세웠다.
독일은 1차 대전에서 패배한 대가로 승전국에 막대한 보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당연 독일 산하 식민지는 승전국에 의해 모두 해체된다. 1차 대전의 종전으로 확립된 베르사유체제는 전쟁에서 한발 물러난 독일에게 필요이상으로 가혹했다. 베르사유조약에 명시된 여러 규제와 영토 할양이 독일국민의 자긍심을 짓밟았고, 1921년에는 초인플레이션을 마주하면서 1달러 한 장이 약 4,210,500,000,000 파피에르마르크와 교환됐다. 독일화폐의 가치가 급락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하고 정부는 더 많은 지폐를 노동자에게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 나치당은 베르사유체제를 부정하는 것으로 독일국민의 지지를 받는 등 약진한다.
1929년, 결국 열강의 식민주의와 자유방임주의가 축적하던 모순이 폭발했다. 대공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폭삭 주저앉을 것처럼 불안정한 상황에서 불어닥쳐온 미국발 대공황은 독일인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모두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나치당은 대중의 분노가 향하는 지점을 정확히 캐치해 낸다. 나치당은 기관지를 통해 “유대인이 독점한 독일의 자본이 독일 국민의 고혈을 빤다"는 헤드라인을 내걸었다. 대중을 대상으로 프로파간다를 펼친 것이다. 나치당의 프로파간다는 효과적이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는 독일인 대다수가 당대의 사회혼란이 모두 "유대인과 사회주의자 때문"이라 믿게 됐다. 때문에 독일사회 곳곳에 유대인과 사회주의자를 혐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인종주의가 고개를 쳐들었다. 반공주의와 인종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시민도 여러 정치세력이 난립하며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분위기에 신물을 느꼈다. 독일인들은 유대인과 사회주의자가 어지럽힌 국가를 강력한 카리스마로 통제할 지도자를 원했다. 파시즘이 성장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열강에게 불어닥친 경제위기는 들불처럼 번졌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자유무역대신 보호무역을 택했고 이렇다 할 식민지가 없었던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은 경제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세 열강은 결국 파시즘과 군국주의를 바탕으로 팽창하면서 세계대전을 본격화한다.
게임문화에 대한 단상
지난 2000년대, 블리자드사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한국에서 대히트를 치면서 공론장이 들썩했다. 공영방송에서는 ‘게임중독에 빠진 우리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주제를 다루며 게임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대하기도 했다. 정치권은 이러한 흐름을 타고 게임을 사회악으로 취급해 왔다. 얼마 전에 폐지된 셧다운제도 게임문화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때 생긴 법제다.
그러나 우리가 체감하고 있듯이 게임의 발전은 우리의 문화가 윤택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게임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사람은 게임을 통해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나 문예를 재조명하기도 하고, 영화처럼 원작이나 실제역사를 재해석한다. 게임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사람에게 돌아갈 경제적 이윤은 덤이다. 게임공급자는 경제적 이윤획득과 자아실현을 동시에 성취하고, 게임소비자는 게임의 콘텐츠를 통해서 한 권의 책을 읽는, 아니 그보다 더 입체적인 간접체험을 할 수 있다. 이렇듯 오늘날의 게임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며 사람들의 삶에 기여하고 있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는 어떤 게임인가
렐릭이라는 게임제작사가 독소전쟁과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제작한 [컴퍼니오브히어로즈 2]는 역사고증과 캐주얼한 게임성이 공존하는 게임이다.
실제 역사처럼 게임에서도 진영이 나뉘는데, 추축진영으로는 독일국방군(대소련), 독일서부전선사령부(대영미)가 있고, 연합진영에는 영국, 미국, 소련이 있다. 당연하게도 적 진영은 아군 진영의 정 반대편에 위치해 대치한다.
게임이란 게 으레 그렇듯 이 게임 역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게임의 승리조건은 적 진영을 섬멸하거나 전장에 위치한 빅토리포인트(Victory point)를 점령해, 상대진영의 점수를 '0’으로 만드는 것이다. 맵과 전장에 표시된 빅토리포인트를 중심으로 여러 인력, 군수물자를 보급받는 점령지 역시 존재하기 때문에 구상해 놓은 전술에 따라서 시의적절한 병력배치와 컨트롤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이 게임의 구조는 점령목표를 두고 뺏고 빼앗기기를 반복하는 '공방전’인 셈이다. 따라서 소모되는 아군병력을 줄이고, 나의 전술에 대응하는 적군의 전술을 분석하며, 이를 바탕으로 적군의 전략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고로 게임이란, 5시간 동안 공들여 차려놓은 밥상이 엎어져도 멘털을 유지해야만 먹을 수 있는 진수성찬과도 같은 것이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 역시도 집요한 멘털을 요한다. 보병분대에게 거점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려놓고, 다른 분대에게 명령하기 위해 화면을 전환해 버리면 30초 채 지나지도 않아서 분대가 전멸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중대를 구성하는 유닛 하나하나의 생존과 베테런시(경험치)가 중요하기에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면, 손실로 이어진다. 손실이 반복되면, 게임 후반에서 경험치가 쌓인 적 유닛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아군병력을 세심히 살피는 것으로 자신의 멘털을 보존하고 기습이나 매복 등의 전술을 동원해 적 플레이어의 멘털을 흔드는 전략이 요구된다.
지휘관 콘텐츠를 중심으로
유리멘털 부여잡고 여러 난관을 거치다 보면 전선을 유지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중대의 지휘관을 선택하는 시점이다. 지휘관에 따라 강한 유닛과 스킬을 쓸 수 있는 탓에 지휘관 선택은 전세를 뒤집을 수도 있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또한, 각 진영의 군복이나 생김새 따위를 고증해 낸 지휘관 일러스트는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이럴 때면, 고증에 환호하는 밀리터리 덕후가 된 기분이다. 1000시간을 넘게 플레이하면서도 지휘관 콘텐츠는 늘 새롭다.
[컴퍼니오브히어로즈 2]가 발매된 2014년에도 지휘관 콘텐츠는 전작과의 차별화로 유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지휘관 콘텐츠가 이 게임의 핵심이라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인상적인 콘텐츠임에는 틀림없다. 지휘관 콘텐츠를 중심으로 이 게임과 전술을 소개하려는 의도는 여기서 기인한다.
이 연재를 시작한 이유?
나에게 있어 게임은 작은 비용으로 누릴 수 있는 질 좋은 여가생활이다. 가난한 대학원생에게 비싸고 고상한 취미란 그저 딴 세상이야기였기에 주어진 선택지는 유튜브, 운동, 독서, 게임이 전부다. 나는 넷 중에서도 게임과 가깝게 지냈다.
이전부터 게임을 주제로 글을 쓰고 싶었으나, 게임장르 중에서도 워낙에 마이너 한 장르의 게임을 즐겼기에 망설였다. 마이너 한 게임 중에서도 참혹했던 전쟁사를 다루는 게임이라 읽는 사람의 표정이 일그러질 것 같았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연재를 시작한 건 게임과 역사 속 군사전술을 이야기하고, 나름대로 구축해 왔던 사회관을 피력하기 위함이다.
하찮은 필력을 가진 사람에게 연재란 한 문장, 한 문장이 높은 장벽이다. 특히나 장문을 쓸 때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마이너 중에서도 가장 마이너 한 콘텐츠를 가져와서 글을 쓰자니 운을 띄우기가 어렵다. 이 연재가 습작모음집에 불과할지라도 글을 읽는 사람이 게임에 흥미를 가진다면 좋겠다. 사람들이 게임에서 멈추지 않고 세계를 사유한다면, 이 원고를 작성한 목적 중 일부가 달성된 셈이다.
* 참고자료
[요제프 괴벨스] 정철운 저
[혁명과 민주주의] 서울대 민교협 저
[사회주의] 장석준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