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bile Defense Doctrine)
독일국방군이 실제 전쟁에 적용했던 방어 교리 요약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국방군의 방어 교리는 전술 및 작전 이념인 "임기응변적 방어와 유동적 전투"에 기반을 두고 발전했다. 즉, 과거처럼 고정된 방어진을 치고, 적의 공격을 일방적으로 수비하는 상황을 피했다는 말이다. 독일국방군은 방어를 단순히 적의 공격을 막는 수동적인 형태가 아니라, 적의 공격을 흡수하고 빈 틈을 타 역공격을 전개하며, 전선의 주도권을 되찾는 적극적인 형태로 이해했다.
독일국방군의 방어 교리는 "딥 디펜스(Defense in Depth)"라고도 불린다. 방어선을 여러 겹으로 구성해 적이 첫 번째 방어선을 돌파하더라도 두 번째, 세 번째 방어선에서 저항을 지속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방어선 사이에는 유동적인 병력을 배치하여 적의 약점을 찾아 반격하거나, 돌파를 차단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크게 4가지로 요약되는
독일국방군의 방어 교리
1. 탄력 방어
적의 돌격을 정면에서 저지하는 대신, 고의로 일부 지역을 포기하며 적을 깊숙이 끌어들인 후, 기동력과 화력을 이용해 적을 포위하고, 섬멸하는 전술이다. 방어를 맡은 병력은 고정된 방어보다는 상황에 따라 후퇴하면서도 계속해서 적에게 손실을 입혔다.
2. 적극적 방어
방어를 단순히 공격 차단으로 국한하지 않고, 반격전술(counter-attack)을 통해 적을 격퇴하는 전술이다. 이를 위해 독일군은 기갑부대와 기계화 부대를 방어의 후방에 배치해 기동성을 극대화한다.
3. 화력 집중과 지역 방어
독일군은 방어를 위해 화력을 집중했다. 특히, 포병과 대전차무기를 적의 공세가 강한 지역에 집중 배치하여 적의 공세를 약화시켰다. 방어선은 일반적으로 "고정 방어"와 "유동 방어"가 결합된 형태로 운영된다. 전선의 전략적 요충지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고수했지만, 중요도가 낮은 지역은 유연하게 포기하거나 재조정했다.
4. 기갑 및 기동방어
독일군의 방어 교리에서는 기갑전력이 중요했다. 주로 기갑부대를 이용해 적의 측면을 공격하거나, 전선을 재구성하는 데 집중했다. 이로 인해 방어에서도 높은 기동성과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다.
독일국방군 방어 교리의 장단점
독일국방군의 방어 교리는 기계화보병, 기갑을 활용한 기동성을 바탕으로 큰 효과를 봤다. 방어전에서도 적군이 주요 타격지점으로 삼은 아군영역에 화력을 몰아 전황을 뒤바꾸기도 했다. 이 밖에도 방어 교리가 다층적이고 임기응변적이어서 다양한 전장에서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이 교리의 단점은 지속적인 기동과 반격을 위해 상당한 병력과 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련을 상대로 전선이 넓어진 동부전선에서는 국방군의 병력 부족으로 효과가 미약했다. 대전 후반기, 연합군의 제공권 장악과 지속적인 압박에 직면하면서 방어 교리의 약점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독일국방군의 방어 교리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편이다. 독일국방군의 방어 교리는 이후 현대 군사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게임 속 기동방어 교리
실제 전쟁에선 요긴하게 써먹던 기동방어 교리가 게임에선 큰 비중을 얻지 못했다. 음식으로 표현하자면, 배추겉절이반찬쯤 되겠다. 겉절이반찬처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기동방어 교리 지휘관을 통해 호출하는 4호 지휘전차와 푸마 장갑차는 얇은 장갑과 단포신, 소구경주포로 인해 적 전차를 관통하기 어렵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4호 지휘전차가 주변 보병유닛에게 방어력 버프를 준다는 점이다.
게임 속 기동방어 교리 지휘관이 호출하는 유닛은 강력한 화력, 단단한 장갑처럼 직관적인 고성능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주변 유닛을 보조하는 간접지원으로 승부를 본다. 4호 지휘전차와 더불어 운용하는 푸마 장갑차가 단적인 예다. 푸마 장갑차는 적 진영의 장갑차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기동력과 화력이 준수한 편이라고 볼 수 있지만, 장갑차는 장갑차다. 게임 후반에 가서는 얇은 장갑 때문에 적 보병의 소총사격에도 체력이 금방 닳는다. 그래도 기동성이 좋아서 보병유닛이 열세인 거점으로 빠르게 달려가, 지원하는 식으로 운용할 수 있다.
기동방어 교리 지휘관은 반격전술(Counter Attack Tactics) 스킬로 보병의 거점 중립화속도와 점령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때문에, 각 분대에게 인력과 군수물자수급 거점을 빠르게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빅토리포인트를 노리는 운용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호출할 수 있는 정예보병이 없다 보니 거점을 두고 벌어지는 교전에서 우위를 점하는 일은 드물다. 이에 따라 아군 보병분대를 충원하는 속도가 관건이 된다.
국방군진영은 각 보병유닛의 빠른 전선 복귀를 위해서 하노마크장갑차를 호출한다. 하노마크장갑차가 있다면, 전선과 멀리 떨어진 본부로 후퇴하지 않아도 최전선에서 보병유닛의 티오를 충원할 수 있기에 그렇다. 여기서 기동방어 교리 지휘관은 하노마크장갑차를 기동관측소로 변용한다. 기동관측소로 변형된 장갑차는 적과 교전 중인 거점에 설치해 은신 기능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주변의 적 유닛을 몰래 정찰한다. 국방군에는 시야가 짧은 유닛이 많아, 유닛의 긴 사거리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면 방어교리 지휘관에
게 있는 정찰스킬이 꽤 유용하다.
4호 지휘전차와 푸마 장갑차가 적 전차의 타격으로 순식간에 삭제될 때면 많은 거점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거점을 포기하게 되면 자원수급의 감소로 이어지고, 수세에 몰린 아군의 희생이 더 커진다. 이때 지휘관의 특성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전화위복이 될 수도, 사면초가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지휘관의 스킬이 중요해진다. 다행히도 기동방어 교리 지휘관은 '기갑전술'이라는 스킬이 있다. 기갑전술 스킬은 전차 주변으로 연막을 치고 체력이 바닥난 기갑유닛의 안전한 후퇴를 보장한다. 게임 속 국방군 지휘관에게 으레 있는 스킬이지만, 방어교리 지휘관의 저성능 기갑유닛을 사용할 때면 전차의 생존력을 보장하는 기갑전술 스킬이 반갑다.
게임 속 기동방어 교리 지휘관은 특별한 보병이나 보병 특수무장이 없다. 독일서부전선사령부진영이나 국방군진영의 지휘관에게 흔해빠진 정예엽병 호출이나 게베어 43 반자동소총 지급도 없다. 유닛의 강한 화력과 튼튼한 체력으로 승부를 보는 독일진영의 고유특성을 본다면 "이렇게 무미건조한 지휘관이 또 있을까"싶다.
반역인가, 애국인가 : 기동방어 교리 지휘관의 양심과 신념
1944년 7월 20일, 독일 동프로이센에 위치한 히틀러의 지휘본부에서 폭탄이 터졌다. 누군가 히틀러를 사살할 목적으로 폭탄을 설치했음이 분명했다. 폭발이후 용의선상에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이름이 오르고, 군간부들은 대령을 찾는다. 군부는 조사 끝에, 폭발물의 주인이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임을 밝혔다.
독일국방군의 기동방어 교리와 슈타우펜베르크의 딜레마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북아프리카전선에서 독일군 참모로 복무했다. 1943년, 북아프리카전선에서는 연합군이 우세를 점하며, 독일군을 압박했다. 이에 대령은 상관에게 후퇴를 종용하고 기동방어 교리를 권했다. 그러나 히틀러가 '현 위치 사수', '무조건 공격' 지시를 내리면서 많은 부하를 잃는다.
1944년, 독일군은 북아프리카전선에서 이탈하며 수세에 몰린다. 동부전선과 서부전선 모두에서 압도적인 연합군의 공세에 직면한 것이다. 방어전술의 명수로 평가받던 독일국방군의 지휘관들조차도 지속적인 자원 부족과 병력 손실로 인해 방어선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히틀러는 열세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무리하게 소모하며 후퇴를 금지하는 명령을 반복적으로 내렸다. 히틀러의 고집은 기동방어 교리의 효과를 모두 상쇄했고, 전선 전체의 붕괴를 야기했다. 슈타우펜베르크는 이러한 전황을 정확히 이해했다. 기동방어 교리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히틀러가 망상에 사로잡혀 무리한 공격명령을 내릴 때면, 수많은 군인들이 희생되는 전장의 모습과 짙어지는 패색이 대령의 눈에 아른거렸다. 그의 눈에 비친 히틀러는 현실을 무시한 채 군과 국민을 파멸로 몰아가는 독재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애국심과 반역 사이의 경계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의 가치를 중요시했다. 나치 정권이 가져온 잔혹한 전쟁은 그의 신념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범죄였다.
히틀러와 나치정권에 대한 슈타우펜베르크의 문제의식은 분명, "반역"으로 간주될 게 뻔했다. 그럼에도 대령은 충성이 무조건적 복종을 의미하지 않으며, 진정한 애국심은 그릇된 길을 가는 조국을 바로잡는 데 있다고 믿는다. 대령은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반나치조직에 가담했다.
대령이 참여한 반나치조직은 재야인사, 국방군간부로 구성됐다. 이들은 독일에 민주주의원칙이 다시 한번 자리 잡길 바라며 목숨을 건 작당모의를 이어나갔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역시 반나치조직의 기조에 동의했고, 삼권분립과 같은 민주주의적 원칙과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조국을 위해서 무엇이든 행동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대령은 반나치조직에 가담한 지휘관들과 암살 작전을 계획했다. 대령이 폭발물로 히틀러를 사살하고, 그 혼란 속에서 독일정부에 포진한 나치당 인사를 체포한 뒤, 베를린을 장악하면 재야인사들이 새로운 정부를 수립해, 연합국과 평화협상을 시도하자는 계획이었다.
운명의 날 : 실패한 작전
1944년 7월 20일, 대령은 반나치조직의 계획에 따라 히틀러의 지휘본부인 늑대굴에 도착한 뒤 히틀러와 지휘관들이 모인 회의실에 폭탄가방을 내려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작전을 망친다. 폭탄가방의 위치가 히틀러로부터 멀어졌고, 지휘본부의 개방구조가 폭발의 위력을 약화했다. 히틀러는 경미한 부상에 그치고, 잠시간의 휴식을 취한 뒤 반역자색출을 지시했다. 그날 밤, 슈타우펜베르크와 반나치조직 구성원들은 친위대에 체포되어 처형된다.
그러나, 몇 개월 뒤인 1945년에는 대령을 처형했던 히틀러가 스스로 삶을 포기했고, 나치를 방조하던 국방군 장성들은 연합군에 의해 잇따라 처형되거나 전범재판에 회부되면서 종전을 맞이한다.
반역자에서 참된 군인으로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전쟁 중인 독일사회에서 반역자로 취급되어 처형당했다. 그러나, 종전 이후에 재평가받은 그는 단순히 독재자를 암살하려 한 인물이 아니라, 독일의 재건을 위해 목숨을 바친 참된 군인으로 인정받는다.
슈타우펜베르크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진정한 애국심이란 무엇인가? 공동선을 위해 독재자에게 맞선 행위는 반역인가, 아니면 더 높은 수준의 애국인가? 슈타우펜베르크 대령과 반나치조직의 선택은 단순한 반역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인간의 양심과 신념이 걸어온 발자취로 남았다.
*참고자료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벤저민 카터 헷 저
성 요한의 구호소 T story 개인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