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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마 Sep 17. 2022

걷고 싶은 길, 낙엽을 쓸지 않는 길

누구나 알지만 잘은 모르는, 정동 1

오래된 정동 이야기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 앞은 늘 많은 사람들로 소란스럽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길인 세종대로를 끼고 있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세종문화회관과 정부 서울청사, 서울 특별 시청 등 문화와 행정의 중심 건물들이 주변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코 앞의 서울광장에서 행사나 시위라도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귀를 찢을 듯한 앰프의 소음으로 얼른 피하고 싶어 집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한문의 왼편으로 돌아서 덕수궁길로 들어서는 순간 딴 세상이 펼쳐집니다.      


우선 구불구불 덕수궁의 긴 돌담이 정겹습니다. 이 길을 따라 이국적인 건축물이 줄을 잇습니다. 가을엔 노란 은행잎이 거리를 뒤덮습니다. 살아있는 근대 박물관이라 불리는 정동길은 서울시의 ‘걷고 싶은 거리’ 1호, ‘낙엽을 쓸지 않는 길’, 건설교통부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할 만큼 시민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학창 시절 흥얼거렸던 노래, 이문세의 ‘광화문연가’에도 정동길이 등장합니다. 정동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추억을 봉인해놓은 타임캡슐과도 같은 곳이지요.     

              

덕수궁(德壽宮)의 정문인 대한문(大漢門)에서부터 정동길은 시작됩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무시무시한 속설은 예전 이곳에 가정법원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원래 정동(貞洞)이라는 지명은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신덕왕후 강 씨(?~1396)의 능인 정릉(貞陵)에서 유래합니다. 고려 말 개경의 권문세족 강윤성의 딸인 신덕왕후 강 씨는 정치적 배경이 필요했던 이성계가 정략적으로 혼인한 부인으로 방번과 방석 두 왕자와 경순공주를 낳았지요. 자신의 아들 방석을 왕세자로 책봉하는 과정에서 전처 아들 이방원과 갈등이 깊어집니다.


태조는 신덕왕후를 끔찍이 사랑하여 도성 안에 무덤을 두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신덕왕후의 능을 이곳 정동에 만들고 원찰(願刹)인 흥천사를 두기까지 했는데요, 태종(이방원)은 새어머니 신덕왕후를 너무 싫어해서 태조가 승하하자마자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강등시키고 묘를 파괴하여 지금의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겨버립니다. 지금의 중구 정동 주한 영국대사관 자리를 원래의 정릉(貞陵)으로 추측할 뿐입니다.


또한 태조가 온갖 공을 들여 만든 정릉의 아름다운 석물들은 홍수로 유실된 광통교(廣通橋) 수리에 사용하게 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히 밟고 다니게 했으니 그 증오심이 대단했나 봅니다. 지금도 광통교 아래로 내려가면 깜짝 놀랄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운 석물들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청계천 위 광통교입니다. 잠시 다리 아래로 내려가 석공의 솜씨가 돋보이는 정릉의 아름다운 석물들 한번 감상해 보세요!
성북구 정릉동의 이름도 1669년(현종 19)에 이르러서야 왕후의 능으로 재정비된 신덕왕후의 능호, 정릉에서 유래되었지요.


정동의 중심은 뭐니 뭐니 해도 덕수궁입니다. 14대 임금이 임진 선조가 왜란 중 의주까지 피난 갔다 한양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궁궐이 불타 지금의 덕수궁에 기거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덕수궁은 궁궐이 아니었는데 본래 월산대군(1454~1488, 세조의 맏아들로 9대 성종의 형)의 사저였던 곳을 선조의 임시거처로 사용하였습니다. 창덕궁이 수리를 마칠 때까지 사용되면서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 선조의 아들인 광해군 때 '경운궁(慶運宮)'으로 개칭했습니다. 그러나 광해군 당시 선조의 계비(繼妃, 전 왕후 사망 후 새로 들인 왕후), 인목대비가 폐위되고 경운궁에 유폐되는 사건으로 경운궁은 서궁(西宮)으로 격하되었고,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자 경운궁의 위상은 더욱 땅에 떨어집니다.     


정동의 중심엔 덕수궁(경운궁)이 있다.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3층 정동전망대(광무전망대)는 덕수궁과 정동 일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입니다.


이렇듯 버려졌던 경운궁이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26대 임금인 고종에 이르러서입니다. 일본의 감시를 피해 경복궁에서 러시아공사관으로 몸을 피했던 고종이 1년 만에 경복궁이 아닌 경운궁으로 와 환구단(環球壇, 천자가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단)을 조성하고 그곳에서 황제 즉위식을 올림과 동시에 대한제국을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경운궁은 대한제국의 심장 역할을 하며 급속하게 그 영역을 넓혀 갑니다. 1900년 화재로 사라진 선원전(璿源殿)을 새로이 건설하면서 정동의 북쪽 일대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고 다른 주변 지역들도 흡수하면서 본궁(2만여 평)과 정동 1번지 구역(2만여 평)을 합해 4만여 평의 넓은 지역으로 팽창하게 됩니다.  


그러나 불과 2년 만인 1904년에 온돌 교체공사 도중에 바람을 타고 화재가 일어나 가장 중심건물인 중화전(中和殿)이 불타고 애써 지은 대부분의 전각들이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중건 공사가 곧바로 시작되었지만 러일전쟁이 한창이라 원래의 모습 그대로 재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대한제국이 선포된 해로부터 10년 후인 1907년, 고종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비밀 특사를 파견한 사건을 빌미로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당하고 아들 순종이 등극합니다. 순종은 창덕궁을 수리해 옮겨가고, 고종이 머물고 있던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고종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태황제 궁호(太皇帝宮號)를 ‘덕수(德壽)’라 정했기 때문입니다.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덕수궁은 다른 궁궐들과 마찬가지로 일제에 의한 본격적인 해체와 축소로 원래의 모습을 잃어갔습니다. 중명전은 1912년에 서울구락부(외교관클럽)에 임대되고 선원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분할 매각되거나 헐려나갔습니다. 1919년 덕수궁의 주인인 고종황제가 승하한 후에는 주인 없는 집인 덕수궁의 처분 문제를 일제가 공론화하기 시작해 1933년에는 덕수궁을 개방, 공원화하였고, 스케이트장과 이왕가미술관(현 덕수궁미술관, 1938)이 건립됩니다. 정문인 대한문은 1914년과 1971년 두 차례나 뒷걸음쳐 제자리를 잃는 등 덕수궁은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해방 후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훼손당합니다. 그 결과 현재는 그 영역이 2만여 평으로 약 50% 축소되었습니다.               

                             

1910년 제작된 덕수궁 평면도입니다. 노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지금 남아있는 덕수궁이고요.


정동길을 즐기는 몇 가지 방법

     

은행잎이 바람에 휘날리기 시작하는 가을날, 운동화 끈을 조여매고 카메라를 챙겨서 정동으로 향합니다. 정동의 중심 덕수궁을 시작으로 푸르디푸른 날의 기억을 소환하고 내친김에 근대로의 시간여행을 하기에 정동보다 좋은 장소는 없을 것입니다.

정동을 제대로 한 바퀴 도는 데는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지도 모릅니다. 볼거리가 넘쳐나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되니까요. 서울 중구청 '해설사와 함께 하는 도보관광'의 '정동 한 바퀴(1.3km, 1.5시간)'나 서울시 '서울 도보 해설관광'의 '야간 정동(1시간)' 등의 무료 프로그램을 활용해도 좋겠습니다.


중구 문화관광 (junggu.seoul.kr)

서울 도보관광 (visitseoul.net)


옛 덕수궁의 영역을 따라 정동을 크게 한 바퀴 돌거나, 가장 최근 정비된 지금의 덕수궁 돌담을 따라  1.1km를 막힘없이 걷는 일명 ‘덕수궁 돌담길 코스’를 추천합니다. 이 길은 원래 영국대사관이 덕수궁 담장과 하나의 담을 사용하고 있어서 통과할 수가 없었지만, 영국대사관으로부터 2017년 100m를, 2018년에 남은 70m를 마저 반환 받음으로써 전면 개방된 길이지요. 시간이 멈춘 듯 무척이나 평화롭고 감성적인 길입니다.         

                                       

2021년 서울시가 정동 일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모두 5개 코스의 '정동 근대역사길'(2.6km)을 조성했습니다. (서울시 제공)


자, 이제 다음 글에서는 정동을 다 같이 한 바퀴 돌아보겠습니다. 운동화 끈 단단히 조여매고 준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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