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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마 Mar 08. 2023

외계인(?)이 두고 간 선바위

누구나 알지만 잘은 모르는, 한양도성 5

https://brunch.co.kr/@storybarista/42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외계인이 두고 간(?) 선바위


딜쿠샤와 멋들어진 은행나무를 뒤로 하고 다시 인왕산 정상으로 오르기 시작합니다. 금세 인왕산공원 입구라는 표지판이 나오네요.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한양도성 인왕산 성곽길이지요. 같이 걷던 친구의 거칠어진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서로의 상태를 살피며 점점 가팔라지는 산을 오릅니다. 힘겨운 인생의 오르막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이길 맘속으로 기원하면서 말이지요~

 

집과 빌딩들이 틈 없이 마주 닿아 있는 복잡한 도시가 점점 아래로 아득히 멀어지고 멋진 바위산의 경치가 순식간에 펼쳐집니다. 햐~ 도시 한가운데서 이런 특별한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무척 경이롭군요!

           

갈림길에서 ‘한양도성 외부 순성길’ 표지판을 따라 성벽의 바깥쪽을 따라 오르면 성돌의 형태와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볼 수가 있지요~

   

산 중턱에 갑자기 도로가 나타나며 도성이 잠시 끊깁니다. 여기서부터 도성의 바깥쪽으로 나가 걸어보길 추천합니다. 도성 안쪽으로만 가면 여장(女牆,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 위에 덧쌓은 낮은 담)만 보여서 성벽을 어떻게 쌓았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한양도성 외부 순성길’을 택하면 시대별로 다른 성돌 쌓기를 확인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게다가 나무 계단과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아늑한 풍경을 만들어내니 금상첨화이지요~

(성돌 쌓기 변천사는 '서울 한복판을 흐르는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 한양도성'편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벽 바깥쪽으로 난 길로 구불구불 250여 m를 엉거주춤 내려가면 기이한 형상의 바위가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선(禪) 바위입니다. 친구는 연신 셔터를 누르며 외계인이 놓고 간 것이 틀림없다며 그 형상의 신비로움에 혀를 내두릅니다. 마치 두 스님이 장삼을 뒤집어쓴 것처럼 보이는 독특한 생김새의 선바위는 서있는 바위 혹은 참선의 의미라는 유래가 있습니다만 조선 개국 시 일어난 재미있는 일화가 우리의 귀를 더 솔깃하게 합니다.       

  

인왕산 도성을 쌓을 때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옥신각신합니다. 이 선바위를 도성 안으로 둘 것인가 아니면 밖으로 둘 것인가 하는 문제로 논쟁을 벌인 것인데요, 정도전이 선바위를 도성 안에 두면 불교가 성하고 도성 밖에 두면 유교가 흥할 것이라고 태조를 설득하여 결국 도성 밖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무학대사와 정도전, 그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하고 난처해하던 태조가 어느 날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인왕산에 눈이 내렸는데 선바위 안쪽으로만 눈이 녹아버리는 것입니다. 태조는 이 꿈이 도성을 선바위의 안쪽에 두라는 하늘의 계시라 여기고 정도전의 손을 들어줍니다. 결국 선바위가 도성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본 무학대사는 “이제부터 승도들은 선비들의 책 보따리나 지고 따라다닐 것이다.”라고 탄식했다고 하는군요.^^

                                   

선바위의 전면과 후면의 모습입니다. 기괴한 모습의 외계인같기도 하고 장삼을 뒤집어쓴 스님의 모습 같기도 하네요^^

                  


선바위 바로 아래에 보이는 단출한 맞배지붕 건물이 국사당(國師堂)입니다. 인왕산 국사당의 유래를 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사당은 원래 남산(조선시대에는 목멱산이라 불림) 정상 지금의 팔각정 자리에 있었지만 1925년 일본이 남산에 조선신궁을 세우면서 철거해 버리자 이곳 인왕산으로 옮겨 다시 지은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남산을 목멱대왕으로 봉하고 호국의 신으로 삼아 개인적 제사는 금하고 국가의 공식행사로 기우제와 기청제(祈晴祭)를 지냈다고 적고 있습니다.『신증동국여지승람』(1481, 조선 성종 때의 지리서)에 목멱신사는 목멱산 꼭대기에 있고 해마다 봄과 가을에 초제를 행한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국사당'이라는 이름이 처음 언급되고 있는오주연문장전산고(五州衍文長箋散稿(이규경, 조선 헌종)에는 그 안에 모셔져 있는 무신도(巫神圖)에 대해 설명하면서, '고려 공민왕, 승려 무학, 고려 승려 나옹, 서역 승려 지공의 상 및 기타의 여러 신상을 걸어 놓았다......(중략) 여자아이의 상도 있다. 여자아이를 천연두의 신이라 하면서 신 앞에 화장품 종류를 놓아두었고 대단히 추악하였다. 그러나 자못 성행하여 나라에서도 금하지 못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가적 제사를 지내던 조선 초와는 달리 후기로 가면서 일반 백성들 개인의 기도처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남산의 국사당을 하필이면 왜 인왕산 선바위 아래로 옮겨 왔을까 하는 의문은 선바위와 그 주변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느끼는 순간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 지금도 무속인의 요청이 있으면 관리자인 당주가 유료로 빌려주는 굿당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일반인들도 개인적으로 찾아와 참배하고 기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굿상차림을 위해 양손 가득 제물을 들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각자의 기원을 담은 얼굴에는 비장함마저 엿보이지요. 하지만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국가의 문화재인 만큼 개인의 영업행위를 위한 장소로 전락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깁니다.      


선바위 아래에는 1925년 남산에서 옮겨온 국사당이 있습니다.  
국사당 문을 빼꼼히 열고 들여다보니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21점의 무신도가 걸려있는데 조선후기로 추정되는 수준급 그림입니다. 창부씨, 최영장군, 무학대사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드디어 인왕산 정상!     


도성의 ‘내부 순성길’로 다시 들어와 인왕산 정상을 향해 마지막 힘을 냅니다. 바위산이 점점 그 멋진 자태를 드러냅니다. 정상의 아래쪽으로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1751)에 등장하는 치마바위와 매바위가 장관을 이룹니다. 범바위, 모자바위, 삿갓바위, 기차바위, 이름도 재미있는 기암괴석들이 줄을 잇습니다.


와~ 드디어 338.2m의 정상에 이르러 등을 흠뻑 적신 땀을 식힙니다! 사방팔방 어디를 둘러봐도 답답한 곳이 없어 숨통이 탁 트입니다. 북쪽으로 북한산이 당당하게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고 남쪽으로 남산과 서울 N타워가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어줍니다. 들쭉날쭉 빌딩과 오밀조밀 집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청와대 안마당도 훤히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1968년 1.21 사태(북한 무장군인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여 대통령 박정희를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로 폐쇄된 후 1993년까지 인왕산 구간은 안보와 보안상의 이유로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인왕산의 다양한 풍경들입니다. 치마바위(맨 왼쪽), 기차바위(가운데), 서울 N타워까지 한눈에 보이는 멋진 풍광(맨 오른쪽)이군요~


이건희 컬렉션 중에 단연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히는 <인왕제색도>는 인왕산 자락에서 나고 자란 정선이 76세에 완성한 대작입니다.


인왕산 정상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며 목을 축이고 여유롭게 휴식한 후, 최종 목적지인 창의문을 향해 슬슬 이동해 봅니다. 200m쯤 내려오니 왼편에 멋진 기차바위가 보입니다. 기차처럼 길쭉하게 보여서 붙은 이름이지요. 이 기차바위 능선을 따라 북한산의 비봉까지 이어지는 성곽이 탕춘대성(蕩春臺城)입니다. 탕춘대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한성 방어에 대한 개념이 중시되면서 숙종 때 새롭게 축성된 한양도성의 외성(外城)입니다.


이제는 하산하는 발걸음을 재촉해 봅니다. 도성 밖으로 동선이 연결됩니다. 도성 외부 길로 나가 약 200m 성벽을 구경한 다음 다시 내부로 들어오도록 만들어 두었습니다. 보존과 정비가 잘 되어있는 인상적인 구간입니다. 이 구간은 태조, 세종, 숙종 때의 성돌을 모두 볼 수 있어 각 시기별 성돌 쌓기의 발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지요. 성돌에 낀 거무스레한 시간의 흔적을 카메라로 이리 찍고 저리 찍고 눈에 담고 마음에 담다 보면 희한하게도 차가운 돌이 주는 시간의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인왕산 하산길에 만난 도성의 내부와 외부입니다.


창의문에서 출발해 인왕산 정상으로 올랐더라면 내려가는 이 가파른 길이 오르는 길이 되었겠네요. 아찔합니다!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사람들의 헐떡이는 숨소리와 숨을 참느라 일그러진 얼굴을 내려가며 흘깃흘깃 훔쳐봅니다.^^ 인생도 이처럼 결국은 공평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르고 내려갈 것인지, 내려가고 오를 것인지가 있을 뿐.


성벽을 따라 내려오며 하산의 즐거움을 누리다 갑자기 뚝 끊긴 아스팔트길을 만납니다. 창의문까지 가기 위해서는 이 끊어진 구간을 건너고 윤동주시인의 언덕을 넘어야 합니다. 윤동주시인의 언덕에는 서시정(序詩亭)이라는 정자와 서시(序詩) 시비(詩碑)가 있고, 아래쪽으로는 2012년 청운 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윤동주문학관이 있습니다. 버려져 있던 수도가압장의 변신이 이채롭습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의 문학관을 지나면 드디어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의 목적지인 창의문에 도착하겠지요? 마지막까지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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