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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이슬 Dec 22. 2023

남겨진 자의 외로움

택시 기사님의 생생라디오, 그 첫 번째 육성

 

  항암 치료를 다시 시작하면서 택시를 타고 병원을 오고 간지 며칠 되지 않았던 때였다. 탑승을 하자마자 눈에 띈 건 다름 아닌 기사님이었다. 새까맣게 염색한 머리카락, 그 위에 살포시 얹어진 갈색 계열 중절모, 은은한 향수 냄새까지. 일명 '멋쟁이 시니어'였다.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만난 그 기사님은 지금까지 만난 기사님들 가운데 외 내면 모두에서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분이자 연재 글 탄생의 바탕이 된 분이다.


  탑승을 하자 기사님의 첫 한마디는 “내비게이션대로 가면 될까요?”였다. 저 물음은 기사님들의 단골 멘트인데, 지금이야 그렇게 해달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처음에는 왜 당연할 걸 묻는 건지 속으로 갸우뚱거렸다. 그러다 어느 날은 궁금해서 물었다.

  "내비게이션 말고 따로 아시는 길이 있나요?"


  기사님은 승객 취향이 제각각이라 묻는다고 했다. 고속도로 타고 가길 원하는 손님이 있거나 내비게이션대로 안 가면 멋대로 간다며 성질내는 승객도 있다면서. 한편 얼마 가지 않아 기사님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블루투스가 자동차로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부녀의 통화 내용을 엿들을 수밖에 없었다. "아빠, 저 공항 도착했어요."


  기사님은 조심히 가고 한국에는 언제 또 오냐고 물었다. 딸은 이번 연도 겨울쯤에나 다시 올 것 같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내 손녀를 바꿔주었다. 손녀는 사춘기인지 어색한 것인지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으나 내 귀엔 퉁명한 말투로 들렸다. 엄마가 시키니 하는 수 없이 통화를 하는 톤이었다. 반면에 기사님은 여느 손주를 둔 할아버지들처럼 다정했다.

  "00아, 갖고 싶은 것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 잘 지내고 겨울에 또 보자."


  딸은 아빠에게 ‘날이 너무 덥네요, 일하고 계시냐’고 물은 뒤 도착하면 또 연락드리겠다는 말로 대화를 끝냈다. 그렇게 통화가 종료되었다.




  속으로  ‘딸이 해외에 사시나 보구나.’ 생각하며 창문 너머 파란 물결의 한강과 하늘을 바라보았다. 기사님은 "생각보다 차가 안 막혀서 제시간에 잘 도착하겠네요." 하며 말을 건넸다. 대화의 물꼬가 터져 그 뒤로 우리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까 통화하신 딸은 해외에 사시나 봐요."


  자연스럽게 기사님은 딸의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에 살아요. 교수예요. 그런데 뭐 자식 잘되고 그런 거 아무 소용없어요. 하나도 기쁘지가 않죠. 내 와이프가 서른여덟에 저 세상 가면서 삼십 년 넘게 혼자 살았어요. 아이들 책임지면서."


  겉으로 뿜는 멋쟁이 신사 같은 기사님의 모습과 달리 공허함이 느껴져서 말했다.

  "그동안 많이 외로우셨겠어요."

  

  기사님은 그렇다면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무척 외롭죠. 내 나이 마흔에 일찍이 와이프랑 사별했는데, 와이프가 눈 감으면서 아이들 잘 부탁한다고... 그 부탁 지키려고 살았어요. 애들만 다 크면 나도 좋은 짝 만나려고 했지. 마음 맞는 동반자 만나서 남은 여생 친구처럼 그렇게 보내며 살려고 했지. 그게 참 어렵네요. 나이를 먹어서 만나는 여성들도 결국은 돈을 찾대요."


 그래도 나는 자식 농사 잘돼서 기쁘지 않으시냐고 기사님의 외로움을 달랬지만, 지나친 착각이었다. 기사님은 묵었던 서운함이 굉음을 쳤는지 이어서 말했다.

  "내가 애 셋에 장모님도 모시고 살았지만 책임감 하나로 아이들 교육 뒷바라지며 물심양면 지원을 아낌없이 다 해주고 살았어. 나는 재산도 미리 나눠줬어. 그러면 뭐해요. 지들 가정 이루니까 지 가정이 우선이지. 자식이 다 출세해도요, 이 나이 되면 다 필요 없어요. 내가 지난주에도 우리 와이프 산소에 벌초하러 다녀왔는데 늘 나 혼자 다녀요. 자식들은 전화 한 통 없어. 내가 뭘 대단한 거 바라나. 전화 한 통이면 되거든요. 지들 살기 바쁘니 내가 벌초를 다녀왔는지 뭐 했는지 전화들도 없고. 며느리며 사위도 집안에 잘 들여야 돼. 그래도 둘째 사위가 안부도 자주 묻고 참 인간적이라 다행이지."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이 셋을 남겨두고 간 어미의 심정보다 남겨진 자의 외로움과 허무함을 당면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번 생각했다. 생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는 모든 감정이 간절했다. 그중에서 내가 무척 마음에 든 그런 날에 필름 한 장 남기고 죽어도 여한 없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이기적이란 생각을 했지만 반대편에는 늘 남겨진 자들의 장면을 떠올리곤 했었다. 내 딸아이가 느낄 엄마란 존재의 부재라던가 생전에 자식 잃은 슬픔으로 살아갈 우리 부모님 그늘진 얼굴이라던가. 그런 장면들이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듯했고 생의 세계에 남겨진 가족들의 외로움이 걱정되었다. 그날은 특히 기사님을 통해 한 남성의 모노드라마 한편을 본 것 같았다. 기사님에게서 우리 남편을 빗대어 상상했고 크게 상심했다. 기사님의 유구한 이야기는 굳은살이 되어 덤덤한 어조로 변했지만 그래서 더 슬펐다.




  남의 일이 아니기에 남편 세월의 페이지를 휘리릭 넘기면서 잠시동안 관찰자 시점이 된 내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남편 ‘응답하라 1988만’ 보면 추억에 젖어 울던 남자인데, 다음 생에도 나를 또다시 만나 결혼할 거라며 예쁜 말 골라서 해주던 사람인데, 나를 향한 그리움에 몸살을 앓는 모습이 보였다. 혼자 남겨진 그 아픔이 전해졌다. 물론 구슬픈 내 생각과 달리 금세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해 다시 가정 꾸리고 살 수도 있다. 그런데 차라리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기사님은 마음이 통하는 또래 여성을 만나고 싶어 했으나 젊었을 때보다 더 쉽지 않다고 하셨다. 일생의 과업 중 남녀 간에 사랑은 젊어서나 늙어서나 가장 중요한 일인 동시에 최상의 난이도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다. 흔히 부부를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평생 함께 할 짝을 만나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불가항력적인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해야 한다. 이처럼 배필을 한번 만나기도 어려운데, 숱한 고난을 겪은 나이 먹은 이들의 사랑은 섣달 그믐날 개밥을 퍼주듯 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가슴속에 내밀한 아픔을 오래 지닌 사람일수록 사랑이 절실하지만 사랑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관찰자 시점에서 빠져나와 유언에 대해 떠올렸다. 나도 기사님의 와이프처럼 자식 걱정을 먼저 할 것 같았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딸아이가 엄마의 부재를 덜 느끼며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아마도 기사님은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엄마 없는 아이들’로 비치지 않도록 부족함 없이 키웠을 것이다. 부모가 다 있어도 아이에게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키우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인데, 모(母)의 중심 역할이 크게 빠졌으니 얼마나 치열하게 사셨을지 눈에 훤했다. 하나 자식 놈 키워봤자 소용없단다. 자주 듣던 말이긴 하지만 기사님의 삶을 통해 갑자기 체감을 확 했다. 내가 자식일 때까지만 해도 그 말의 깊이를 알 수 없었고 현재 자식을 키우는 과정에서도 그저 예쁘기만 하니 알 수 없다. 한참 지나고 봐야 알게 되는 진리를 미리 알게 되었다. 자식을 향해 사랑을 쏟아부어도 남겨진 자의 외로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구나.  


  내 우는 소리를 듣고 기사님은 상황을 눈치채신 듯 말을 건넸다.

  "아가씨도 보아하니 이 먼 거리까지 병원을 다니는 말 못 할 사정이 있겠죠."


  나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가 다시 기사님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우리 와이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형을 또 잃었어요. 슬픔이 연달아 발생하니까 살기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어요. 방황을 하다가 택시를 했는데,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로움이 참 좋아. 덕분에 여태 이 나이까지 택시 일하며 나만 건강하게 살고 있어요. 나는 요즘에 혼자서 김치도 담가서 먹는데 친구들이 그런 것도 하고 사냐고 하대요 (허허)."


  기사님에게 택시는 정신을 붙잡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아이 셋에 장모님까지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 택시를 운행하는 일이 생계의 목적도 분명 있었겠지만 정신적인 생존 수단의 역할을 해온 셈이다. 책임이 과도하면 그것을 어떻게든 탈피하려는 게 인간 속성인데 누구는 그것을 술로, 수다로 풀고 누구는 택시에서 자유로 풀기도 했다. 기사님의 외로움은 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결코 사라지지 않겠지만 자유와 김치도 담글 줄 아는 자립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이에 도착지에 다다랐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특별하게 인사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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