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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이슬 Dec 22. 2023

택시 운행 시간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나만 모르고 살았다

택시란 직업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준 세 번째 기사님

  

  항암으로 입원을 하는 날은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나 짐을 바리바리 싼다.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은 음식이다. 병원에서 주는 밥은 같은 쌀로 만든 밥인데 이상하게 맛이 없다. 덕분에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따듯한 물과 매 끼니 챙겨 먹을 음식, 간식들을 꾸려 갈 채비를 마친 뒤 택시를 부른다. 어찌 보면 그렇게 많은 짐도 아닌데 돈 아끼고 버스를 탈까 하다가도 항암 전에 하는 피검사에서 수치가 낮아 항암을 행여 하지 못할까 봐, 통과의례를 위한 목적의 수단으로써 어김없이 택시를 불렀다.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아침 6시와 7시는 택시를 부를 때 마음의 온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시간이다. 아침 7시는 서울로 향하는 택시를 잡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시간이다. 출근 시간과 맞물려 택시 기사님이 선호하지 않거나 아예 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에 삼사십 분 일찍 도착하더라도 아침 6시가 조금 넘는 시간에 택시를 탄다. 평정심을 깨뜨리지 않기 위한 순전히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택시는 예상대로 수월하게 잡혔고 스스럼없이 인사를 주고받았다. 나는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제가 아침부터 먼 거리를 가죠?”

  "아가씨가 내 첫 손님이에요."


  아가씨라는 말에 기분이 몇 초 좋았다가 이내 첫 손님이라는 말에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 저는 기사님이 새벽까지 일하시고 아침에 저를 태우신 줄 알았네요.”

  “저는 아침 이 시간에 시작해서 오후 다서 여섯 시까지만 일해요. 기사마다 선호하는 시간은 달라요. 보통 돈을 좀 더 벌어야 하는 사정 있는 사람은 야간 시간에 할증이 붙으니까 그 시간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기사님은 하던 말을 마저 하셨다.

  “어떠신 분들은 아침에 잠이 없잖아요. 그럼 일어나서 일하는 거예요. 새벽 일찍 나와서 오후 일찍 들어가는 거죠. 또 어떤 사람은 새벽 두 시쯤에 일 끝내서 막걸리 한 병 받아가지고 집에 가 마시고 자다가 아침잠 깨면 나와서 일하고 그래요. 참 좋잖아요.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나는 1화에 썼던 기사님을 통해 택시라는 직업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대해 들은 적 있었다. 그때 그 기사님 왈, '택시는 시원한 바람맞으면서 어디든 다닐 수 있는 직업이라며' 공간의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 이날 만난 기사님은 택시는 자기 선택에 의해 일하는 시간을 탄력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의 자유가 있다고 언급했다.


  기사님이 말씀하시니 문득 장면 하나가 아른거렸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이다. 하교 후에 친한 친구 집에 종종 놀러 갔었다. 그때마다 늘 친구 아버지가 계셨는데, 친구가 '우리 아빠는 택시 기사야.'라고 했던 말이 어제의 일처럼 또렷하게 들렸다. 사실 친구 아버지가 게을러보였다. 은연중에 택시를 근면 성실하지 못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우리 아빠가 회사원은 아니었다. 우리 아빠 또한 성수기에만 일하고 비수기에는 집에 있는 날이 많은 직업군이었다. 직업에 귀천 없듯 일을 하는 시간도 꼭 정해진 것이 없는데 그 어린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한편 조금 아파서 하루 정도는 학교를 쉬고 싶은 날에 엄마는 "갔다가 다시 오는 한이 있어도 학교는 가라고" 했다. 학교 가기 싫어 꾀부린 아이가 된 것 같아 엄마에게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끙끙 앓을 정도의 몸 상태는 아니었으니 잠을 조금만 더 자다가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도 공존했을 것이다. 덕분에 학교를 한 번도 빠진 적 없는 근면 성실의 아이콘이었다고 자부하지만 관습적으로 내려온 말들이 자연스럽게 체화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자각하지 못했다.


  근면하다는 말 그 자체는 '좋은 말'에 속한다. 성실은 사회적인 약속이며 신용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근면과 성실'이 현대 노동의 산물이 되었고 그것이 사회 전반에 녹아들어 있지만 미처 알지 못하는 현상이다. 근면 성실의 본질이 변모되었다는 생각의 발전을 이루기가 힘들다. 더 나아가 근면과 성실을 강요받아 실천함에도 권리마저 보장받지 못했던 역사 속에 근로자들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다. 생계 노동자들의 희생이 여전히 공공연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작은 말들이 모여 넘지 못할 큰 산을 만들고 있는데 나는 뇌가 깨어 있는 상태가 아닌 자고 있는 상태로 삶을 지속하며 살았던 날들에 반성한다.


  누구에게는 시간이 딱딱 정해진 회사원이 체질일 수 있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이 시간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직업을 선호할 수 있다. 하나 어쩌면 회사원이 체질이라 말하는 누군가도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누릴 수 있는 회사원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는 택시 기사가 체질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기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 택시 직업에 대한 왜곡된 시선은 왜 자리 잡고 있었을까.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택시는 언제 어디서나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나에게 택시란 주로 술 마시고 난 뒤에 타는 사물의 존재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보이는 만큼만 생각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았다. 나는 택시를 ‘새벽에 술 먹은 승객을 태우는 직업’ 또는 어릴 때의 잔해로 '게으른 직업'이라는 편견이 존재해 있었다. 아침 6시부터 편견이 와장창 깨지며 눈이 떠졌고 기사님께 그동안 택시 운행 시간에 대해 몰랐었다는 대답으로써 대신했다. 기사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설명하는 일에 집중했다. 잘못된 인식을 나만 알아차렸다는 사실은 다행인 일이었으나 택시 운행 시간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넘어서 그 직업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과 무지를 장착했던 나 자신에게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어진 기사님의 말이 나를 한번 더 강타했다. '택시에 색안경을 꼈던 사람은 나 혼자였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고 말이다.

  "저번에, 아니지 꽤 오래됐어. 어떤 아가씨는 직장인인데 물어보더라고요. 택시를 어떻게 하면 할 수가 있느냐고. 그래서 내가 왜 그러냐니까, 택시 운전사라는 직업이 너무 멋있어 보이고 그런다 하더라고요."




>> 에필로그

근래에 탔었던 택시 기사님과의 대화 중 일부입니다. 제 날짜에 연재하려고 했으나 도무지 결론을 내리지 못해서 쓰다 만 채로 두었습니다. 이후에도 글을 써보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았지만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브런치 창을 여러 번 열었다 닫았다, 며칠 몇 주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가끔 내가 그저 생각하는 기계가 아닐까 의심할 때도 있었다'라고 말하는 책 <작별인사(김영하)> 주인공 철이처럼 저도 생각하는 기계처럼 하루하루를 살았네요.

동시에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요. 읽는 내내 울고 웃고 했습니다. 내용들 가운데 붕어빵 만드는 노동자 말 한마디에 붕어빵 장사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그동안 단편적으로 떠오르던 생각들이 정리가 되면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저장글로 남을 뻔했는데 책에서 나왔던 문장 덕분에 그 문장들에 단어 하나만 바꿔 글을 마무리하며 그간 늦었던 연재를 발행해 봅니다.


당장 택시를 안 타더라도
택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알아야
타인의 노동을 함부로 폄하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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