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 명상 4-2편
난 생활참선으로 호흡 명상을 시작했어. 그런데 무식하게 무릎의 고통을 참으면서 가부좌를 고집하다가 반원상 연골 파열이라는 병을 얻었지. 그리곤 아픈 다리로 잘 걷지 못하는 상태가 되자 우울증까지 생겼어.
지금 생각해 보면 병의 원인은 내게 있었어. 왼쪽 무릎이 유난히 아팠을 때 조금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병원을 일찍 찾았다면 반월상 연골의 파열은 막을 수 있었을 거야. 그해 1월에 무릎의 통증이 심해서 잠도 잘 못 잘 정도였는데, 그냥 파스랑 소염진통제로 버틴 게 잘못이었어. 그게 몸에서 보내는 경고였는데 무시한 셈이지. 사람마다 체형이 다르고 신체 조건이 다르니까 다리를 심하게 비트는 결가부좌가 안 맞을 수도 있다는 상식적인 생각을 무시한 게 문제였어. 자책감이 커질수록 심리적 불안감도 비례하여 몸집을 불렸어. '가장으로서 이제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건가?'라는 책임 의식도 날 무지하게 괴롭혔어.
난 3개월 정도 거의 정신적 폐인으로 살았어.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뭘 하면서 지냈는지 기억이 안 나. 영혼이 밑바닥에서 뒹굴뒹굴하는 일상의 반복이었어. 술에만 반응하는 좀비나 다름없었어. 2020년이 시작되고 8월까지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던 생활참선도 놓아버렸어. 반원상 연골 파열이 짜증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겉으로 볼 때는 전혀 증상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야. 배가 나오지 않은 임신부처럼. "나 아파요."라고 말하기 전까지 아무도 몰라. 주변의 사람들이 별거 아닌 거 같은데 유난을 떤다고 생각하기 쉽지. 혼자 괴롭고 슬퍼지는 병이야.
정상에 오르면 반드시 내려오는 일이 생기고, 바닥을 찍으면 그다음엔 올라가는 일만 남는다고 하잖아. 아무런 삶의 의지도 없이 지내던 어느 날 단전이 말을 걸더라. 가만히 있을 때도 습관이 되어버린 복식 호흡의 영향력 때문일까? 명상을 하지 않아도 가끔 고요한 상태가 되면 단전에 기운이 모이는 느낌이 들었거든. 그 기운이 갑자기 단전에서 툭툭거리는 거야. 태아가 엄마의 배를 차듯이 툭툭. 세상을 저주하면서 맥없이 널브러져 있는데. 처음엔 그냥 무시했어. 그런데 문을 열라는 듯이 노크가 반복되더라. 단전에 남아 있던 명상의 기운이 "계속 그렇게 살거야?"라고 묻는 것 같았어.
아장아장 기어다니는 둘째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더라. 단전의 노크에 마음을 열고 조금씩 정신을 차렸어. 무릎은 구조상 대퇴사두근이라는 허벅지 근육의 역할이 커. 근육이랑 힘줄이 튼튼하면 연골이 약해도 무릎을 단단하게 지지할 수 있지. 하체 근력을 키워보라는 의사의 말을 믿고 재활 운동을 시작했어. 허벅지뿐만 아니라 종아리와 엉덩이까지 신경을 썼지. 좋다는 운동은 다 시도해 봤는데 내게 통증이 없는 방법을 찾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어. 그리고 명상도 다시 시작했어. 무엇보다 정신적인 안정과 집중력이 필요했으니까.
가부좌를 못 하니까 대체할 명상 자세를 찾아야 했어. 내 통증은 나만 아는 거라서 다른 사람한테 조언을 구하기가 어려웠어. 그래서 무릎에 무리가 안 가도록 의자에 앉는 방법을 골랐어. 처음엔 의자에 앉을 때 무릎의 각도나 다리의 벌림에 따라 통증이 있어서 나만의 자세를 찾아야 했어. 그렇게 2020년의 마지막 두 달을 재활과 새로운 명상의 탐구로 보냈지. 처음에는 모든 게 어색하고 불편했는데, 5개월 정도 지나니깐 어느 정도 익숙해지더라구. 하지만 상실감, 좌절감, 우울감이 섞여 내팽개쳐진 영혼은 좀처럼 일으키기 쉽지 않았어. 그래서 오히려 더 악착같이 하체 근력 운동에 매달렸어.
1년 정도 지나니깐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가 되었어. 아무런 시술이나 약 처방 없이도. 무릎 관절에 좋다는 약은 거의 다 먹어봤고, 좋아진다는 다양한 요법에도 혹 했었지만 그것들은 전부 큰 효과가 없었어. 마음이 간절해지니까 비상식적인 치료법에도 빠질 뻔했지. 다행히 마음을 다잡고 꾸준히 근력 운동을 하니까 효과가 있었어. 무릎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두세 시간 정도 걷기에 무리 없고, 초록색 신호등이 깜빡거릴 때 살살 뛰어 길을 건널 정도로 괜찮아졌어. 무릎의 병으로 아주 힘든 중년의 위기를 겪었지만, 오히려 본의 아니게 배운 것도 많았어. 내 몸에 더 신경을 쓰고, 모든 것에 더 조심스러워지고, 더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습관이 생겼지.
가끔 건강을 위해 운동 시작했다가 무리해서 몸이 상하거나 부상으로 크게 다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거기에 내가 포함될 줄은 몰랐어.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제법 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지. 가끔은 실수를 하지만 나 정도면 평균 이상이라고 여기지 않아? 나도 그랬어. 그런데 그런 생각 자체가 다 부질없더라구. 어느 한 분야에서 좀 잘 나갔다고 혹은 다른 사람보다 뭘 좀 더 안다고, 사람들을 나누고 구분하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거였어. 무식한 고집과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부주의로 평생 안고 가야 할 무릎의 병을 얻은 못난이가 감히 누굴 평가하겠어. 이 사건을 계기로 자기가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조심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어. 너무 당연한 진리인데 충격이 크다 보니 몸에 깊이 새겨지더라.
사실, 가부좌를 하려면 골반 아래의 관절들이 유연해야 돼. 나는 뻣뻣한 다리를 억지로 접으려다가 무릎이 버티지 못하고 탈이 난 거야. 그러니까 만약 가부좌를 하고 싶다면 먼저 유연성을 키워야 했지. 그 기본 과정이 생략되어 병이 난거지. 생활참선을 만든 박희선 박사님은 자신에게 그런 병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릎과 발목에 고통이 있지만 그냥 하라고 가르쳤어. 참고 꾸준히 하다 보면 다 된다고. 내가 무릎에 통증이 심할 때 물어봤던 어떤 스님도 마찬가지였고. 그들을 탓할 수는 없지. 그들도 몰랐을 테니까.
내 무릎이 망가지기 전에 박희선 박사님의 유연성이 담긴 사진을 본 적이 있어. 80세가 넘은 노인이 다리를 양쪽으로 쫙 벌리고 상체가 바닥에 닿는 모습이었지. 그때 그 사진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게 그런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못 했었어. 그것도 참 아쉬운 부분 중에 하나야.
결국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것은 없는 거야. 사람마다 특성이 다르니 잘 맞는 것도, 좋은 것도 다를 수밖에 없어. 아무리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해도, 잘 안 맞는데 (혹은 잘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쫓아가다가는 나처럼 큰 탈이 날 수도 있지. 누구에게나 좋은 것은 없어. 예전엔 내게 좋은 걸 다른 사람에게도 권했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
한참 우울할 때는 생활참선을 시작한 걸 후회하기도 했어. 안 해도 될 걸 괜히 시작해서 몸만 망가졌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조금씩 정신을 차리면서 모두 내 탓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였어. 그리고 여전히 명상을 평생의 벗으로 삼고 있지. 자세는 바뀌었지만.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를 위해 명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더 단단해졌거든.
예전에 지인이 명상으로 무엇을 얻었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어. 그때 제대로 답변을 못했었는데, 만약 다시 누가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할 거 같아. “특별하게 얻은 것보다,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을 줄 알게 되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지. 평범했던 호흡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숨 쉬는 일은 의식하지 않으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그게 없으면 살 수 없지. 평범한 생활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아파보면 알지 그게 얼마나 특별한 일상인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