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소식에 눈을 질끈 감는다. 임신한 여성에게 폭격이 떨어져서 배속에 아이가 저 멀리 튕겨져 나갔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조용히 트윗을 내렸다. 바로 다른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혹은 며칠 뒤 다시 팔레스타인 소식이 올라온다. 폭격에 의해서 죽은 어린아이들의 생전의 웃는 얼굴, 폭격에 사망한 언론인, 기아 상태에 있는 어린아이들. 며칠에 걸쳐서 내가 목격하고, 또 외면했던 소식들이다.
며칠전에 정주행을 완료한 웹툰은 남미 마피아가 배경인 느와르였고, 사람들이 총을 맞고 죽고, 쓰러지고 눈알이 튕겨져나갔고 피를 흘렸고 산채로 몸을 뜯겼고 갈기갈기 잘려나갔다. 나는 무표정하게 그것을 읽어내려갔다. 현실은 비교도 안될만큼 잔인할 따름인데, 나는 그 웹툰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완독하고는, 팔레스타인 평화연대의 트윗은 끔찍하다며 내려버린다. 그런 내가 종종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상하게 느껴진다. 정말로. 때로, 오늘같은 날은, 그게 너무 끔찍하게 느껴질때가 있다.
예전에 한참 인기를 끌었던 '킹스맨'이라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고서 경악하며 구토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인간들의 머리가 폭발해서 수십명이 폭사하는 장면이나, 주인공이 수십명을 학살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긍정적인 음악은, 머리가 아파왔다. 이런 폭력, 아니 학살의 장면들이 계속 이어지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정말 아무도 아무렇지 않았다는, 아니 심지어는 좋아했다는 말인가?
안전한 곳에서 위험한 곳의 소식을 소비하는 것이 두렵게 느껴진다. 나는 아이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팔레스타인 소식을 보면서 끔찍하고, 두렵고, 무언가 행동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불안감과 조급함을 느끼지만 그 감각은 결국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면 금새 사라질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사실을 동반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나는 잔인한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들 처럼 무감각해질지도 모르겠다. 또 누가 죽었구나. 하면서 말이다.
잔인한 영화들이 사람들에게 주는 감각은 어쩌면 그런 것일까? 그 누구에게도 잡아먹힐일 없는 이 안온한 세상에서 '인간존재' '생명존재'가 가지고 있는 언제든 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각, 위험하다는 감각, 생명력, 일종의 스릴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스펙타클을 소비하고 싶은 마음. 그렇다면 팔레스타인 소식을 듣고자 하는 내 마음에는 혹시 조금이라도 그런 마음이 있는건 아닐까? 안전한 곳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곳의 소식을 들으면서 무언가 고양감을 느끼지만 또한 상대적 안도감을 느끼는 것. 그런 기만적인 감각은 아닐지 (혹은 그렇게 보이지는 않을지) 검열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