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분도유치원
한 지붕 세 종교
같은 집에서 자랐지만 나와 성향이 꽤나 다르다고 생각되는 나의 친언니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개신교 신자이다. 언니의 첫 직장이 기독교 재단이었고, 그곳에서 마음을 의지하던 상사분이 교회에 같이 다니자고 해서 따라다니며 성가대 활동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잘 치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던 언니가 유서 깊은 교회의 성가대에서 아름다운 성가에 매료되었음이 충분히 납득되는 부분이었다. 언니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할 즈음 본가에 내려가 부모님과 그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 너희 언니는 성분도유치원에 다녔지 않았냐. 어쩌면 그때부터 시작되었을 수도 있겠다. 믿음이라든지 그런 거 말이다. 어린애가 주기도문도 외우고 그랬을 테니"
'분도'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는 '언니가 다녔던 곳도 종교적인 색채가 있는 곳이었구나, 기독교 유치원이었구나...' 하고 미루어 짐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떤 유치원이었을까 궁금하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찾아보니 내 짐작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분도'란 '베네딕도'의 중국어 음역이며, 이 유치원은 엄밀히 말하면 개신교가 아니라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 나도 ‘하느님’과 ‘하나님’을 혼용하였고, 기독교가 곧 교회이고 천주교가 성당이라고 생각했었다. '기독교' 안에 '개신교(교회)'와 '천주교(성당)'가 포함된다는 것을 최근에야 명확하게 알았으니 그간 기독교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심했는지 알 만 하다. 어쨌거나 그 유치원에서 기도문을 외고 성경 말씀에 대해 들은 언니가 알게 모르게 종교적인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게 아버지의 생각이다.
믿음이라는 땅콩
어린 시절의 경험이 한 사람의 전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불교유치원을 다닌 내가 의심 없이 내 종교를 '불교'라고 여기며 자란 것,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기독교 유치원을 다닌 언니가 결국 성인이 되어 교회를 다니게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은 사람도 성인이 되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고, 부족함 없이 자란 사람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니 결국 살면서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순간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형성해 가는 것이 맞겠다. 그렇다면 그러한 선택을 가장 지혜롭게 할 수 있는 힘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천주교 신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뒤늦게 성당의 문을 두드린 나. 엄마와 아빠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 갑작스럽게 주일학교 어린이미사를 다니게 된 아이들.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기도문을 외우고 성경말씀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성당 생활을 기꺼운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있지만 속마음의 온도가 다 같지는 않다. 아무래도 수십 년 동안 각종 종교에 대한 궁금증과 의심을 품어온 나보다는 아이들의 뇌가 더 말랑말랑하여 신부님과 수녀님의 말씀이 더 잘 스며드는 것 같다. 그래서 각 종교단체에서 본인들의 색채를 담은 유아교육기관 운영을 오랫동안 지속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이들이 자라면서 또 어떤 변화를 겪고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갈지는 나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 선택의 순간마다 부모가 관여하고 조언할 수는 없으니 그들이 스스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마땅하다. 지력(地力, 땅심)이 잘 길러진 땅에는 어떤 씨앗을 심어도 잘 자란다. 화학비료를 뿌리는 땅에서는 쉽게 당장의 성과를 낼 수 있지만, 땅이 가진 고유의 힘을 잃어 몇 년 주기로 농사를 쉬어야 한다. 땅콩은 땅심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대표적인 작물이라, 천연비료로 농사를 짓고자 하는 농부들은 일부러 한 번씩 땅콩을 심어 지력을 보충한다.
요즈음 우리가 함께 성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놓지는 않는다. 다만, 이 시간이 훗날 행복한 추억이 되어 앞으로 아이들의 삶에 풍성한 자양분으로 작용하기를 바랄 뿐이다. 믿음이라는 땅콩이 아이들의 마음에 심어져 그 아이가 가진 고유의 심력(心力)을 길러주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