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옥련유치원
나는 연나이로 5세, 6세, 7세에 각기 다른 유치원을 다녔다. 셋 중 가장 유치원다운 유치원은 6세에 다닌 '옥련유치원'이다.
내가 선택한 유치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큰 이모는 당시 엄마의 든든한 육아 지원군이자 고민상담소였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이모네에서 밥을 같이 먹고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는데, 부엌에서 엄마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큰 이모가 내게 물어왔다.
절에서 하는 부처님 유치원 갈래?
교회에서 하는 하나님 유치원 갈래?
아마도 유명한 몇 개의 유치원을 후보로 두고 어디에 보내면 좋을까 논의 중이었던 모양이다. 원한다고 다 가는 것은 아니고 제비 뽑기를 해야 하는데, 큰 이모는 그 방면에서 금손이니 걱정 말라고 하는 자랑도 들은 듯하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 부처님 유치원이요.
감색의 주름 스커트와 블라우스, 흰 타이즈를 원복으로 갖춰 입어야 하는 '옥련유치원'은 집에서 꽤 떨어진 '옥련선원'이라는 절에서 운영하는 불교유치원이었다. 동네에서 오며 가며 보던 다른 유치원들과는 규모면에서 차원이 달랐다.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도 연령별 두세학급에 150명이 넘는 원생이 다니는 대규모 유치원이다. 셔틀버스는 승합차가 아닌 대형 버스였고, 온갖 승하차지점을 지나쳐 유치원에 도착하면 부산 각지에서 모여든 셔틀버스 1호차, 2호차, 3호차... 들이 동시에 원생들을 하차시키느라 분주했다. 바짝 긴장한 선생님들의 비호 아래 우리는 등원과 동시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질서있게 움직여야 했다.
불(佛)며들다
원장선생님은 승복을 갖춰입은 ‘원장스님’이셨고, 입학식 등 큰 행사가 치러지는 강당에는 거대한 황금 불상이 놓여있었다. 식사 시간에는 다 함께 어떤 기도 노래를 부른 다음 숟가락을 들었는데, 뜻도 잘 모르면서 그 노래를 열심히 외워 불렀던 기억이 난다. 가사는 인터넷에서 다시 찾아보았지만 멜로디는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잊지 않고 흥얼거릴 수 있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이 음식에 깃든 은혜 두 손 모아 감사하고
상구보리 하화중생 명심 발원 하옵니다.
[출처] 불교공양 기도문|작성자 상락아정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을까? 선생님이 어떤 문구를 들려주시면 어린이들이 그 문구를 기억해서 부모님께 말로 전달하고, 부모님은 그것을 작은 수첩에 기록하여 돌려보내는 과제가 있었다. 대학에서 교육학 시간에 유아교육 관련 부분을 배우면서 '언어전달'이라는 용어를 접하고 '아, 그때 내가 한 게 이거였구나!' 하고 깨달았다. 언어 전달이라는 게 그 의미가 우선 나에게 온전히 이해가 되어야 하는 것인데 어느 날은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의 뜻을 전혀 알아듣지 못해 엄마에게 한 마디도 전달하지 못한 적이 있다. 엄마는 내 수첩에 "아이가 기억하지 못하네요."라고 적어주셨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가끔 그 수첩을 들춰보면서, 이 날 내가 알아듣지 못한 말이 뭐였을까 하고 내내 찝찝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그 문구는 어느 날 피아노 위에 올려진 작은 액자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것은 절에서 파는 기념품인 듯했다. 금박이 입혀진 그 액자에는 어떤 보살님 그림과 함께 이런 글귀가 적혀있었다.
*문수동자게 : 문수보살의 동자가 귀동냥으로 적어서 쓴 게송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찬양하는 노래)
첫 구절인 '성 안내는' 이 화를 안 낸다는 뜻인 줄을 모르고 '성(城, castle)' 안에 뭐가 있다는 말로 이해한 여섯 살의 나는 뒤로 갈수록 점점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어서 끝내 이 언어전달을 완수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게 불교 말씀이라는 것도 그제서야 알게 되어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소풍이나 운동회 같은 행사, 한글을 배우거나 병원놀이, 시장놀이를 하는 일상 등 다른 여러 가지 활동은 여느 유치원에서 하는 것과 그 내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각 반의 선생님들은 스님이 아니라 어떤 유치원에서든 볼 수 있는 젊은 여자 선생님들이셨다. 하지만 매일 내가 지내는 교실이 절과 비슷한 향을 머금은 공간이었고, 매일 부르는 식사기도가 - 비록 뜻은 몰랐지만 - 불교 공양 기도문이었으니 나의 유년기 불심(佛心)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불교유치원을 다녔지만, 친자매인 우리 언니는 전혀 다른 성격의 유치원을 졸업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