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연애 스토리

내가 불교 가정에서 자란 이유

by 계쓰홀릭


엄마랑 아빠는 어떻게 만났어요?


꼬마였을 때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이를테면 엄마와 아빠가 부부이고 우리는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자라면서 조금씩 의문이 생기곤 했다. TV드라마에서 서로 죽을 것처럼 사랑하다가 헤어지는 연인을 보고, 또 새로운 사랑을 만나 상처를 극복하고 결혼에 이르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엄마랑 아빠도 과거에는 연인이었겠지? 서로에게 첫사랑이었을까? 어떻게 만났을까?' 하고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나간 이야기를 새삼 꺼내는 것이 쑥스러웠던 부모님은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려 했지만, 호기심이 발동한 언니와 나는 집요하게 캐물어 두 사람이 부부가 된 사연을 끄집어냈다.

아빠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친구들보다 한 해 늦게 학교에 입학했고, 엄마는 동네 친구들이 모두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놀 친구가 없어지자 외할머니께 떼를 써서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갔다고 했다. 두 분의 나이차는 다섯 살이지만 학교 입학 연도는 3년 차이로 줄어들 수 있었던 이유이다.

엄마는 육 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나 시골에서 나름 부유하게 자랐지만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언니 오빠들의 뒷바라지를 받아가며 공부를 열심히 했다. 부산 경남여고로 유학을 떠나면서 큰언니와 함께 살았고, 먼저 교사가 된 큰언니의 코칭으로 가정 형편에 맞춰 교대에 진학했다. 당시 서예도 좋아했던 엄마는 교대 불교학생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불경을 붓글씨로 적는 데 몰입하기도 해서, 언니 오빠들로 하여금 '쟤가 저러다 시집도 안 가고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는 거 아니냐' 하는 걱정을 하게 했다고 한다.

아빠는 오 남매의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고, 시골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당시 명문이었던 마산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꿈은 문학소년이었지만 문과를 가고 싶다는 말에 선생님들께 호되게 야단을 맞고, 공대에 원서를 넣었다고 한다. 문과는 당시 남고에서 초엘리트들만 가는 분위기였고 대부분은 이과에서도 취직이 잘되는 공대로 진학하는 추세였다. 아빠는 대학교에 가서 불교학생회에 가입을 했고, 군대를 갔다 와서 예비역으로 오랜만에 동아리 모임에 갔다가 새초롬한 신입교사인 엄마를 만났다고 한다. 군대는 3년 이상, 교대는 2년제였던 시절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니 엄마와 아빠의 역사 연표가 어느 지점에서 겹쳐지기 시작하는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중에 부모님의 낡은 사진첩에서 우수수 쏟아져 나온 사진을 구경하다가 우연히 흑백으로 된 단체사진을 본 적이 있다. 불국사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당시에는 주말이면 아빠 친구분들의 가족과 우리 또래인 그 집 자녀들과 함께 산에 가고 절에 가고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데 그 단체사진 속에는 주말 모임에서 늘 보던 낯익은 어른들이 많았다.

"앗, 이 아저씨는 개똥이 아빠잖아요! 이 아줌마는 소똥이 엄만데~? 요 아저씨는 김쌤이고 맨 뒤에 키 큰 아저씨는... 우리 아빠네?!!" 신이 나서 아는 체를 하다 보니 우리 엄마는 아빠와 꽤 떨어진 반대쪽 구석에 멋진 트렌치코트를 입고 바람에 휘날리는 듯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서 있었다. "엄마다!! 엄마!! 왜 아빠랑 같이 안 서있고 떨어져 있어? 푸하하하. 아직 잘 모를 때인가?"

그렇게 단체 사진 속에서 뚝 떨어져 있던, 서로 남남이었던 우리 아빠와 엄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진 속에서 가까워졌고 연인이 되었다. 어떤 시절에는 가까이 클로즈업된 젊은 엄마의 싱그러운 독사진이 가득하기도 했다. 아빠가 월급을 거의 다 털어 산 펜탁스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엄마를 부지런히 찍어주었고, 인화된 사진을 보면서 엄마는 속으로 '음, 꽤 잘 찍었네, 마음에 드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유채꽃밭 한가운데에서 활짝 웃고 있는 젊은 시절의 엄마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방학이라 시골에 내려가있는 엄마네 고향집에 아빠가 불쑥 찾아가서 큰외삼촌께 인사를 드렸는데, 큰 외숙모는 아빠의 노안 외모 때문에 남편 친구인 줄로 알고 문을 열어줬다는 이야기. 엄마가 숙맥처럼 연애도 안 하고 절에만 다니는 줄 알았는데, 절에서 연애를 해와서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 아빠가 우리 할머니한테 '요즘 만나는 아가씨가 있는데 내일 데려올게요.‘라고 통보해서 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다 아빠 색시감을 보려고 하루 종일 시골집에 모여서 기다렸다는 이야기. 촌구석까지 오느라 한참 걸려서 아주머니들이 다 집에 가려고 돌아서는데 해 질 녘에 짠 하고 나타나서 다시 모두 마루에 앉혔다는 이야기. 화장기도 없이 수수한, 선생님이라는 손이 고운 아가씨가 한눈에 며느리감으로 마음에 쏙 들었다는 할머니의 이야기 등은 그날 한 번에 들은 게 아니라 자라면서 틈틈이 수집한 정보의 퍼즐들이다.


아빠와 엄마가 서로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았는데 하필 불교학생회에 가입했다는 것. 그리고 두 분이 같은 대학을 다닌 것도 아닌데 부산대-부산교대 사이에는 연합이 맺어져 있었다는 것이 내 딴에는 신기한 인연처럼 느껴졌다. 되짚어보면 학교에 한 해씩 늦게 또는 빠르게 입학한 것부터가 인연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불교식으로 말하면 두 분은 전생이 어떤 사이였길래 현생에서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일까?

두 분의 만남은 그 토대가 불교였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주말이면 산에 가고 절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다른 집도 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는 줄 알았었다.


유년기의 나는 불교 가정의 울타리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부처님께 상을 받는 근사한 꿈을 꾼 적도 있다. 꿈속에서 나는 향로의 잿더미 같은 것을 힘들게 기어올라갔다. 발 밑의 재가 자꾸 무너져 내려서, 꿈속이었지만 발이 푹푹 꺼지고 무척 고된 산행이었다. 꼭대기까지 올라갔더니 황금색 부처님이 활짝 웃으시며 나에게 상장을 주셨다. 착한 아이라서 주는 상장이라며 칭찬을 받고, 무척 행복한 마음으로 꿈에서 깨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안방으로 달려가서 꿈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너무나 좋은 꿈을 꾸었다며 기뻐하셨다. 당시 다니던 불교유치원 강당에서 매일 보던 불상의 이미지, 절에 가면 늘 볼 수 있는 향을 꽂은 잿더미 등의 이미지가 혼합되어 '착한 어린이'로 인정받고 싶은 나의 욕망이 반영된 꿈이라고 생각된다. 한동안은 '나 부처님께 상장받은 어린이야'라는 '상부심'이 마음속에 가득했었다.


나도 어느덧 결혼한 지 10년을 꽉 채운 한 가정의 엄마가 되었다. 부부가 손발을 맞춰가며 아이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우리 가정에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내가 모자람 없는 사랑과 신뢰를 받으며 튼튼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힘써주신 부모님께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부처님께서 맺어주신 우리 부모님의 연(緣)이 있어 오늘의 내가 있기에, 어릴 적 꿈에서 받은 그 상장을 감사장으로 바꾸어 부처님께 돌려드리고 싶다. 그리고 우리 가정의 종교가 무엇이든 간에 내 아이들도 사랑이 충만한 어른으로 자라나길 소망한다.



*부처님께 상을 받는 근사한 꿈에 관한 이야기는 예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어서 첨부합니다.

https://brunch.co.kr/@bc4ed550b9654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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