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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담 습작 09화

[쇼츠] 황금의 족쇄

by 기담


한양, 을사년의 어느 봄날.

도성 안의 가옥 값이 연일 치솟는 가운데, 금번에는 강남 땅의 규제가 풀리며 거래가 활발해졌다. 예부터 한양의 심장이라 일컬어진 사대문 안에서 벗어나, 강남은 새로운 번영의 터전으로 자리 잡았다. 그 중심엔 거상(巨商) 장석문이 있었다.

장석문은 고려지방에서 한양으로 올라와, 물류와 상단을 경영하며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다. 그는 조정 대신들과도 두터운 관계를 유지하며, 시전과 장시(場市)에서 물건을 유통시키는 데 능통하였다. 장석문은 한양 남쪽, 탄천(炭川) 근방의 토지를 선점하였고, 여러 해 동안 이를 개발하여 부를 불려갔다. 그러나 금번 도성 안팎의 토지규제가 해제되면서, 그의 재산은 더욱 불어나기 시작하였다.

"장 대감, 강남의 대지(大地)가 이제 다시금 활기를 띠고 있소이다. 저희도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지 않겠소?" 장석문의 측근인 이문길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래야지. 한양의 백성들이 강남으로 모이기 시작할 것이네. 그리되면 저잣거리에 새로이 장사를 벌이는 자들도 많아질 터, 우리는 그들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또한 이익을 취해야 하네."

장석문은 이미 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는 강남의 대지를 조금씩 높은 값에 내놓으며, 필요에 따라 가격을 올렸다.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수록 집값은 더욱 치솟았다. 새롭게 강남에 터를 잡고자 하는 이들은 그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 한양 도성 내의 부유층들도 강남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강남의 한 서민 가정에서 자란 청년 강도윤은 날이 갈수록 오르는 집값에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 역시 강남에서 장사를 펼치고 싶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집 한 칸을 얻는 것조차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아버지, 장석문 대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우리 같은 서민들은 어찌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강도윤의 부친은 담담히 대답하였다.

"세상이 변하는 법이다. 강남의 집값이 오르면, 결국엔 사는 자와 사지 못하는 자로 나뉘게 되겠지. 하지만 도윤아, 이 모든 것이 영원할 것 같으냐? 오를 대로 오른 집값은 언젠가 무너질 것이니라."

강도윤은 부친의 말을 듣고도 답답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양 장터에서 한 가지 소문을 듣게 된다.

"장석문 대감이 강남의 땅을 팔기 전에 미리 손을 써서 가격을 조작했다더군. 그러니 그 값이 정상적일 리 있겠나?"

강도윤은 이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장석문이 대대로 부를 쌓은 방법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이에 그는 장석문의 측근인 이문길을 찾아가 밀담을 나누었다.

이문길은 처음엔 말을 아꼈으나, 결국 술에 취한 채 입을 열었다.

"장 대감께서는 강남의 땅을 싹쓸이하여 값이 오를 것을 예상하셨소. 토지규제가 풀린 뒤에야 천천히 내놓고 있으니, 모두가 높은 값에 사들일 수밖에 없지. 이것이 장 대감의 지혜요."

강도윤은 그 말을 듣고 분노에 휩싸였다. 그는 장석문의 행태를 세상에 폭로하고자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장석문은 이미 조정의 대신들과 굳건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그의 재산은 권력을 등에 업고 철옹성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장석문의 집안에서도 내분이 일어났다. 그의 장남 장윤석이 부친의 탐욕을 견디지 못하고 반기를 들었다. 그는 부친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자 하였다. 그는 강도윤과 손을 잡고, 강남의 집값 폭등이 조작된 것임을 백성들에게 알리려 하였다.

"이대로라면 한양의 서민들은 모두 집을 잃고 떠돌게 될 것이오. 우리가 반드시 막아야 하오."

강도윤과 장윤석은 손을 잡고 강남 지역 곳곳에서 백성들을 모아 의로운 움직임을 준비하였다. 그들은 장석문의 가택에 몰려가 소리쳤다.

"대감의 탐욕으로 인해 우리는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손을 거두십시오!"

이들의 움직임은 한양 도성에서도 화제가 되었고, 결국 조정에서도 문제를 인지하게 되었다. 마침내 임금께서 직접 칙령을 내려 강남의 부당한 거래를 조사하게 하였다.

장석문은 오래 쌓아온 부와 명성을 한순간에 잃고 말았다. 그의 재산은 압류되었고, 강남의 집값은 서서히 안정세를 되찾았다. 강도윤과 장윤석은 서민들을 위해 새로운 법안을 만들도록 힘을 기울였다. 그들은 비록 많은 것을 잃었지만, 도성의 백성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세월이 흐른 뒤, 한양의 거리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강남의 대지는 여전히 번영을 누리고 있었지만, 이제는 백성들에게도 열린 기회의 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변화를 위해 싸운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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