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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 Oct 21. 2024

내 인생에 시험은 더이상 없다

1부. 대학만 가면 끝인 줄 알았어요

#1. 내 인생에 시험은 더이상 없다


 2PM이 옷을 찢으며 여고생들의 마음을 털고, 소녀시대가 형형색색의 스키니진을 입던 시절. 나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채 어디엔가 앉아있었다.


 그때의 나는 계속 앉아있는 존재였다. 교실에서도, 학원에서도, 집에서도. 팔꿈치가 겨우 들어갈 만한 책상 앞에서 전년도 모의고사를 풀고, EBS 문제집을 풀고, 단어를 외우고, 연도를 외우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강제하고 학생들에게 머리 길이를 단속하던 선생님들은 수험생활에 한껏 지쳐있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대학만 가면 다 끝나”, “대학만 가잖아? 살도 빠지고, 남자친구도 생겨. 그러니까 지금은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선생님 뿐이겠는가, 부모님도 친척들도 그리고 TV 속 청춘 시트콤이나 드라마 속에서도, ‘대학’은 지구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라고 이야기했다.

 나에게 대학, 그것도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은 ‘100% 당첨되는 복권’을 얻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7시 40분에 등교해서 11시 30분에 하교했던 나의 하루에는 쉬는시간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공부만이 들어가있었다.

 머리가 아닌, 손이 기억할 수 있도록 쉬지 않고 풀었던 문제를 또 푸느랴 오른손 중지에는 굳은살이 박혀버렸고, 엉덩이 힘으로 대학을 가는 줄 믿었기 때문에 살은 점점 차오르고 엉덩이에 종기가 생기는 날도 다반사였다.


 순 공부량이 10시간을 넘기면 좋은 대학에 합격을 할 수 있다는 말에, 초시계를 들고 다녔고 화장실 가는 시간 잠깐 멍때리는 시간을 제외한 순 공부시간이 11시간을 돌파하던 어느 날. 수능은 한 달 앞으로 다가와있었다.


 평소 위염을 달고 살았던 나였기에, 혹시라도 위경련이 일어나지 않을까, 수능을 한 달 앞두고부터는 매일 똑같은 반찬으로 밥을 먹는 철저함도 잊지 않았다.


 지금 그때의 나를 본다면 참 딱해 보이지만, 사실 열아홉의 나는 그렇게 불행하지 않았다.

 나는 열열한 사이비신도처럼 믿고 있었다.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노력한다면 빛나는 미래가 있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추위가 거세던 수능 당일. 나는 한 달 동안 똑같이 먹었던 반찬으로 아침을 먹고, 똑같은 반찬으로 구성된 도시락을 가방에 넣은 채 수능장으로 향했다.

 

돌이킬 수 없이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지금까지의 노력과 어느정도의 행운이 적절하게 섞인. 꽤나 마음에 드는 가채점을 받아냈다.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가족들 앞에서 나는 선언했다.


“내 인생에 시험은 더이상 없다”


 의기양양하던  그 소녀는 딱 십년 후, 다섯 번의 이직을 한 사람이 되고 만다.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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