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리 Oct 22. 2024

너는 내 운명

1부. 대학만 가면 끝인 줄 알았어요

#3. 너는 내 운명


 이제 슬슬 졸업을 생각해야 하는 겨울이었다. 취업이니 대학원이니 준비를 시작한 친구들은 점점 만나기 어려워졌다.

 나도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민해야했지만, 교환학생으로 다른 친구들보다 졸업이 한 학기 늦어진터라 조금 더 그 고민을 미뤄두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앞으로의 5년을 뒤흔들어 놓을 한 연락을 받게 된다.


“너 요즘 뭐해? 심심하면 연극 한 번 해보지 않을래?”


 운명같은 사이 있다면 바로 이런거였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낯도 많이 가리고 사람 많은 것을 싫어했던 내가 수 십명의 낯선 사람들 속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있었다. 한 번 구경만 해보려던 것이, 기획팀이라는 역할을 부여받았고 공연 홍보를 하고 펀드를 끌어오고 포스터를 붙이고 홍보 찌라시를 돌리는 일을 하게 되었다.


 제대로 씻지도 자지도 못하는 날들의 연속에서 몸은 너무 힘들었지만, 학생회관에 걸린 공연 포스터를 볼때 많은 관객들이 공연장에 들어오기 위해 줄을 섰을 때, 가득찬 공연장을 봤을 때.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우리가 만든 무대에 박수가 울려퍼졌을 때 나는 심장이 울렁일 정도의 벅차오름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손을 쓸 틈조차 없이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연극 동아리에서의 생활은 정말 지랄맞고도 행복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와 치열하게 싸워보기도 하고, 새벽까지 무대 바닥을 깔고 그 바닥에 누워서 자보기도 하고. 손을 달달 떨며 아파트 2층이 조금 못되는 천장에 조명을 달고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울어보기도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무언가가 완성되는 과정이 그리고 그 안에 내가 있다는 사실은 나를 벅차오르게 만들기 충분했고, 나는 무언가에 벅차오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미치게 만든 것은 글쓰기. 극작이었다. 우연히 들어간 극작스터디에서 다정한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며 희곡을 써내려갔다. 대학교 입학과 함께 고이 묻어두었던 예술가라는 꿈이 가뭄을 이겨낸 장작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예술의 혼이 불타오름과 동시에 취업은 끝없는 계단 밑으로 떨어져내려가고 있었다. 예술이 아닌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나에게 너무 의미없는, 아주 작은 일처럼 느껴졌다.

 

왜냐, 나는 예술가가 될 사람이었다. 스무살 이후로 나에게 두 번째로 찬란한 문이 열린 순간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에게 세상은 조금 손쉬운 곳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심지어 잘한다고 믿었으니, 얼마나 교만했을까.


 별다른 훈련도 없이 후루룩 써버린 연극 대본이 원하던 공모전의 최종심에 올라가고. 면접관들 앞에서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들었을때. 그 자만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 공모전에서는 탈락했지만, 예술가라는 것 작가라는 직함은 내가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쉽게 도달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토익과 컴활, 각종 공모전과 인턴으로부터 몇 백 광년이상 떨어져버렸고. 몇 편의 희곡과 몇 번의 연극 작업 경력만을 품에 안은 채 졸업반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소속이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어떻게 만드는지 말이다.



* 이미지 출처: pixabay

이전 03화 어떻게든 될 줄 알았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