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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 Oct 23. 2024

다시, 처음으로

1부. 대학만 가면 끝인 줄 알았어요

#5. 다시, 처음으로



 돈키호테형 인간. 문제를 받자마자 풀어대는 나를 보며, 중학교 수학 과외 선생님이 붙여주신 별명이었다.

 문제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 함정은 무엇인지 파악하기보다, 일단 냅다 풀어대고, 답이 안나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세 번정도 길을 잃은 후에야 문제를 다시 살펴보는.


 다섯 번의 퇴사 후 불현듯 선생님의 놀림이 생각났다. 진로에서 나는 한 번도 멈춰서 생각해보지 않고 모든 경우의 수를 경험하고 있었다.



 퇴사 때마다 카카오톡의 프로필에는 “다시, 처음으로”라는 문구가 주문처럼 걸려있었다. 그 문구를 쓰는 것마저 지겨워진, 더 이상의 열정이 남지 않은 돈키호테는 드디어 진로라는 문제 앞에서 잠시 멈추자는 결심을 했다.



 솔직히 고백을 하자면, 내 의지로 멈춘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수번의 이직을 한 나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고, 면접마다 나의 이직 이력에 발목을 잡히자 내린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이유는 어찌되었든. 몇 년의 진로 방황을 거친 후에야 나는 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했더라?”


 나에게 던진 첫 질문이었다. 연극 작업을 좋아했지.


“왜 연극 작업을 좋아했지?”


 나는 이야기가 좋았다. 누군가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 좋았고, 그 인물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고민하고 치열하게 다른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았다.


 다시 말해, 나는 누군가의 삶에 대해 깊게 들여다보고 그 삶을 고민하는 과정을 좋아했다.



“그걸 꼭 연극으로만 할 수 있나?”


 아니다. 삶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거라면, 분명 다른 직업이 있을 것이었다. 진로 방황을 한참 한 후에야, 나는 진정으로 나에게 맞는 진로를 찾게 되었다. 사람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


 바로 심리상담사이자, 진로상담사였다.



*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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