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바다섬 Aug 02. 2023

[교사의 시선詩選] 먹먹

사랑 - 정호승

사랑 - 정호승


꽃은 물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새는 나뭇가지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달은 지구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나는 당신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글에 앞서 돌아가신 서이초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세상 곳곳에서 서이초 교사 사건, 교권 추락, 무너지는 학교 등 많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인터넷 기사에서 서이초 교사를 둘러싼 의문과 논쟁이 매일 올라오고,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심심찮게 이 주제에 대해 나누는 대화가 들린다. 너무도 젊은 나이에, 자신이 일하던 직장에서 숨을 거둔 선생님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맴돈다. 


모든 선생님들이 이번 사건을 들으며 자신의 저경력 시절을 떠올렸을 것이다. 매일 있는 수업 하나하나에 집중하기에도 에너지가 많이 드는 시절. 아이들이 너무 이쁘고 사랑스럽지만 무엇을 어떻게 더 해줘야 할지 고민으로 밤을 새우던 시절. 나이가 많은 학부모들의 요구와 비난에 크게 마음을 다치던 시절. 몸도 마음도 힘들지만 아이들에게도, 주변 선생님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쉽게 내색하지 못하던 시절. 그 시절을 견디고 견디고 견뎌오던 아이들의 사랑하는 담임선생님, 누군가에게는 친구, 동생, 한 가정의 딸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는 사실이 여름을 먹색으로 덮었다. 


방학을 코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학기말 활동을 하던 날 처음 사건과 관련된 글을 읽었다. 교권이 떨어질 데로 떨어져 사실상 문제행동을 반복하는 아이를 막을 수 있는 힘도 없고, 과한 민원과 요구에 대해 제대로 거부하기도 어려운 현실에 나는 지쳐있었다. 그저 올해도 운이 좋아서 지금 눈앞에 이쁜 아이들이 가득하고, 서로를 사랑으로 대하고 성장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요행 또한 언제까지 반복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내 눈빛은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본능적으로 어른의 마음을 느끼는 아이들은 이런 내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선생님, 아파요?", "선생님 안 좋은 일 있어요?" 내 안부를 묻는 아이들을 보니 더 마음이 먹먹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제자들이다. '돌아가신 선생님에게도 이런 아이들이 있었을 텐데.', '나를 걱정해 주는 아이들처럼 선생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었을텐데.' 이 모든 것들을 두고 가고 싶을 만큼 그 선생님은 얼마나 힘드셨던 걸까. 자꾸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 앞에서 웃고 장난치며 한 학기 동안 뭘 배웠는지 서로 이야기 나누는 환한 아이들의 얼굴과 자꾸 스스로 숨을 거둘 결심을 하며 삶을 돌아봤을 선생님의 마음이 겹쳐서 더 슬프고 서러웠다. 


언제 우리가 끝날지 모른다. 한 학기, 1년을 다시 시작할 수 없을지 모른다. 아이들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도 떠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우리 사랑이 나의 잘못도, 아이들의 잘못도 없이 끝나버릴지 모른다. 부서지기 쉬운 우리 사랑이 부디 온전할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조차 교사와 아이들의 몫이 돼버리는 걸까.  사회가 교실에 온기가 들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몇몇의 아이, 학부모 때문에 다른 아이들의 알록달록한 학교생활조차 먹색이 되지 않도록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칼림바 연주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