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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바다섬 Jun 19. 2023

[교사의 시선詩選] 작은 위로들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반칠환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 반칠환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요즘은 선생님이 봉인던데? 그만둘 생각해 본 적 언?"


고등학교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근황을 나눌 때면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이다. 뉴스에서 기사를 읽다 보면 선생님이 네가 생각난다고. 참교사는 단명하는 시대라는데 네 성격에 너도 단명하는 거 아니냐고. 장난 반 걱정 반으로 하는 친구들의 말에 대답한다.


 "가끔은 그만둬야 되나 싶을 때가 인."


교육대학교를 다닐 때부터 교직을 성직관의 관점으로 바라보곤 했다. 인간의 성장을 옆에서 지원해 주고 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교사라는 역할에 성스러운 마음과 존경심을 가득 품고 나는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대학교와 교생실습 때 배운 내용만으로 내가 기대하던 교사로서의 역할을 해내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문제행동을 하는 학생들도 많고, 문제행동을 하는 원인도 다양했다. 또 학생들을 둘러싼 환경들은 나의 능력 밖에서 우리 교실에 큰 영향을 주곤 했다. 수업에서도 그 해 아이들마다 다른 특성과 매해 달라지는 학년과 교육과정으로 전문성이 생기는 듯 정체된 듯 나를 초조하게 했다. 그리고 요즘에는 교사에게 주어진 권한보다 의무가 더 많아 교사의 목을 옮아 메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교사들 사이에서도 '탈출을 지능순이다.'라는 말마저도 나오고 있다. 이제 그냥 이 길을 멈춰야 하나 고민이 들게 한다.


"선생님! 내년에도 우리반 선생님 해주세요."

"선생님! 이번에 문제 잘 맞힐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 설명 쉬워요!"

"선생님! 사랑해요!"


하지만 아직은 멈출 수 없겠다. 아이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 사랑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지지해 주는 말, 함께 성장함을 느끼는 경험. 이런 장면 장면들이 멈추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발걸음을 한걸음 더 옮기게 한다. 대단한 경험이 아니라도 충분하다. 여름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가에서 시들어가는 강낭콩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에서, 작은 색종이로 짝과 함께 튤립을 접고 있는 아이들의 손가락에서, 쉬는 시간 할 일 없이 내 옆에서 얼쩡얼쩡 내 관심을 어떻게 끌어볼까 고민하는 아이의 장난스러운 표정에서. 나는 힘을 얻는다. 아직 멈출 수는 없나 보다.


"그래도 아직은 더 할 수 이시크라. 아이들도 좋고 나도 좋아 부난. 더 해사주."


친구들과의 술자라에서 소주는 쓰지만 교직생활은 더 쓰다. 하지만 가끔은 달고 언제나 투명하게 반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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