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입성
4. Resurrezione di Lazzaro 라자로를 일으키심
병으로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린 이야기는 요한 복음서(11장 1-44절)를 통해 전해진다. 그리고 이 표징으로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예수를 따르자 최고 의회(대사제, 수석 사제들, 원로들, 율법 학자들, 바리사이들)는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게 된다. (요한 11, 45-57) / (마태 26,1-5) / (마르 14,1-2) / (루카 22,1-2)
라자로는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의 오빠로 이 세 남매는 예수와 각별한 사이였다. 복음서는 예수가 그들을 사랑했다고 전하면서 예수가 직접 라자로를 친구라 일컫는 장면이 나오는데, 죽은 라자로를 살린 이 이야기에 포함된 내용은 아니지만 예수가 친구라는 의미를 따로 설명한 부분이 있다. 『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 (요한 15, 15)
성경 안에서 친구라는 표현은 흔하지만 라자로를 친구라 지칭한 것이 특별한 이유는 마르타와 예수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도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을 한다. 예수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이들이 명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라자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다. 시체가 부패하면서 나는 냄새에 코와 입을 막은 이들이 보인다.
죽었던 라자로가 천으로 감긴 채 되살아 나온 것을 보고 예수를 믿지 않던 유다인들이 호기심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상체를 라자로 쪽으로 기울여 자세히 들여다보는 자세와 벌린 팔을 높이 들어 올려 놀라움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그림 속 인물들이 온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조토 회화의 특징이다.
북받치고 산란한 예수의 마음을 제자들의 슬픈 표정이 대신 말해주고 있다.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가 예수의 발아래 엎디어 예수 일행을 맞이한다.
무덤 입구를 가로막은 돌을 치우는 이들이 구석에 자리하는데, 등을 돌린 뒷모습을 그려서 그림 안에 공간을 만드는 것 또한 조토 회화의 특징 중 하나이다.
5. Cristo entra in Gerusalemme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여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는 이야기는 4대 복음 모두가 전하는데(요한 12, 12-19) / (마태 21,1-11)/ (마르 11,1-11) / (루카 19,28-38), 이는 평소처럼 파스카 축제를 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이 파스카의 어린양(희생양)이 되어 죽음과 부활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다.
예수가 나귀를 타고 예수살렘 성에 들어서면서, 앞에 있는 군중들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 축복을 내리고 있다.
뒤이어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이 보이는데 하나같이 결의에 찬 얼굴이다. 진지한 표정과는 달리 예수가 탄 나귀 등에 왼손을 얹고 걷는 모습이 사실적이면서 또한 정겹다.
예수를 태운 나귀의 눈과 입이 웃고 있다. 예수를 맞이하는 군중들의 환호와 들뜬 분위기에 나귀가 함께 공감하는 것이다. 실제로 나귀는 관찰력이 예리하고 감정을 잘 표현하는 동물이다. 어미를 꼭 닮은 아기 나귀도 나란히 웃고 있다.
예수 일행 맞은편에는 군중들이 손에 나뭇가지(종려나무 잎)를 들고 흔들며 환영을 한다. 옷을 벗어 예수가 오는 길에 깔아 놓는 모습도 보이는데, 생명을 상징하는 푸른 잎을 흔들면서 환영하는 이의 발에 흙이나 모래가 묻지 않도록 천을 깔아 환대하는 것은 최고의 의전이자 예우다.
군중들 중에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 환자도 보인다.
너무나 많이 모인 인파들 때문에 예수의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없는 이들은 주변의 나무에 올라 먼발치에서라도 보고자 했다. 이 장면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록한 부분에는 나오지 않지만 루카 복음서(19장 1-10절)의 자캐오 이야기에서 짐작할 수 있다.
키가 작았던 자캐오는 예수가 예리코 거리를 지나가고 있을 때 군중에 가려 예수를 볼 수가 없게 되자,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이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에서도 충분이 이런 일이 있었을 것이라는 조토의 추측이 더해져 그림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6. Cristo scaccia i mercanti dal Tempio 그리스도께서 상인들을 성전에서 쫓아냄
성전을 정화하는 이야기는 4대 복음서(마태 21,12-17) / (마르 11,15-19) / (루카 19,45-48) / (요한 2,13-22) 모두에서 나오는데 차이가 있다면 마태오, 마르코, 루카 세 공관 복음은 이 이야기를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이후의 일화로 기록하고 있지만, 요한 복음서는 예수의 첫 표징이었던 카나의 혼인 잔치 이후의 이야기로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 복음서는 공관 복음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지만 시간의 흐름이 조금 다른데, 예수로부터 시작되는 신약의 기록을 요한 복음서는 천지창조 전 '말씀이 계셨다'는 문구를 넣어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그분이 바로 예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사실적인 예수의 일화와 더불어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내포하는 것으로 시간에 따른 기록보다 일화가 지닌 의미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 2022
성전 정화 사건에 대한 조토의 그림은 2022년 6월 18일 브런치에서 발행했던 '그림, 성경 속 감정이 폭발하다'에서 다루었던 이야기와 중첩되는 부분이 많아서, 부족하나마 그 글로 갈음하고자 한다.
https://brunch.co.kr/@eunseom/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