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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Jun 13. 2022

미술 처방

엄마로 만난 미술


오늘은 아들이 또 누굴 물었지?



아들이 세 살 무렵,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오면 떨렸다.

오늘은 아들이 또 누굴 물었지? 계속되는 어린이집 사건. 정확한 사정은 아들이 자주 친구들을 문 것이다. 다른 아이의 연약하고 몽글한 피부를 물었다고 생각하니, 미안하다는 표현으론 한없이 부족했다. 스트레스가 컸다. 내 이마에 주름이 한줄 한줄 생기는 것 같았다. 

나는 매번 어린이집에 빵을 들고 갔다. 선생님께 물린 아이 엄마에게 빵 전달을 부탁하며, 사과했다. 차라리 내 아이가 물리는 게 낫지. 스트레스가 컸다. 

결국 어린이집을 종료 했다. 더는 미안하고 싶지 않았다.     


출산 후 3개월만에 바로 복직한 난 아이 돌보는 일을 당연하듯 친정엄마에게 맡겼다. 퇴근해서도 남은 회사 일을 처리하느라, 아이와 몸과 마음을 부비며 보낼 시간이 부족했다. 육아서 한 권도 읽지 않고, 내 일만 한 불량엄마였다.


‘우리 아들이 왜 그럴까?’ 심리상담소를 찾다가, 포기 반, 나를 믿는 심정 반으로 아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사실 일을 쉰다는 것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그림이었다. 내 일이 없다는 게 싫고, 불편했다. 나의 존재가 투명해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내 존재를 채우느라 엄마로서 소홀한 내가 보였이기 시작했다.     

사직서를 내고, 여태껏 보내지 않았던 아들과의 일상을 시작했다. 


퇴근 후 돌아와 아들을 잠시 돌보는 것과 하루 종일 보내는 것은 달랐다. 

밥을 주고, 목욕시키고, 놀이터에서 놀고, 책을 읽어주고, 조금이라도 쉬려면 뽀로로라도 보여주며 엄마의 임무의식을 다했다. 

거의 매순간 집을 치운거 같은데, 집은 하루종일 어질러져 있었다. 밥 때는 왜이리 자주 돌아오는 지, 신은 왜 인간을 세끼를 먹도록 했을까. 하루 한끼만 먹고 산다면 이 노동이 줄어들텐데. 쓰레기도 얼마나 줄 것이고, 시간과 비용과 노동력을 어마어마하게 아낄 수 있을텐데. 별의별 생각을 하며 남편 퇴근만 기다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했다.     


화가 나혜석은 ‘자식은 나의 살점을 때어먹는 악마’라고 표현했다. 

육아에 짓눌린 일상으로 바뀌며, 나혜석의 마음을 나의 모든 세포가 공감했다. 어린이집도 보낼 수 없는 이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직업이 생각났다. 맞아. 난 미술선생이지. 내가 아들과 미술 하지 않는 건 심한 반칙 같았다. 

아들과 미술을 시작했다. 

낙엽을 주어 놀고, 낙서와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신문지를 말아서 놀고, 솜을 가지고 놀고, 물감으로 놀았다. 그저 미술로 놀았다. 인터넷으로 프로그램을 검색하고 재료를 구하기 쉬운 수준에서, 청소가 감당되는 수준에서 놀았다. 

놀이를 하는 순간, 나는 미술선생님이 되었고, 아이는 나의 학생이었다. 시간을 억지로 흘러보내는 것보다 훨씬 재밌고 생기로웠다. 이제 20~30분 남짓 되는 미술시간은 아들과 나의 달콤한 데이트가 된 것이다.

내일은 아들과 뭘 할까. 매일밤 생각하며 잠들었다.      



그냥 그렇게 보내다보니 아들은 곧 안정된 모습을 찾았다. 

대단히 열정적인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었고, 일주일에 한두번 미술놀이를 했을 뿐이었다. 아이는 문제아이가 아니라, 그저 엄마와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였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미술놀이’는 꽤 좋은 방법이었다. 그때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이어나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술로 보낸 시간이 아이의 이상행동을 멈췄으리라 확신한다.

 ‘미술놀이’가 아이의 본능을 채워주고 사랑을 느끼게 해준 순간이었으리라.      

물론 내가 미술전공자라 미술놀이가 좀 더 편했을 수 있지만, 유아기 미술놀이의 수준은 미술전공자의 실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이를 모르는 미술전공자보다 아이를 아는 엄마가 더 훌륭한 선생님이니까.


로웬펠드 미술교육학자는 아이는 창의성을 타고난다고 말하며, 어른은 아이의 미술을 방해하거나 훼방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이가 미술로 놀도록 간섭하거나, 훼방놓지 않았다. 그냥 그 시간과 재료를 마련해주었을 뿐이었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아들에겐 일주일에 한번 미술을 챙긴다. 이것은 내가 미술을 업으로 삼고 있어서가 아니다. 아이가 미술로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다.   

  

미국 드렉셀대학 기리자 카이말 교수는 그림을 그리기나 만드는 활동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니솔’을 낮춰준다고 발표했다. 

그림은 마음이 투영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미술활동을 통해 불쑥 나온다. 마음이 이미지로 시각화 되고, 방어기제가 자연스럽게 풀린다. 때론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내용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공격성이 해소된다니. 미술, 너무 안전한 약 아닐까.


미술은 공부와 다르게 작업을 하면서도 대화 나눌 수 있기에 학습으로 답답해진 뇌도 이때 만큼은 말랑말랑 해지나보다.      

혹시 오늘도 아이는 정해진 문제를 풀고, 암기 하는 활동만을 했다면, 아이 뇌가 건조해지지 않았을까. 

철학자 수잔랭거는 ‘예술은 삶을 생기있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이의 삶을 생기있게 하는 가장 쉽고 편한 예술을 안다. 그것은 집 앞 상가마다 있다. 

미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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