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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Oct 19. 2023

대회의 소득

“미술학원을 다녔는데, 상장 하나는 있어야죠.”

 “원장님, 여기는 대회준비 같은 건 안하나요?”

 “대회에서 상장을 타면 우리 애가 동기부여도 되고 자신감도 얻을 것 같은데..”



교육원을 운영하며, 자주 고민하고 염려되는 사안은 다름 아닌 미술 대회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까지 미술대회에서 아이들이 상장을 ‘받게 하는 것’은 쉬웠다.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지 못할 때, 어떻게 채색해야 효과적인지 모를 때 가르쳐주는 것은 미술선생님으로서 당연한 임무였다. 


출산 전, 홈스쿨을 하던 시절 ‘대회’는 원생을 모으기 좋은 이벤트였다. ‘과학상상화 그리기대회’, ‘불조심대회’를 기본으로 각종 대회는 사업체를 유지하는 마케팅 수단으로서 적합했다.

엄마들과 아이들은 상을 타기 원했고, 나는 가르치면 되었다. 상을 타면 엄마들에게 잘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인식되었고, 원생은 늘어났다. 엄마들은 내게 연신 빵이나 케이크, 과일을 선물했고, 자연스럽게 입소문도 났다. 아이는 상을 타고, 엄마는 기뻐했고, 괜찮은 일이었다.      


문제는 내가 엄마가 되고나서 부터다. 어른의 도움을 통해 상을 타는 것은 뭔가 불편했다. 진짜 아이들의 그림 같지 않았다. 선생님의 아이디어, 선생님이 정한 구도와 색, 선생님의 터치로 마무리한 그림, 정갈하나 답답한 어른의 선.

이건 내가 생각하는 진짜 미술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 스스로 그림을 그려서 내면 대회 결과가 좋지 않을 텐데. 

그리고 엄마들은 내게 말했다.      

“미술학원을 다녔는데, 상장 하나는 있어야죠.”
 “원장님, 여기는 대회준비 같은 건 안하나요?”
 “대회에서 상장을 타면 우리 애가 동기부여도 되고 자신감도 얻을 것 같은데..”

흔들렸다.


교육결정권자인 엄마들의 요구사항을 현실미술에서 외면하긴 어렵다. 

가만 엄마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나도 어릴 적 상장을 받으면, 좋았다. 자신감도 생겼다. 특히 다른 거에 특출한 게 없었던 난 ‘상장’ 하나가 내 미술을 지속하는 힘이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자신 있게 힘 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엄마도 좋아했다. 아빠도 좋아했다. 언니도 내가 미술을 잘 하는 걸 인정했다. 

그렇게 난 어릴 적 상장을 좋아했고 지금도 상을 받는 순간의 내 모습까지 생생히 기억한다. 상장은 나를 더 잘하고 열심히 하도록 이끌었다.

자 그럼, 고민이 깊어진다. 

상장, 필요한 거니까.      


그렇게 미술대회가 필요한 것 같아서 선생님들과 미술대회를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회의를 했다.

“미술대회를 준비하되, 아이들이 상을 받아도 떳떳하고 기분 좋을 수 있는 상장이어야 해요”

“스스로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밀도 있게 완성하는 과정을 경험시켜 줍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교육원에서 미술대회 수업이 진행된다면, 과거에 내가 가르친 미술과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걱정됐다. 

결국은 이 비슷한 과정을 어떻게 ‘의미 있게’ 끌고 가야 할까, 난 많이 전전긍긍했다. 이 의미 있음은 아이들과 수업으로 만나고 있는 선생님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미술대회 수업을 하며 놀란 사실이 있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생각을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선생님, 모르겠어요.”

“선생님, 생각이 안나요.”

 “선생님이 정해주세요.”
 실제로 아이들이 꽤 자주 하는 말이다. 

생각하기가 귀찮고, 생각할 상황에 많이 처해보지 않아서 일게다.     


나의 교육원에서도 자주 정물, 실물, 작가의 그림들, 인물 사진, 풍경 등.. 자주 뭔가를 보고 그리는 것에 익숙했다. 본 것을 모티브로 자신의 생각을 더 해 재해석할지라도. 볼 게 있었다.

그 말은 그렇게 많이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스스로 빈 종이에서 출발하는 것을 이렇게 당황해하고 어려워할 줄 이야.

물론 생각이 터져 나오고 할 이야기가 충만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생각 자체의 경험의 양과 깊이가 작았다.     

‘사색’보다 ‘검색’을 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대부분 인터넷에 생각을 의존한다. 진실로 수업 시간을 모두 다 사용해서라도 ‘생각을 하게’ 하고픈 마음은 간절했다. 그러나 현실 미술에서 아이가 수업 내내 생각을 했다고 할 경우, 우리는 보통 이렇게 말했다.


“왜 아무것도 안했어?” 

수업 후, 생각을 하느라 아무것도 안한 결과물을 어머니에게 보여줄 용기도 내겐 없었다. 분명 엄마 입장에서 텅 빈 종이를 이해하긴 어려울 거다. 교육비와 시간을 투자했는데, 선생님이 이 시간 동안 뭘 했을까? 아이 생각도 하나 도움 못 줬나 싶을 거다. 이러려고 미술학원 보내는 건 아닌데. 뭐든 눈에 보이는 성과나 소득이 있기를 바랄 수 있다.      


그런데, 가만, 정말 소득이 없을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것, 자신의 생각을 쥐어짜 보는 것, 이 생각이 어쩔까를 고심하는 그 시간, 나의 온 지식과 경험을 연결 짓는 시간, 과목과 과목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융합되고 연결되는 시간. 이 과정에서 아이는 세상에 내 생각이 쓸모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찾고 잡고 싶은 ‘창의성’ 아닌가. 그럼 가장 쓸모 있는 시간인데.     

결국 내게 미술대회가 골칫덩어리였던 건, 상을 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결과’에만 의미를 두어서였다. 상장을 타지 않으면, 소득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제 내게 대회의 의미가 재정립되었다.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해보느냐, 그것을 종이에 옮김으로써 어떤 것을 경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세상에 자신의 생각을 내보이는 이 과정이 미술대회가 주는 진짜 소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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