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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Aug 04. 2023

인정받지 못한 미술 과목

학교에서 만난 미술





.. 선생님, 다음 주는 중간고사고, 미술은 시험에 포함되지 않아요.
전 미술을 전공할 것도 아니고 제겐 지금 수학이 중요해요. 다른 과목 선생님들도 이때는 자습하게 해 주었어요.
제가 왜 미술을 공부해야 하죠?




중학교 때, 중간고사를 한 주 앞둔 미술시간이었다.  

그때는 주변교과로 분류되었던 미술, 음악, 체육, 가정, 도덕과목은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선생님은 으레 수업 대신 자습을 주었다. 중간고사 과목인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를 공부할 수 있도록.

그런데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다. 

미술선생님이 수업을 했고, 앞에서 둘째 줄에 앉은 승연 이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듯 수학문제집을 펼쳐놓고 풀었다. 다른 아이들은 책상 밑 서랍에 문제집을 숨기며 공부했는데. 승연 이는 당돌했다. 눈에 띄었다.      


두 가지가 이상했다. 

선생님이 수업을 하는 것. 승연이가 다른 공부를 하는 것. 

아무도 듣지 않는 수업은 일방 통행 중이었다. 선생님은 이 상황을 알면서도 수업을 건조하게 이어갔다. 선생님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 강약 없는 일정한 음성은 무겁게 교실을 맴돌았다. 선생님은 승연이를 히끔히끔 보았다. 상황은 계속 이어지다가 수업 중반쯤에 가서야 선생님이 말했다.


“둘째 줄 학생, 지금 뭐 하는 거지? ” (선생님이 멋졌다)

“.. 선생님, 다음 주는 중간고사고, 미술은 시험에 포함되지 않아요. 전 미술을 전공할 것도 아니고 제겐 지금 수학이 중요해요. 다른 과목 선생님들도 이때는 자습하게 해 주었어요. 제가 왜 미술을 공부해야 하죠?” 

미술시간에 수학공부를 한 건 승연이 잘못인데도, 목소리가 힘 있고, 당찼다.

“(잠시 조용했다). 어, 그럼 넌 수학 공부하도록 해.” 선생님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수업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숨겨서 공부하던 문제집을 책상 위로 올리는 아이들은 더 많아졌다.

선생님은 그 상황을 보면서도 수업을 애써 채웠다. 

그렇게 미술수업은 마무리됐다. 그날의 수업은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난 속으로 선생님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물론 수업을 하는 게 이상하긴 했다. 

여태껏 중간고사기간에 어떤 선생님도 수업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미술은 내게 소중한 과목이었고, 내 눈에도 대놓고 문제집을 푸는 게 거슬렸다.


그런데 난 좀 그랬다.

‘뭐야. 저렇게 말할 거라면, 뭣 하러 말을 걸었지? 더 이상해졌잖아.’ 선생님은 왜 자신의 수업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을까? 왜 미술 시간을 그렇게 쉽게 자습시간으로 내주지? 그렇게 쉽게 물러설 거라면. 왜. 

그 날 선생님은 주변교과의 설움을 정면으로 학생에게 당했다.      

입시위주로 입안된 교과과정에서 미술의 시수만 적었던 게 아니다. 그 적은 수업시수조차도 눈치를 봐야 했던 당시의 상황들, 미술을 주변교과로 치부하고, 그 마저도 암묵적로 지켜주지 않았던 학창 시절, 우리의 전인적 성장을 지켜주지 않은 채, 지식습득 위주의 공부로 채워준 학교와 어른들.      


이제는 생각해 본다. 미술을 뺀 건 우리를 위한 것이 되었을까.     

학창 시절, 엄마는 공부할 시간도 부족하다며 내가 좋아했던 미술학원을 그만두게 했고, 학교에서도 미술과목은 인정받지 못했다. 내게 전부였고 사랑하는 과목 ‘미술’은 설 자리가 없었다. 

‘미술’을 어른들은 지켜주지 않았다.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긴 한데, 정작 일상에서 미술은 대우받지 못한다. 

엄마들은 말한다. 공부할 시간도 부족하다고. 미술은 이 정도면 됐다고. 전공할 것도 아니고 소질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미술을 그만한다고. 그렇게 아이들은 미술과 이별한다. 

당장 눈에 잡히는 결과와 성취를 바라는 상황에서 미술의 쓸모나 가치를 말하는 것은 굉장히 추상적으로 들릴 거다. 뜬 구름 잡는 것처럼. 미술이 좋은 것은 알겠지만.     


교육원을 그만두는 아이의 엄마에게 미술은 그림을 단지 그리기 잘 그리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미술의 가치를 구구절절 붙잡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교육인보다 자영업 사장의 입장에서 말하는 거라고 혹여 받아들이진 않을까 싶어서 잡지 못했다. 말하지 못했다. 

나의 학창 시절에도 지금도 인정받지 못했던 미술 그 자체의 쓸모를. 





미술을 가르치고 공부하고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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