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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Oct 21. 2023

그림을 잘 그리려면

재능과 꾸준함



 ‘재능’이란 놈이 찾아온 유일한 시기였던 것 같은데.    


         


내가 그림 천재라도 된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은 내 그림을 보러 몰려들었고,  내 그림은 언제나 교실 뒤 걸려 있었다.

어느 것 하다 특출나지 못했지만 그림에선 주목받았고, 나도 그림 그리는 시간을 사랑했다. 그림 자체보다 그 행위가 행복했다. 그 시간이 지속됐다면 좋았으련만. 그 시절은 길지 않았다. 


엄마는 아무리 그림을 잘 그려봐야 공부를 못하면 대학을 못간다며 나의 미술을 강제 종료시켰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의 시간. ‘재능’이란 놈이 찾아온 유일한 시기였던 것 같은데. 

결국 난 미술과 이별했다.      


나의 교육원에서도 엄마들은 자주 공부를 해야한다며, 아이 미술을 종료시킨다. 

가장 좋은 때에 아이가 미술과 작별하는 구나. 쉬었다하면 그 미술은 사라질텐데. 이걸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또 내가 그럴 자격이나 있나. 자주 공부에 밀리는 미술의 위치가 서러웠다. 

미술이 공부에 밀리는 건 당연한건가 가끔 미술이 초라해보이고 설움도 났다. 그렇게 떠나보내는 아이들의 미술이 아까웠다.      


나는 입시 때가 되어 다시 미술을 시작했다. 

어릴 적 그 광채났던 그림들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손은 딱딱하게 굳었고, 그림을 그리는 연필선이나 붓질에서도 흥미나 감동은 없었다. 그냥 묵묵히 그릴 뿐. 내겐 그나마 잘하는 거여서.

어릴 때 찾아왔으나, 가꾸지 않은 재능은 그렇게 휘발 됐다.     


고둥학교때, 재능이 하나도 없는 것 같던, 친구가 갑자기 미술을 한다고 했다. 속으로 웃었다. 미술이 그렇게 만만한지 아나. 친구는 굳은 내 손으로 그린 그림 보다도 한참 더 딱딱했다. 공식처럼 명암을 넣은 그림은 부자연스러웠다. 마징가제트를 보는 듯 한 친구의 석고상 그림은 뻣뻣하고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재능이란게 친구에겐 느껴지지 않았다.


몇 번의 계절이 바꼈다. 어느 날은 친구 학원에 놀러갔다. 

친구의 그림 앞에서 나는 몸이 뻣뻣히 굳었다. 

망치로 한 대를 맞으면 하늘이 핑 돈다는 데,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겉으로 태연한 척 했지만, 내 심장은 눈치없이 뛰고 있었다. 

이러다 내 심장소리를 친구가 듣는 건 아닐까. 아니, 재능이 없는 애가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릴 수가 있어? 부드럽고 정갈한 선이 쌓인 그림은 황홀했다. 그림에서 왜 정성이 느껴지지. 

친구가 부단히 쌓았을 시간과 그림의 양이 한순간 스쳤다. 

얼마나 열심히 그렸을까.        



  

그림을 잘 그리는 법     

여러 미술학원을 보면 방학 때마다 그림일기 특강, 사람그리기 특강, 풍경그리기, 그림 15일 완성 등 단시간에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은 특강 문구를 본다. 시간이 여의치 않은 초등학생의 경우 그렇게라도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나의 교육원에서도 특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술적인 연습이다. 창작이라기보다는 연습에 가까운 그림 그리는 규칙이나 기술을 배우는 방식이다. 입체도형의 삼차원 표현이나, 인물의 비율과 형태를 관찰하여 그리기, 나무사진을 보고 그리거나, 건물의 원근법을 살려 그리는 등. 대부분 그리는 연습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연습한 것을 써먹지 않고는 그림 그리는 방법은 금방 잊고 만다. 그리고 이런 방식의 연습만으로는 진짜 내가 무엇을 그릴 수 있는지, 표현하고 싶은 지 알아가기엔 그림의 양은 턱없이 부족하다.
 엄마들은 말했다. 


“방학에라도 미술을 하면, 미술이 늘겠죠?”

“평소에는 시간이 없어서, 특강수업에라도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게 하려고요. ”


미술이 그렇게 빨리 늘면 좋을텐데, 미술을 단시간에 점령하긴 어렵다. 그러나 막막한 미술을 시작할 용기는 분명 얻을 수 있다. 이제 그 미술을 조금씩 꾸준히 가꾸면 된다.

일주일에 한 장씩, 난이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채색이 없는 드로잉은 하루에도 서너장씩, 열장씩 그릴 수 있다. 재료도 간단하다. 종이와 연필, 지우개.   

       

세기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가 프랑스의 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한 행인이 지나가다 그를 알아보고 냅킨을 주며 간단한 스케치를 부탁했다. 

"50만 프랑입니다." 

"아니, 그리는데 몇 분밖에 안 걸렸는데, 너무 비싼 거 아닌가요?" 

"아니요. 30분 만에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나는 40년간 그림만 그렸습니다."     

유명한 이 일화로 짐작해보는 피카소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었던 방법은 뭐였을까.


40년간 그림을 그렸다는 말에서 피카소는 오랜 시간 부단히 그림 연습을 했다는 것. 미술가는 자신의 미술을 표현하기 위해 수천 장의 선을 그려봐야 하고, 수천 번의 붓질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비록 그 것이 단 한 번의 휙 그은 선 일지라도. 

그럼 30분 만에 그린 그의 그림을 귀부인은 왜 좋아했을까? 피카소만의 사유가 담겼기 때문이다. 이 사유는 부단한 그림의 양이 모인 결과다.


이것을 이렇게 구태여 다시 풀어 쓰는 것은 우리가 자꾸 잊기 때문이다. 시간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 당연한 걸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당연한 걸 하지 않으면서 미술이 늘 기를 바란다. 

미술은 금방 늘지 않는다. 천재 피카소 마저도 시간을 쌓았다.   





오늘 미술 재미있었어? 




미술은 레크레이션이 아니다     

수업이 끝나면, 엄마들은 아이에게 묻는다.

 ‘오늘 미술 재미있었어?’ 아이가 만약 재미가 없다고 하면, 엄마들은 말했다. ‘아이가 미술이 재미없데요’.

나의 수업이 재미없었나? 다음엔 어떤 재미있는 미술을 해야하지? 미술이 지루하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그때부터 재미있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신기한 재료를 사용하거나, 자극적인 흥미 위주의 활동을 생각한다. 사교육에서 아이와 엄마가 수업이 재미없다는 말에 자유로울 수 있는 선생님은 많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건 미술은 레크레이션 활동이거나, 쉬어가는 과목이 아니라는 것. 

미술이 재미있어야 할 의무가 없다. 때론 미술이 지루할 수도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자.     

 

살면서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봐왔다. 한 가지를 꾸준히 끌어간 힘이 다른 영역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 그림을 잘 그리길 원한다면, 내가 아는 한 다른 방법은 없다. 꾸준히 그림에 출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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