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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May 16. 2022

졸라맨을 응원해

엄마가 답이다





“학원에선 잘 그리는 것 같은데, 아이가 다 한 것 맞나요?”(미술학원)

“학교에선 이렇게 못해요” (학교)
 “우리아이는 집에서 졸라맨만 그려요” (집)



아이는 집, 학교, 학원에서 모두 다른 그림을 그린다. 같은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그림을 그린다. 

난 장소마다 다른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새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아이의 미술 구조가 학교, 미술학원, 집에서 다르게 작용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아이는 왜 장소마다 다른 그림을 그릴까.     



자발적인 그림 '전투'



사회학자 피어슨Pearson은 아동의 ‘미술활동이 사회활동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즉 아무것도 없는 진공상태에서 미술이 저절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사회적인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나 어른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자주 노출되고 반복 학습된다.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어른들의 생각과 행동을 내재화 하게 된다.      


아이는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의 기대치에 영향 받은 그림을 그린다. 학원에서는 부모와 미술선생님의 기대치에 영향 받은 그림을 그린다. 부모는 자신이 중요시 하는 미술교육 가치관에 부합한 기관을 선택하므로 부모의 기대치가 아이그림에 반영된다. 미술학원에서는 미술 전문선생님을 통해 배우고, 미술적 환경이 집중적으로 마련되어 있기에 더욱 밀도 있는 결과물이나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작업물이 나온다. 


선생님이 아이 작품에 손을 대서가 아니라, 선생님이 수업시간 내내 지도하기에, 당연히 집에서 혼자 그리는 그림과 다른 그림이 나온다. 그렇기에 ‘집에서는 이렇게 못그려요’ 는 당연하다. 

엄마는 미술선생님 역할을 하지 않았고, 집에는 그런 재료도 없으니까.      


집에서 그리는 아이의 그림은 어른의 기대치를 벗어나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시간이다. 만화 형식이나, 졸라맨, 공주 등이 많이 등장한다. 누군가를 보여주려는 그림이 아니라. 자기 만족의 그림이다. 가장 ‘자기 표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 가지 형태의 그림이 한 아이에게 존재하는 것이 이상한 현상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이미 아이가 장소마다 다른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현상이 왜 발생하는 지 생각해보지 못했거나 몰랐을 뿐이다. 

여기서 난 비교적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자발적인 그림’에 대해 관심이 갔다.     

교육원에서 수업 중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옹기종기 칠판페이트가 칠해진 ‘벽’에 그림을 그린다. 분명히 책상에 앉아서 계속 그림을 그렸는데도, 쉬는 시간에 다시 벽에 그림을 그린다. 매우 자발적으로.                    

사실 미술학원에서 그리는 그림은 ‘표현의 습득’을 위한 시간이 되기 쉽다. 

어른의 기대가 내재화된 그림에서 아이들이 완전히 자유롭긴 어렵다. 미술학원의 미술은 아이들에게 ‘배우는 시간’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어른이 이해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미술 뿐 아니라, 아이 스스로 그리는 그림에는 아이의 진짜 마음과 생각이 담겨있다. 그냥 장난으로만 넘긴 그림에는 감정, 욕구, 기분, 상처, 상상, 아이디어 같은 것들이 있다. 또 아이만의 순수한 상상과 스토리. 아이가 말 못한 또는 아이 스스로도 몰랐던 그런 이야기들이 터져 나온다. 어쩌면 엄마가 진짜 궁금한 아이의 속마음 말이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모르는 그림과, 졸라맨 같은 그림을 어른은 성의가 없다고 여기거나(또는 무시하거나), 당황해한다.

그런데 이런 성의 없는 그림들을 미술가도 그렸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은가.  


   


키스해링&바스키아




대표적으로 키스해링과 바스키아다.

그들의 그림은 배우는 미술이 아닌, 자발적인 그림으로 출발했다. 

미국의 미술가 키스해링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광고를 붙이려고 검게 칠해 놓은 빈 벽을 보고 무언가 그리고 싶은 충동으로 문구점에서 분필을 사와 신나게 그림을 그렸다.

 곧 경찰에게 꾸중을 들었지만 금방 풀려났다. 그 후로 키스해링은 종종 지하철역에 낙서를 했고, 만화처럼 단순하고 위트있는 그림은 점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유명 해졌다. 그는 자신의 자발적인 그림을 많은 사람들에게 그려주게 되면서 사회적 소통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바스키아는 미국의 낙서화가로 유명하다. 그의 그림은 낙서하듯 마음대로 그렸다. 유아기 아이들이 그린 것 같은 그림처럼 투박하게 칠한 채색, 알 수 없는 알파벳이 담겨있다. 사람들은 이 알파벳의 의미를 물었지만, ‘그냥 그린 거에요’라고 말했다. 그냥 그린 것은 오히려 친근하게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나도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지 궁금하여, 물어본다. 

‘그냥이요’ ‘몰라요’ 라고 답할 때 생각을 강요하거나, 의미부여를 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뜨끔하다. 

어떤 기준과 틀에 정형화 하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림을 바라보는 고정된 틀은 여간해서 해체되지 않으니, 미술선생으로서 늘 무거운 과제다.      


언제나 이런 암묵적인 습관화된 질서를 해체하는 용감한 엄마이고 선생이고 싶다. 

자발적인 낙서 같은 그림은 과정 자체로 중요한 ‘자기화’의 결과물 이란 걸. 

미술학원에서 잘 배운 그림을 잘 소화시켜 자신만의 스타일로 분출하는 것은 자발적인 그림을 통해서다. 

즉 ‘배운 미술’과 ‘자기 미술’을 잘 믹스하는 고유화가 필요하다. 

학교에서의 그림, 학원에서의 그림, 가정에서의 그림을 조각조각 나누어 보지 말고, 총체적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아이가 성장하는 기간에는 분리된 미술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이것이 자기만의 스타일로 통합될 것이다.      


가끔 아들이 무언가 생각이 날 때 종이에 그림을 빠르게 그려 내게 생각을 전달한다.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표현하는데, 나는 이런 그림이 말과 글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 받는다.

내가 아들의 그림을 좀 더 사랑스럽게 바라봐줌으로써, 아들은 자유로운 미술과 가까워진다. 

일상으로 미술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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