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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Oct 27. 2022

쌍둥이는 좋은 게 하나도 없어

영주와 미주는 쌍둥이다. 어릴 때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서 늘 든든하고 좋았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둘은 처음으로 다른 반이 되었다. 반장인 영주가 선생님께서 자리를 비우시는 동안 떠드는 친구 이름을 칠판에 적었는데 그 친구가 화가 나서는 영주의 배를 세게 발로 찼다. 영주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너무 아프고 속상해서 울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것이었다. 미주였다.

“누구야! 어떤 자식이야? 너야?”

미주는 눈물을 흘리며 얼굴이 빨개진 채 그 친구에게 다가가더니,

"너 뭐야! 진짜 못됐네. 선생님께 다 말할 거야! 한 번만 더 영주 때리기만 해. 가만 안 둬."

울먹였지만 큰소리로 말하고는 영주를 일으켰다. 순간 교실 분위기가 조용해졌고 때린 친구도 깜짝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영주는 미주가 있어서 든든했고 고마웠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영주 아버지는 영주와 미주가 공부할 방이 필요할 것 같다며 같은 동네 사시는 할머니 댁의 작은 방을 공부방으로 만들어주셨다. 영주 집은 부엌과 욕실 빼고 큰 방과 작은 방 두 개뿐이라 각자 책상에 앉아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직장에서 자주 야근을 하시면서 바쁘셨지만 주말이면 영주와 미주에게 글쓰기와 수학을 직접 가르치셨을 만큼 교육에 관심이 많으셨고 학교 성적에도 엄격하셨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게 하셨고 읽을 책도 많이 사주셨다. 미주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할머니 댁 작은 방에서 책을 읽고 공부도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영주는 친구들이랑 노는 게 재밌어서 매일 나가 놀았다. 영주 친구의 부모님이 양계장을 하시는데 친구들과 모여 닭을 관찰하고 갓 낳은 알들을 꺼내 선별 기계에 놓는 일을 놀이 삼아 좋아했다. 그러다 힘들면 친구들과 요리해서 먹고 이야기하고 그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미주처럼 공부방에서 공부를 좀 했으면 하는 영주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친구들과 노는 게 좋았던 영주는 5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점점 떨어졌다. 시험 성적이 나오는 날이면 미주와 같이 아버지께 성적표를 보여주는 게 너무나 싫었다. 성적이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미주는 늘 100점이거나 95점이어서 비교가 되었다.

"우리 미주. 잘했네. 어떻게 100점을 받았대."

아버지는 영주 성적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으셨고 미주를 볼 때면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미주는 공부를 잘해서 반에서 인기가 많았고 6학년이 되어서는 전교회장도 되었다.

"우리 미주 대단해. 용기 있어. 전교회장 선거에도 나가고."

"우리 미주는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쓴단 말이야. 어릴 때 일기 쓸 때부터 알아봤어. 미주 일기 보면 어찌나 잘 쓰는지. 공부도 잘해, 발표도 잘해. 미주는 뭐든 다 잘할 거야."

"전교생이 있는 앞에서 떨지 않고 발표도 잘하고 대단하네. 영주 보고 느끼는 거 없어?"

영주에게는 늘 무뚝뚝하고 엄격하신 아버지가 미주를 볼 때면 활짝 웃으셨다. 영주에게 우리 영주도 잘하지 라며 영주가 잘하는 것, 영주의 좋은 점을 말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영주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자신감이 없어지고 점점 집에서 말수가 적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영주는 미주와 다투면 이유도 물어보지 않고 미주를 감싸며 미주 앞에서 호되게 혼내는 아버지를 보게 되었고 점점 미주도 아버지도 미워졌다. 늘 무얼 하든 비교당하는 건 영주였고 칭찬은 미주에게로 갔다. 서울에서 친척들이 오는 명절엔 미주는 인기스타였으며 영주에 대한 친척들의 칭찬에 영주 아버지 얼굴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영주에게는 초등학교 3, 4학년 때 2년 동안 같은 반을 하며 교환일기를 서로 주고받던 친한 친구가 있었다. 미주와 다투고 아버지에게 혼만 나던 영주가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며 의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친구였다. 영주는 집에서 말썽꾸러기, 부모님 말을 잘 듣지 않는 못난이였지만 영주를 좋아해 주고 응원해 주는 그 친구 덕분에 학교 생활이 재밌었다. 그런데 5학년이 되면서 그 친구는 영주와 다른 반이 되었고 하필이면 미주와 같은 반이 되었다. 2년 동안 늘 함께 했던 친구와 다른 반이 되었지만 가까웠던 만큼 쉽게 사이가 멀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만나는 횟수가 줄고 그 친구는 어느새 미주와 단짝이 되어 있었다. 특히 영주와 미주가 다툰 날에는 유독 미주와의 사이가 돈독해 보였다. 그 친구가 미주와 친하게 지낼수록 영주와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 갔다. 그때부터 영주는 학교에서 당차고 씩씩했던 모습들이 하나 둘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내 편은 하나도 없고 다 미주 편인 거야?' 


영주는 중학생이 되면서 미주와의 비교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주만 이겨보자는 마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성적이 많이 올라 반에서 1,2등을 다퉜다. 그럼에도 영주 아버지는 칭찬 한번 안 해주셨다. 미주보다 아직도 부족한 걸까. 아니면 중학생이 됐으니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것일까. 영주에게 미주는 늘 경쟁상대였다. 친척들이 오시면 영주와 미주의 성적, 외모, 성격까지 다 비교 대상이고 입에 오르고 내리는 가십거리였다. 쌍둥이가 좋은 게 아니었다. 영주는 늘 미주와 비교되는 게 싫었고 영주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늘 영주만 혼내는 아버지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늘 비교받는 집구석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영주는 성적만을 보며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누구보다 열심히 한 이유도 서울로 대학을 가서 독립하고 싶었던 마음이 사실 컸다.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영주는 열심히 한만큼 성적이 잘 나와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게 되었고 미주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성적이 떨어져서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바람대로 부모님 곁에서 국립대학교 행정학과를 다니게 되었다. 학비가 저렴했으며 아버지의 바람처럼 공무원 준비를 하려고 했다. 영주는 하숙을 하고 자취를 하면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외롭고 힘든 적이 많았지만 영주의 선택이었던 만큼 아버지와 미주에게서 벗어날 수 있어서 홀가분하고 자유로웠다. 그래도 그리운 마음에 방학 때면 늘 설레는 마음으로 가족들을 보러 집으로 갔다. 학교 생활, 홀로 서울 살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작은 위로라도 받고 싶었다. 한 번은 학교 생활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영주 아버지가 갑자기 말을 끊으시더니 미주, 진주가 있는 앞에서 말씀하셨다.

"영주는 참 말을 못 해. 전달력이 이렇게나 없나. 네가 말하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미주가 얘기해 봐."

영주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내 대학 생활이 재밌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가족들과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쑥 들어가 버렸다.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았고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이고 속상했다. 동생들에게도 창피하기도 했다.

눈물이 났지만 울음이 터질까 봐 꾹 참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왜. 내가 뭐 어때서. 나 말 잘하는데."

하고 얼버무리며 자리를 떴다.


'역시 쌍둥이는 좋은 게 하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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