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는 그토록 바라던 서울로 대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부터였을까.
기대와는 달리 대학교 생활은 힘들었다. 점수에 맞춰서 인기 있는 학과를 선택하다 보니 전혀 흥미가 없던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하였고 쉽게 풀리지 않는 과제들에 늘 시간에 쫓기고 허덕이고 있었다. 선배들에게 의지해서 해결하려고 하니 성취감이나 재미를 전혀 느낄 수 없었고 그저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과제들로 지루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1학년 때는 장학금도 받으면서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이 컸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전공과목은 어려워지고 코딩 과제들은 시간과 노력 싸움이기에 흥미가 없던 영주를 금세 포기하게 만들었다. 컴퓨터 앞에서 풀리지 않는 과제를 안고 지루하게 앉아 있느니 아르바이트로 중, 고등학생 수학, 영어 과외를 하며 돈을 버는 게 더 재밌었다.
'무슨 전공 실력이야. 중간만 하고 어떻게든 취업만 하자.'
취업을 하려면 토익 점수가 필수였던 때라 너도나도 어학연수를 갔다. 영주도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어학연수를 떠나자 취업 준비 겸 해외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비용이 크다 보니 생각해 보자고 하시더니 며칠 뒤 허락해 주셨다. 영주는 아버지가 표현은 안 하시지만 첫째 딸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 같아 헛되지 않게 열심히 배우고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1년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복학하기 전 유명한 외국계 IT기업에 인턴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영주의 전공 실력은 늘 허덕였지만 그 외에는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았다. 인턴쉽이 끝나고서는 취업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토익 점수, 채용 시험공부로 늘 도서관에 살다 시 피했다. 대학교 친구들은 군대, 어학연수, 취업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연락하기 쉽지 않았고 집에 가면 늘 혼자이기에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가족, 친구도 없이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사립대학교 학비며 어학연수 비용에 나 무조건 좋은 곳에 합격해야 해.'
미주는 부모님 곁에서 지방 국립대를 다니다 보니 학비가 영주의 3분의 1, 생활비는 거의 들지 않았다. 영주는 부모님께 늘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 영주가 선택한 것이었지만 점점 커지는 부담감에 아무에게도 위로를 받지 못하던 영주는 지쳐갔다.
독한 마음으로 취업 준비를 했지만 역부족이었을까.
지원서를 넣는 데마다 1차 서류전형에서는 합격이 되는데 2차 면접에서는 계속 떨어졌다. 스펙만 좋은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전공 실력이 부족함을 느낀 영주는 전공 면접에서 늘 위축되고 긴장을 멈출 수 없었다. 면접 탈락을 거듭하면서 우울하고 답답했던 마음을 풀 겸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러 집으로 갔다. 가족들 얼굴을 보자마자 옛날 생각도 나고 우울했던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언니, 그거 알아? 아빠가 언니 보고 돈 먹는 하마래. 웃기지?"
진주가 웃으며 얘기를 했다.
"응?.. 내가 돈을 좀 많이 쓰긴 했지?"
장난으로 한 말인데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분위기가 안 좋아질 것 같아서 웃으며 넘겼다. 사실 돈 먹는 하마는 영주의 치부였다. 한껏 기대를 안고 서포트했는데 결과는 득 보다 실이 많은 마이너스 딸.
영주의 어학연수 이후 아버지는 부쩍 친척들이 가족 행사에 오면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깨고자 영주 이야기를 하셨다. 좋은 쪽이 아니라 안 좋은 쪽으로.
"영주 얘는 대학 때부터 돈 먹는 하마야. 아휴."
영주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버지 외벌이로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교 그중 학비가 비싼 컴퓨터공학과 4년 학비, 생활비 그리고 어학연수까지. 부담이 크셨지만 기대도 크지 않았을까. 영주가 좋은 회사 가서 보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그런데 지금 난 뭐 하고 있지.'
미주와 진주는 부모님 곁에서 지방대학교를 다니고 있고 아버지의 바람대로 미주는 공무원 준비, 진주는 은행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교를 안 할 수가 없네. 철부지같이 난 왜 이렇게 뒤죽박죽일까.'
수차례 면접에서 탈락하며 고배를 마시던 중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면접에서 합격되면서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대기업에 취업을 했다. 취업을 하면서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그 해 추석에 부모님을 뵈러 가는데 그간 힘들었던 날들을 보상해 주듯 발걸음이 너무 가볍고 설레기까지 했다. 부모님께 드리는 첫 용돈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영주 부모님은 영주를 소개할 때면 제일 먼저 영주가 다니는 회사 이름부터 말씀하실 정도로 뿌듯해하셨고 한심하게 영주를 바라보던 친척들의 시선이 무언가 바라는 게 있는 듯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회사 생활은 고난의 시작이었다. 직장 상사의 괴롭힘, 학벌 우대는 뉴스에나 나오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는데 막상 당해보니 매일이 고역이었다. 상사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업무 강도, 학벌에 따른 차별 등이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자존감까지 낮아지게 했다.
'나 왜 이렇게 바보 같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삐거덕 대던 영주의 겉만 화려했던 회사 생활은 4년을 겨우 다니고 끝이 났다. 자신이 무얼 잘하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서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부모님의 기대,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고 이기적이게 오로지 영주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만을 생각했다. 큰 용기였으며 도전이었다. 이때부터 부모님과 친척들의 영주에 대한 기대는 완전히 저버린 것 같았다.
'나 돈 먹는 하마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