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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Oct 21. 2022

카센터 1

"여보세요."

오전 11시, 영주는 아버지의 전화에 '설마 또?' 하며 힘겹게 전화를 받았다. 반갑지 않은 전화인 건 확실했다.

"엄마 차 카센터에 맡겨서 찾으러 가야 하니 집에 좀 와라."

"지금?"

영주는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막 아침 운동을 끝낸 뒤였다. 오랜만에 운동을 하고서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글을 다시 시작해 보자고 어젯밤 자기 전에 몇 번이나 다짐을 했었다.

"응. 오늘 찾아가라는데 카센터까지 갈 차가 있어야지."

영주는 집에 좀 오라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을 때면 난감하다. 집에 있으면서 일해야 한다고 거절하는 것도 불효인 것 같고, 책을 낸 작가도 아니라서 글 쓴다고 말하기에도 민망했다.

"샤워만 하고 갈게. 열두 시까지 갈게요."

'어휴. 또 야. 오늘도 글쓰기는 글렀구나.'

지난주까지 영주의 딸 다정이가 독감에 걸려 아파하다가 나으려고 하니 막내 혜성이까지 걸려서 2주를 꼬박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어제 혜성이가 완쾌하고 유치원을 보내면서 2주 동안 못썼던 글을 내일부터 다시 써보자고 다짐했었다.

'내가 무슨 글쓰기야. 사치지. 나한테는.'

영주는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셨다. 부모님은 왜 이렇게 차 수리를 자주 맡기시는지, 두 달 사이에 벌써 다섯 번째 카센터 방문이다. 그때마다 영주는 부모님을 모시고 다녀왔다.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부모님 댁까지는 차로 30분 거리. 왔다 갔다 하기에 가까운 것도, 그렇다고 잠깐 다녀오지 못할 만큼 먼 거리도 아닌, 딱 지금 영주 마음처럼 애매한 거리다.

'그래. 카센터가 우리 동네 근처에 있으니 부탁하실 수 있지. 내가 가기 싫다는 생각을 하면 못된 딸인 거지.'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아빠 차로 가셨다가 두 분이서 따로 운전하고 오시면 안 되나. 아니면 택시를 타고 다녀오시든가. 꼭 매번 이렇게 불러야 하는 거야?'

영주는 비뚤어진 생각들로 마음이 몹시 불편해지면서 지난 일이 생각이 났다.


그날은 오후 2시쯤 전화가 울렸다.

"영주야. 우리 지금 카센터 옆 마트에서 구경하고 있거든. 엄마랑 아빠 저녁에 부부동반 모임 있는데 너희 동네 근처라서 아이들도 볼 겸 집에 잠깐 들를게. 아이들 데리러 갈 때 와도 되니 천천히 카센터로 올래?"

영주 어머니는 갑작스레 카센터로 오라고 해서 영주가 불편해할까 봐 천천히 일 다 끝내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아. 알겠어. 3시 반까지 가도 괜찮아?"

영주는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갑작스레 오라고 하면 바로 가기 힘들다는 것을 부모님께서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용기를 내서 말씀드렸다.

'애들 등원하고 집에 있다고 해서 내 일이 없는 게 아니고 또 돈 버는 일을 안 한다고 노는 게 아니야.'

괜한 심술이 났다. 영주는 자신의 마음이 못되었다고 느끼면서도 매번 이런 마음이 드는 게 속상했다.

"응. 좋아. 여기 마트 엄청 넓어서 아빠랑 천천히 둘러보고 있을 테니 천천히 할 거 다 하고 오렴."

'엄마도 참. 카센터 옆 마트 커봤자지. 카센터에서 10분 안팎 거리에 사는 딸한테 태우러 와달라고 부탁하는 게 그렇게 미안해할 일인가.'

영주는 엄마가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아 그것 또한 속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주는 3시 반까지 간다고 말을 하고 끊었지만 옷만 갈아입고는 차를 타고 바로 갔다. 한 시간 넘게 마트에서 계속 기다리게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부모님께서 집에 오셨던 적도 한참이 돼서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 같아서 아이들도 일찍 하원시키려고 했다.   

 

유치원으로 향하던 중 영주의 아버지의 휴대폰이 울렸다.

"지금 온다고? 알았어. 지금 갈게."

"무슨 일 있어요?"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에 영주는 놀라서 물었다.

"영주야. 잠깐 밭에 다녀와야겠다. 하우스 공사하시는 분들이 지금 온다네. 이 사람들은 약속이라는 게 없어. 아주 자기들 마음대로야. 확인할 것도 있고 이번엔 꼭 만나야 할 것 같아. 저번에도 엉망으로 하고 가버리고."

영주 아버지가 퇴직하시고 새로 시작하신 밭농사의 비닐하우스 공사 관련된 전화였다.

"그럼 어떻게?"

난처해하는 영주의 표정에 뒷좌석에 앉아 있던 엄마가 영주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영주야. 애들 태우고 밭에 다녀오자. 여보, 잠깐이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응. 잠깐 10분에서 20분 정도. 얘기만 할 거라서."

"아. 알겠어. 그러지 뭐."

영주는 쿨하게 대답은 했지만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았다. 애 둘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들렸다가 밭까지 가는데 1시간, 밭에서 20분 정도 기다렸다 다시 집으로 가는 데 대략 30분.

그 긴 시간을 아이들이 차에서 잘 버텨줄까도 걱정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자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기분이 좋은가 보다. 차 안이 시끌시끌해졌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이 참에 부모님도 도와드리고.'


"다정아, 혜성아. 할아버지 밭에서 잠깐 일하셔야 하니 우리 마트 다녀오자. 할머니가 맛있는 거 사줄게."

"와! 좋아요! 할머니 최고!"

영주는 일이 이렇게 된 거 좋게 생각하자 하고 마음을 내려놨다.

'이럴 때도 있는 거지. 다 생각대로 되지는 않잖아. 부모님 일인데 가까이 사는 내가 자주 도와드리는 게 당연하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콜릿 사탕을 사고 다시 밭으로 향했다. 마침 영주 아버지도 일을 마무리 짓고 계셨다. 영주는 애들과 부모님을 태우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어느덧 저녁 6시.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영주야. 우리 향미가든 식당 앞에서 세워줘. 밭에 갔다 오니 모임 시간이 다 돼서 집엔 못 들리겠다."

"알겠어요."

"영주 덕분에 말끔히 일을 처리하고 가네."

"에이. 아니야. 엄마."

영주 부모님은 골치 아픈 일이었는데 오늘 잘 처리했다며 좋아하셨다. 그러나 영주는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헛헛했다. 부모님 전화에 하던 일도 중단하고 나온 건데 영주가 바랬던 것처럼 집에서 함께 시간도 못 보내고 차에서만 몇 시간을 보내다 헤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나 오늘 뭐 한 거지?..’


"엄마. 우리 이렇게 늦게 집에 들어가는 거 오랜만이다. 그렇지?"

다정이가 창문 밖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며 영주에게 말을 건넸다.

"응. 그러게. 차에서만 계속 있으니 지루하지?"

"응. 이제 내리고 싶어."

"다 왔어. 우리도 얼른 집에 가서 씻고 저녁 먹자.”

영주도 장거리 운전에 좀 지치긴 했지만 아이들을 씻기고 얼른 저녁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해진 저녁 검붉은 하늘처럼 축 쳐진 영주의 마음이 추스를 여유도 없이 외롭고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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