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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랏투에 사는 폴 Dec 16. 2024

이것은 티 없이 해맑은 이야기



손 큰 애는
빚에 시달리며 세월을 보내고 나면
인상이 고약한 아줌마가 될 거라고 믿었다.
자신의 미를 깡그리 잊은 듯했다.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p.36>


가수 싸이의 공연이 성황리였다는 

뉴스가 티브이에서 흘러나온 날이었다. 

화면에 잡힌 관객들은 모두 같은 모습이었다. 

하나같이 흠뻑 젖어 있었고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얼마나 투명한지 

세상의 모든 설움이 스치지도 않은 

이들의 표정 같았다. 

이상한 건 화면을 보는 내 얼굴뿐이었다. 

나는 파아랗게 웃는 그들을 보며 

엉엉, 아니 펑펑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너무 기괴해서 

누가 보면 안 될 텐데 걱정될 정도였지만 

쉽게 그쳐질 울음이 아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좋아하는 탕수육을 먹고 

배를 두드린 기분 좋은 날인데도 말이다. 

대체 이 울음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다가 

출신을 물어봐야 무얼 하겠나. 

나도 모를 어디 저 깊숙한 곳의 것이겠거니, 

나올 만해서 나오는 거겠거니 하며 

나는 그날 아주 자리를 펴고 울었다. 


어떤 긴 터널의 아픔을 

지나고 난 사람에게 드는 감정은 

‘안도’일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아픔으로 인해 

변한 나를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펑펑 울고 나서 쌍꺼풀이 

각 눈에 두 개, 세 개가 짖어진 눈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도 해맑게 웃을 수 있을까? “




부정적인 감정들에도 소중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감정들이 주는
귀한 메시지를 읽는 데에 그리 능숙하지 않다는 것.

이근철, <교양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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