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길을 걷는데 한쪽 발이 축축하다.
몇 해를 열심히 신은 드라이빙 슈즈가
닳고 닳아 가죽이 해졌나 보다.
신발 속에서 남몰래
한쪽 발만 퉁퉁 불어 가는 이 상황이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군데군데 까지고 해져
닳아빠진 신발을 쳐다보고 있자니
오히려 신발을 사던 첫날보다 예뻐 보인다.
날따라 여기까지 와준 것 같아 고맙다.
같은 모델로 곧장 새로 주문하려다
내 걸음걸이며 보폭, 발등의 높이까지
다 알고 있을 정든 이 녀석을 보강해서 신기로 한다.
어릴 적 새 학기에 펴는
새 공책의 첫 장을 망칠까 부담스러워
첫 장 내내 숨을 참고 쓰던 기분이
설레면서도 다소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지우개로 빡빡 지우다 북-하고 찍어져도
마음의 타격이 덜한 '쓰던 공책'을 더 좋아하던 내가
어디로 도망가지 않고 그대로 컸나 보다.
적당히 닳아 익숙한 내 집에서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면서 보내는 겨울밤이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