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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랏투에 사는 폴 Dec 07. 2024

닳은 만큼 내 거

눈 길을 걷는데 한쪽 발이 축축하다. 

몇 해를 열심히 신은 드라이빙 슈즈가 

닳고 닳아 가죽이 해졌나 보다. 


신발 속에서 남몰래 

한쪽 발만 퉁퉁 불어 가는 이 상황이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군데군데 까지고 해져 

닳아빠진 신발을 쳐다보고 있자니

오히려 신발을 사던 첫날보다 예뻐 보인다. 


날따라 여기까지 와준 것 같아 고맙다. 


같은 모델로 곧장 새로 주문하려다 

내 걸음걸이며 보폭, 발등의 높이까지 

다 알고 있을 정든 이 녀석을 보강해서 신기로 한다. 


어릴 적 새 학기에 펴는 

새 공책의 첫 장을 망칠까 부담스러워 

첫 장 내내 숨을 참고 쓰던 기분이 

설레면서도 다소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지우개로 빡빡 지우다 북-하고 찍어져도 

마음의 타격이 덜한 '쓰던 공책'을 더 좋아하던 내가 

어디로 도망가지 않고 그대로 컸나 보다. 


적당히 닳아 익숙한 내 집에서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면서 보내는 겨울밤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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