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8년 겨울.
서울의 고층 빌딩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번화가 뒤편.
낮에는 잘 보이지 않는 골목이 있다.
밤이 되면 더 조용해지는 곳.
눈이 내리는 날에는 발자국 소리조차 금방 묻혀버리는 골목.
그 골목 끝에 허름한 가게 하나가 있다.
눈 내리는 추운 아침,
가게 문이 안쪽에서 살짝 열린다.
빨간 머리의 젊은 여자가 몸을 반쯤 내민다.
찬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들자,
그녀는 문 밖으로 완전히 나오지 못한 채 상반신만 내민다.
“아, 진짜 춥다…”
문 옆에 걸린 작은 명패를 뒤집는다.
CLOSE가 OPEN으로 바뀐다.
그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재빨리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이번에는 문이 아주 조금만 열린다.
문틈 사이로 같은 여자의 얼굴이 다시 나온다.
아까보다 훨씬 조심스럽다.
주변을 살피듯 골목을 훑는다.
그때,
가게 문 바로 앞에 서 있는 작은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다.
다섯 살쯤 되었을까.
아주 작은 여자아이다.
눈이 쌓인 바닥 위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다.
한눈에 봐도 얇은 옷차림.
장갑도, 목도리도 없다.
여자는 깜짝 놀라 문을 조금 더 연다.
“어머. 너 누구니?
우리 가게에 온 거야?”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는 당황한 듯 웃으며 문밖으로 나온다.
반팔에 짧은 치마 차림.
차가운 공기에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아이 쪽으로 몸을 숙인다.
“안 춥니?
가게 안으로 들어갈래?”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혀 짧은 소리로 말한다.
“아줌마… 기억 사주세요.”
여자의 얼굴이 굳는다.
“아, 아줌마…?”
잠시 말을 더듬다가 허공에 손을 휘휘 젓는 여자.
“얘는 아니 무슨 아줌마라니.
너 이렇게 젊은 아줌마…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너처럼 어린애가 무슨 기억을 팔아.
팔 기억이 있긴 있어?”
아이는 두 손을 꼭 쥔 채 바닥을 보며
더듬거리며 말한다.
“엄마랑…
나랑 같이 놀았던 기억이요.”
여자는 웃음을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달래듯, 천천히.
“그건 안 돼.
일단 너처럼 어린아이의 기억은 우리가 살 수가 없고,
또 엄마랑 그런 소중한 기억은…”
여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아이가 고개를 바싹 든다.
조금 전과는 다른 눈빛.
이번엔 아이답지 않게 또렷하고 단단하다.
“아파요. 엄마가.”
여자는 그대로 굳는다.
말을 잇지 못한 채 아이를 바라본다.
“우… 우리 일단 좀 들어갈까?”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여긴 너무 춥잖아.”
그녀는 능숙하게 아이를 안아 올린다.
아이의 몸은 생각보다 훨씬 가볍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며,
여자는 아이의 귀에 속삭이듯 말한다.
“꼬맹이, 너 여기 어떻게 알고 왔니?
참 그리고 너 있잖아…
나 아줌마 아니야.
아줌마 아니고 나나야. 구나나. 내 이름”
아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문이 닫히고,
가게의 전경이 드러난다.
낡은 간판 아래 작은 글씨.
기억 매입 · 판매 · 대여 전문
합법 업체
눈은 여전히 조용히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