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좁은 복도를 달리는 발소리가 금속을 두드리며 메아리쳤다. 긴 복도를 따라 이어진 백색 조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점멸하며, 은회색 벽면 위로 달리는 그림자들을 찢어 놓듯 번쩍였다.
“곧 발사장 입구예요!”
딜런의 외침이 울리는 경보음 소리와 뒤섞여 울렸다.
그때, 뒤편에서 작은 총성들이 울렸다. 전류를 머금은 파란 탄환이 공기를 갈라 벽을 때리는 소리를 냈다.
뒤를 돌아보자 검은 전투복 차림의 GU 병사들이 어둠을 헤치며 쫓아오고 있었다. 헬멧에 달린 붉은 광센서가 어둠 속에서 번쩍이며, 마치 사냥개의 눈처럼 반짝였다.
“젠장, 속도가 너무 빨라.”
딜런이 몸을 벽에 밀착시키며 이를 악물었다.
그의 어깨 위로 탄환이 스치자, 공기가 타는 냄새가 났다.
그때 디에가 걸음을 멈췄다. 그는 묵직한 발소리로 방향을 틀어, 소총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내가 막겠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너는 이들을 데리고 어서 가.”
“안 됩니다, 소령님!”
딜런이 외쳤다.
“여기서 놈들을 막지 않으면 우리 모두 셔틀에 도착하기도 전에 당하고 말 거야.”
디에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어조 속엔 운명을 이미 받아들인 자의 평온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그를 바라보았다. 밝은 조명 아래, 그의 결연한 얼굴이 잠시 빛에 물들었다.
그 모습은 오래전, 나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한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늘 앞장서서 위험을 감수하던 남자, 그리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 동료.
“안 돼요.”
이번엔 노라가 소리쳤다.
“이제 와서 이렇게 포기하면 어떻게 해요!”
그의 눈빛엔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 희생 같은 건 바라지 않는, 너무나 인간적인 외침이었다.
디에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반대편을 향해 소총을 들었다.
“포기라니?”
그는 방아쇠를 당기며 짧게 웃었다.
“그렇지 않아. 너희가 무사히 지구에 도착하는 순간, 내 임무는 성공으로 끝나게 돼.”
짧은 섬광이 복도를 물들이고, 디에의 실루엣이 순간적으로 빛에 잠겼다. 그 뒤로 작은 스파크들이 흩날렸다.
딜런은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얼굴엔 임무를 향한 사명감과 인간으로서의 무력함이 뒤엉켜 있었다.
이윽고 그는 이를 악물더니, “어서 따라와요! 거의 다 왔어요!”라고 외치며 앞장섰다.
노라는 잠시 디에를 바라보다가, 마치 마음속의 무언가를 떼어내듯 고개를 돌렸다. 그의 입술이 떨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디에를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디에.”
그가 잠시 나를 돌아보았다. 그 눈빛은 여전히 침착했다.
“이건… 제겐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나는 허리춤에서 플라즈마 권총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디에는 그것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그의 거친 손끝이 총을 쥐자, 네리안의 금속이 작은 소리를 냈다.
“좋은 무기군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나는 눈을 내리깔며 조용히 말했다.
“부디… 무사하십시오.”
그는 대답 대신 어깨를 돌려, 날아오는 전기 탄환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그의 넓은 어깨가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느껴졌다.
“어서 가세요.”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반드시 지구를 만나길 바랍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듯 숨이 막혔다. 나는 뒤돌아 달려 나갔고, 노라와 딜런의 뒤를 빠르게 쫓아갔다.
붉은 조명이 점점 멀어지며 어둠 속으로 삼켜졌다.
그리고, 뒤편에서 들려오는 총성과 전류의 섬광음도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발사장으로 이어지는 복도.
붉은 경광이 깜박이는 그 금속 통로의 한가운데,
디에가 홀로 서 있었다.
그는 어깨에 소총을 단단히 견착 했다. 심장의 박동이 고막을 때리는 듯 들려왔다. 숨을 한 차례 삼키고, 천천히 조준선을 가다듬었다.
방아쇠가 눌릴 때마다 짧은 섬광이 번쩍였고, 병사들이 차례로 쓰러지며 바닥에서 몸을 떨었다.
“파트리스 소령 확인. 제압해!”
총구 너머에서 GU 병사들의 외침이 메아리쳤다. 곧이어 복도 끝에서 작은 화염이 잇따라 터졌다.
전류가 허공을 가르며 튀었고, 타는 금속 냄새가 공기 속에 스며들었다.
디에는 벽 뒤로 몸을 숨긴 뒤, 반사적으로 몸을 내밀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가 몸을 숨긴 벽 근처에서 튕겨진 전기 탄환이 갈 곳 잃은 파지직— 소리를 짧게 내뱉었다.
“형편없는 사격이군! 훈련 강도를 높여야겠어!”
그가 외치며 웃었다.
그의 총구에서 터져 나온 섬광이 세 번 번쩍였다.
순식간에 세 명의 병사가 쓰러지며 바닥 위로 전류가 흐르고, 불꽃이 잔잔히 튀었다.
잠깐의 정적.
디에는 탄창을 뽑아 남은 탄환의 수를 확인했다. 그리곤 사격을 위해 다시 몸을 내밀었다.
탕!
그 순간,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뭔가가 그의 어깨를 꿰뚫고 지나갔고, 피가 뜨겁게 튀어 올랐다.
디에는 비틀거리며 벽으로 밀려나더니, 거친 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기대섰다.
벽면에는 진홍빛이 번져 나가고 있었다.
'실탄...!'
그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테이저탄이 아니라, 묵직한 금속탄이었다.
살과 뼈를 가로질러 지나간 총알의 감각이 어깨 전체에 울렸다.
탕!
두 번째 총성이 울리자, 디에의 몸이 무릎 꿇듯 내려앉았다. 손끝이 저릿했고, 시야가 흔들렸다.
피는 옷을 적시며 흘러내려, 바닥에 붉은 점을 찍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복도 끝,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한 남자.
은빛 견장이 달린 회색 제복, 완벽하게 다려진 군화.
“아들러…”
디에는 입술 사이로 피를 삼켜내며 중얼거렸다.
아들러는 비웃음을 머금은 채, 여유롭게 소총을 어깨에 걸쳤다.
“비살상? 전기 충격?”
그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크흐흐… 반역자에겐 그런 장난감보다 이게 어울리지 않나?”
그가 다시 한번 디에를 겨누며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다시 울렸다. 디에의 허벅지에서 피가 터져 나왔고, 그는 비명을 억누르며 바닥에 손을 짚었다.
아들러는 천천히 다가왔다. 군화가 피 웅덩이를 밟으며 ‘찰팍’ 소리를 냈다.
그는 디에 앞에 서더니 몸을 굽혀 말했다.
“파트리스 소령. 난 네놈이 진작에 쥐새끼들과 한패라는 걸 알고 있었지. 자네한텐 늘 그 냄새가 났거든. 불순하고, 역겨운 냄새 말이야.”
그의 입가에 비열한 웃음이 번졌다.
“늘 자네의 면상에 총알을 박아 넣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를 만들어줄 줄은 몰랐군. 정말… 고마워.”
디에는 피로 범벅된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목구멍에서 쇠맛이 올라왔지만, 그는 그것을 삼켜내며 간신히 중얼거렸다.
“너 같은 놈은… 군인이 될 자격이 없어…”
“뭐?”
아들러의 표정이 굳었다.
디에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네겐… 뭔가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어.
명예도… 신념도 없는 자식.”
그 한마디에 아들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들고 있던 소총을 옆으로 던져놓고, 욕설을 내뱉으며 군화를 들어 올렸다.
“그런—!”
그의 발이 디에의 얼굴을 후려쳤다.
“병신 같은—!”
가슴을 걷어찼다.
“설교는—!”
아들러의 눈에는 증오보다 더 깊은, 무언가 열등감에 가까운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이제 지긋지긋해!”
아들러의 군화발이 디에의 명치에 꽂히자, 디에는 고통의 신음을 뱉으며 몸을 웅크렸다.
아들러는 씩 웃으며 허리춤의 권총을 뽑았다.
“시키는 대로 꼬리나 흔들며 살았어야지, 머저리 같은 놈... 됐어... 이제 신물 올라오는 네놈 면상에 총알을 박아주마.”
디에는 헐떡이며 피를 뱉어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네놈은…”
그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고개 들어!”
아들러가 고함쳤다. 총구가 디에의 머리를 향했다.
디에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낮게 중얼거렸다.
“… 아무래도, 내가 데려가야겠어.”
어느새 디에의 손에는 은백색 권총이 들려있었다. 총구에선 은은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복도가 하얀 섬광으로 가득 찼다.
소리 없는 폭발.
플라즈마의 열기가 아들러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의 눈이 커지더니, 그대로 힘이 빠져 쓰러졌다.
디에는 무겁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몸이 천천히 무너졌다.
손끝에서 권총이 떨어져 금속 바닥을 짧게 두드렸다.
피가 퍼지고, 잔열이 복도 안의 공기를 일렁였다.
바닥에 누운 디에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천장으로 향했다.
복도의 투명한 창 너머, 먼 우주 속에서 푸른빛을 발하는 지구가 보였다.
그는 그 빛을 바라보며 입술을 조금 열었다.
“아름답군…”
그 말과 함께, 디에의 눈에서 서서히 빛이 사라졌다.
붉은 경광등 아래, 검은 전투복을 입은 GU 병사들이 조용히 그를 둘러섰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모두, 디에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 묵념과도 같은 시선 아래, 디에의 마지막 숨결이 차가운 금속 복도를 따라 조용히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