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발사장으로 이어진 길고 투명한 연결통로로 들어서자, 유리 너머로 거대한 발사장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원통형 구조물의 주변에는 수직으로 솟은 전자기 레일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위에 올려진 셔틀들이 건물에 도킹되어 우주공간으로 날아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통로 끝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붉은 경광등이 깜박이며 금속 벽면을 간헐적으로 비췄다. 등 뒤의 연결통로 끝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도 끈질기게 우리를 뒤쫓고 있었다.
총성과 함께 파란 전기탄들이 연속으로 튀며 금속 벽을 튕겨냈다. 금속 표면을 스치는 전류의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젠장, 계속 따라붙어요!”
“엄폐해요!”
딜런의 손짓에 나는 칼리뮤와 함께 거대한 금속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곧이어 파란 전기탄들이 기둥을 때리며 푸른 불꽃을 흩뿌렸다. 타는 금속 냄새가 코를 찔렀다.
딜런은 숨을 고르며 소총을 움켜쥐었다.
“내가 놈들을 묶어둘게요. 노라, 셔틀 발사를 준비해 줘요!”
그는 몸을 내밀어 짧은 제압 사격을 가했다. 세 번의 짧은 총성과 함께, 전류의 섬광이 복도를 휘갈겼다. 멀리 보이던 병사들의 실루엣이 연이어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그의 엄호를 받으며 몸을 낮춘 채 중앙 패널 앞으로 뛰었다.
칼리뮤가 내 옆에 바짝 붙어, 뒤를 경계하며 따라왔다.
패널 앞에 도착한 나는 서둘러 아래쪽을 더듬었다.
“소피, 연결할게! 부탁해!”
나는 케이블 단자를 소피에게 삽입했다. 손목에서 진동이 느껴지더니, 중앙에 보이는 화면에 수십 개의 오류 창이 떠오르다가 이내 사라졌다.
“서둘러, 소피!”
소피는 대답 대신에 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에 집중이라도 하고 있는 듯 짧게 진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 소피의 음성이 들려왔다.
“연결됐어, 노라. 시스템 초기화해서 접근 권한을 재설정하는 중이야… 조금만 기다려.”
패널의 모니터에 초록빛 코드가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때, 좌측 정비 구역에서 미세한 소음이 들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금속 케이스 뒤에서 승무원 복장을 입은 한 남자가 튀어나오며, 손에 든 금속봉을 휘둘렀다.
“조심해요!”
칼리뮤의 외침이 들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낮추며 그 공격을 피했다. 봉이 스치 지나가며 금속끼리 맞부딪히는 소리가 '챙—!'하고 울렸다.
칼리뮤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며, 파우치 속에서 작고 묘한 권총 하나를 꺼냈다. 그 무기는 푸른빛을 띤 합금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표면에 미세한 코일 패턴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방아쇠를 당겼다.
펑—!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투명한 공기가 파도처럼 일그러졌다.
순간적인 압력 변화가 주변의 먼지를 밀어냈고, 기습을 가하던 남자는 허공으로 떠올라 수 미터 뒤 벽에 부딪히며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이건… 뭐예요? 지금 대체...”
칼리뮤는 짧게 숨을 고르며 권총 옆면의 게이지를 확인했다. 그리곤 비어 있던 권총집에 그것을 조심스럽게 꽂아 넣으며 말했다.
"이건 다중 제압용 비살상 무기인 충격파 생성기(ShockWave Generator)의 축소형이에요. 축소형이라 기능은 공기충격(Air Pulse) 모드밖에 지원하지 않지만, 호신용으로는 효과적인 무기죠."
나는 그녀가 하는 말의 대부분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것이 충분히 위력적인 무기라 생각되었다.
"그걸로 딜런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요?"
"아뇨. 축소형이라 출력이 약해요. 충분히 근접한 상대에게만 유효할 거예요."
칼리뮤의 권총집 안에서 작게 '삐잉—'하고 충전음이 들렸다. 그녀는 자신의 권총을 다시 한번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게다가... 충전엔 시간이 좀 걸려요.”
그녀가 냉철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하던 일을 마무리하도록 해요, 노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화면 아래의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손끝이 떨렸다. 금속 표면의 차가운 감촉이 긴장된 체온을 따라 스며들었다.
“좋아, 노라. 이제 발사 시퀀스를 준비할 수 있어.”
소피의 목소리가 이내 이어졌다.
“시스템 접근 완료. 제어권 확보. 발사 준비 절차를 개시.”
나는 숨을 들이쉬고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중앙 모니터의 수많은 오류등이 꺼지고, 대신 초록빛 신호가 하나둘 켜졌다.
곧이어 스피커에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점화 시스템 준비 중. 전자기 레일 전원 가동.」
유리창 너머, 거대한 셔틀의 하부에서 푸른빛이 솟아올랐다. 셔틀이 거치된 레일의 코일들이 순차적으로 점등되며 은은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됐어요! 이제 가야 해요!”
나는 마지막 명령어를 입력하며 외쳤다.
금속음과 함께 셔틀과 연결된 통로의 도킹문이 무겁게 열리기 시작했다.
딜런은 남은 탄창을 비워내듯 제압 사격을 퍼부은 뒤 우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우린 동시에 달려 나갔다. 발사장의 뜨거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고, 바닥의 진동이 다리에 전해졌다.
그리고 문을 통과해 셔틀에 뛰어오른 순간, 문이 자동으로 닫히며 기체 내부의 조명이 켜졌다.
딜런은 지체 없이 조종석에 앉았다.
“수동 발사 시퀀스로 전환! 모두 벨트를 매요!”
그의 손이 조종석의 여러 버튼을 연달아 눌렀다.
모니터에 ‘카운트다운 개시’ 문구가 뜨며,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10... 9... 8...」
기체 아래의 레일이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거대한 코일에서 발생한 낮은 진동이 기체 전체를 울렸다.
칼리뮤가 조종석 뒤에서 모니터를 확인하며 말했다.
“추격자들이 문 앞에 도착했어요!”
“연결을 해제해요!”
내 외침과 함께, 딜런이 클램프 해제 버튼을 눌렀다.
“발사 시퀀스 시작!”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셔틀이 강렬하게 진동했다.
좌석이 울렁거리며 몸이 바닥으로 눌렸다. 전자기 레일이 밝은 청백색의 빛을 내기 시작했다.
“꽉 잡아요!”
딜런의 외침이 울렸고, 그다음 순간, 셔틀은 폭발하듯 앞으로 나아갔다. 레일을 따라 셔틀이 수직상승을 시작하자, 달의 지면이 시야 아래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귀가 먹먹해질 만큼 강렬한 가속. 온몸이 짓눌렸고, 숨이 눌린 채로도 심장이 뛰었다.
순식간에 높이 상승한 셔틀이 레일을 벗어나자, 기체 후미에서 점화가 시작되었고 달의 표면이 눈 깜짝할 사이에 멀어졌다.
회백색의 황무지가 아래로 작아지고, 어둠이 시야를 덮었다.
그리고 우리의 눈앞에는 푸른 구슬 하나가 천천히 떠올랐다.
그 빛은 멀리 있으면서도, 이상할 만큼 가깝게 느껴졌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딜런이 조용히 숨을 내쉬며 말했다.
“궤도 이탈 성공. 달의 중력권을 벗어났어요. 이제 빠르게 지구 궤도로 진입합니다.”
기체 안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자계통의 잔음만이 희미하게 울릴 뿐이었다.
나는 조용히 푸른빛의 행성을 바라보았다.
그 표면의 흐릿한 구름층, 바다의 윤곽, 그리고 그 안에 여전히 살아 있을지도 모를 사람들의 숨결.
항상 금성의 궤도에서 숨죽인 채, 사진으로만 보았던 그곳으로 가고 있다.
뒤편에서 칼리뮤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멋진… 행성이네요...”
푸른빛이 조종석의 창을 가득 채웠다. 그 빛이 우리 셋의 얼굴 위로 흘렀다.
달의 잿빛이 사라지고, 새로운 여정의 색이 기체 안을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