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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ersation2

# 63

by 더블윤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Observer


아이작의 물음을 이번에는 칼리뮤가 받았다.
"이 물건을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그녀는 테이블 아래에서 손가락을 살짝 오므렸다 펴며 숨을 고르고, 조용히 말을 꺼냈다.
"이 물건을 사용하는 순간, 당신들… 그러니까 인간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요."

"어떤 문제를 말하는 거죠?"
아이작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바로 인간과 네리안 간의 외교적 문제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이듯 더 조용해졌지만, 그 안에 담긴 단단함은 오히려 더 명확했다.
"이젠 당신들도 알고 있겠죠. 이 은하 안에는 인간 외의 지적 생명체가 존재합니다. 바로 우리, 네리안이죠."

아이작은 미세하게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녀가 말하려는 방향을 아직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칼리뮤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 물건, 코어리움 캡슐은 우리 네리안 문명의 중요한 자산입니다. 물론, 당신들이 제게서 이걸 빼앗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순간, 당신들은 네리안 문명의 핵심 자산을 강탈한 세력이 됩니다."

칼리뮤의 눈빛이 흔들림 없이 아이작의 깊은 눈동자에 고정됐다.
"그리고 우리 문명은 그걸 심각한 도발 행위로 간주하겠죠."

그녀의 말은 태양계의 인류가 지금껏 명확히 마주하지 않았던, 그러나 결코 피할 수 없는 진실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아이작의 표정에서 긴장이 짙어졌다. 그의 이마에 얇게 주름이 잡혔다.

"협박처럼 들리는군요…"
아이작이 낮게 말했다.

"그렇게 들리시나요?"
칼리뮤는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은 채 정면으로 응수했다.

아이작이 미간을 더욱 구기자 그의 주름이 더욱 깊게 파여 들어갔다.
"그러니까… 당신네 종족이 우리와 전쟁을 치를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침략자가 아니라, ‘감찰자’이자 ‘감시자’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된다면… 그러지 않을 이유는 없겠죠."
칼리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 단어들에 담긴 무게가 방 안을 서서히 짓눌렀다. 그녀가 뱉은 말이 가진 무게감에 노라조차 무심코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노라가 천천히 끼어들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게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겁니다."

노라는 아이작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말을 이어갔다.
"무슨 꿍꿍이 인진 몰라도, 로쉬박사는 칼리뮤 일행을 공격했죠. 그건 GU가 일방적으로 네리안에게 적대 행위를 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GU는 ‘인류 전체’를 대표하진 않아요. GU의 행동이 곧 인류의 의지가 되도록 놔두면 안 됩니다."

노라는 손을 모아 단단히 쥐었다.
"그러니까… 외계 문명과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지구의 자녀는 칼리뮤를 ‘도와야’ 합니다. 그녀의 물건을 빼앗는 게 아니라요."

아이작은 긴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칼리뮤에게 머물러 있었다. 묵직한 고민의 흔적이 그 얼굴에 고스란히 자리 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짧게 물었다.
"좋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돕는다고 칩시다. 그렇게 한다면 당신네 문명도 우리를 도울까요?"

칼리뮤는 그의 시선을 피하진 않았지만 섣불리 대답하진 않았다. 잠시의 침묵 끝에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아이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
칼리뮤가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우리 일행의 보고 내용에 따라, 최소한 두 종족 간의 충돌만은… 일어나지 않겠죠."

그녀의 말은 모호하지만, 그 안에는 자신의 물건을 건들지 말라는 명백한 경고가 들어있었다.




"하..."
아이작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고여든 주름은 마치 오래 침식된 바위처럼 깊었다. 노라와 칼리뮤는 그 한숨 속에 실린 무게를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좋아요. 당신들의 경고는…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아이작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하지만 그 표정은 체념이 아니라, 현실을 억지로라도 받아들이려는 사람의 표정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걸까요?"
그가 물었다.

"아이작."
노라가 조용히 그를 불렀다.
"아까 제가 말했듯이, 지구의 자녀에겐 이미 강력한 무기가 있어요."

"'진실' 말이죠?"
아이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입가엔 씁쓸한 웃음이 잠깐 스쳤다.
"우리라고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에요. 수많은 방법으로 지구가 살아 있다는 사실,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려 했죠. 하지만… 그 진실들은 사람들에게 전해지지도 못했습니다.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요."

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손을 가지런히 놓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기에, 이번엔… 훨씬 더 확실하고 극적인 방법이 필요합니다."

아이작의 눈이 아주 느리게 가늘어졌다. 그는 노라의 얼굴을 조용히 훑어보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지구에서 보내는 전파는 어쩔 수 없이 루나포트를 경유해야 화성이나 오르비트로 도달할 수 있어요. 제 추측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은 우주 배경 잡음 속에 정보를 숨겨 흘려보냈을 겁니다. 그래야 그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작의 손끝이 미세하게 움찔했다. 그 말은, 지구의 자녀 내부에서도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아이작은 노라의 통찰력에 다시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라는 조용히 그의 반응을 지켜보며 계속했다.
"하지만 그런 잡음만으로는 의미 있는 정보들을 전할 수 없어요. 그 정보 속에 아무리 진실을 담아봤자,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흔들 순 없죠."

아이작은 한쪽 손으로 찻잔을 천천히 회전시키며 물었다.
"그래서 당신이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순간, 칼리뮤가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우리의 눈은… 생각보다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더군요."

그녀는 시선을 은은한 조명이 비추고 있는 동굴 벽 쪽으로 옮겼다가, 다시 아이작에게로 되돌렸다.
"이 지구의 모습을 제 눈으로 보는 순간, 전 진심으로 ‘지켜야 한다’고 느꼈어요. 정보로만 알 때와는… 완전히 달랐어요."

노라는 그녀의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그들에게 지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이작의 호흡이 아주 잠시 멈춘 듯했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진실을 마주했을 때 사람들이 느끼게 될 감정…"
그가 되뇌이듯 중얼거렸다.
"재밌군요. 가장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해결책이 사람들의 감정이 될 것이라는 것이..."

노라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아이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분명 지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두 눈으로’ 목격한다면… 상황은 극적으로 전환될 수 있어요."




“당신 말을 듣고도 동의가 되지 않는 지점이 아직 있어요. 지금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장 큰 의문은, '그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입니다."
아이작이 되물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전보단 조금 안정되어 있었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테이블 위를 두드렸다. 그 두드리는 리듬마저 조심스러운 경계심과 기대가 뒤섞여 있음이 느껴졌다.

"지구의 실시간 영상 정보를 보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암호화된 통신이 아닌, 공공 통신망으로 모든 사람에게 전송해야 해요."
노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아이작은 잠시 찻잔을 들어 올렸다가, 마시지도 않은 채 다시 내려놓았다. 그의 냉철한 머릿속에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영상 정보를 보낼 방법이 없습니다."
아이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루나포트에서 모든 신호를 가로챌 게 분명하고, 루나포트를 피해서 전송한다 하더라도… 화성이나 금성에서 우리의 신호를 받아줄 사람이나 설비가 없어요."

하지만 그의 표정엔 무력감이나 절망이 보이진 않았다. 지구 생존자들이 오랜 시간 동안 부딪혀온 절벽 같은 한계를 말하고 있었지만, 그 마저도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노라의 입술을 통해 전해지길 바라고 있었다.
노라를 향한 그의 시선은 어느새 기대감으로 변모해 있었다.

노라는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전쟁보다도 위험한 작전을 제안드리려 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 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 듯했다. 아이작의 눈빛이 노라에게 고정되었다. 노라의 다음 말을 알고 있는 칼리뮤 또한 옆자리에서 숨을 삼켰다.

노라는 한번 침을 삼키고는, 아이작의 두 눈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탐사선 코라. 인류의 모든 기술이 들어가 있는 그 탐사선 안에서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어요. 게다가 그곳엔 GU정부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 로쉬 박사가 있죠.
결국... 우리가 무력화해야 할, 혹은 탈취해야 할 것은 루나포트가 아닙니다."

조용한 정적이 방 안을 감쌌다. 한순간, 흐르는 지하수 소리만이 멀리서 울리는 듯했다.

"로쉬가 있는 탐사선 코라. 그곳이 바로… 전쟁 없이 지구의 자녀가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노라의 목소리가 다시 낮게 울렸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선언과도 같아 보였다.

아이작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두 손이 천천히 깍지어지고, 주름 깊은 눈가에 미세한 떨림이 번졌다.
그리고 방 안의 분위기는, 어느새 단순한 제안의 순간을 지나, 지구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회의의 중심으로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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