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두려워했다. 홀로 뒤처질까 봐. 그렇게 낙오되어 버릴까 봐.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평생을 숨어 지내야 할까 봐 겁이 났다. 그런 이유로 무너지지 않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친구들이 두 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 수차례 넘어지고 피가 철철 흘러도 매일같이 페달을 굴려야 했고, 글짓기 대회에서 일등상을 놓치고 나면 다음 대회에선 밤을 새서라도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야 했다.
엄마 친구 딸과 비교하는 어른들의 말에, 성적이 올랐다며 기뻐하는 친구들의 환호성에, 문제아로 낙인찍혀 버린 학교에서의 내 모습에 이따금씩 주저앉아 버리곤 했다. 누구에게나 시선을 끄는 아름다운 나비가 되고 싶었는데, 난 겨우 꿈틀댈 줄이나 아는 볼품없는 모양의 초록색 애벌레였다.
늘 앞서가야 했고, 잘 해내고 싶었다.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면,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했다. 앞서가는 것이 내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길이라 믿었다.
어느 날의 봄이었다. 긴 겨울을 보내고 따스한 봄을 맞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샛노랗게 피어난 개나리꽃을 만났다. 봄 향기를 가득 머금고 어여쁘게 피어난 개나리 군락을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나를 향해 방실방실 웃어주는 것 같아, 사르르 녹아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간의 근심걱정들이 모조리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얼마 뒤 개나리 군락지를 다시 지나게 되었다. 벚꽃이 만개하기 시작할 무렵이었기에, 그곳엔 초록잎들만 무성했다. 몇 번 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사라진 노랗고 작은 얼굴들이 떠올라 아쉬움을 더했다. 뭐 어쩌겠나. 내년을 기약해야겠지.
다섯 발자국쯤 더 떼었을까.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담장 너머로 뻗어 나온 개나리 가지 하나. 그 위에 짙은 노란색의 개나리꽃이 몇 송이 달려 있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기다리던 오랜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리고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들 사이, 피어나지 못해 애가 탔을 그들을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아려왔다. 그럼에도 결국 이렇게 예쁘게 피어났구나. 어쩐지 짠했고, 그래서 더 기특했던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그 앞에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어쩌면 그들 속에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스스로를 다독이고, 격려하고, 응원하며 성장해 가는 그런 삶. 가졌던 마음들을 써가며 매일같이 행복해지고 싶은 달콤한 상상. 이 모든 걸 충분하고 여실히 누리고 있음에도, 가끔은 한없이 부족해지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곤 한다. 나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해 가며 스스로를 하찮고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여겨버린다. 그로 인해 겪는 슬픔과 좌절은 당연하게 내가 만들어낸 것들이며, 그렇기에 온전히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나 자신이 한없이 볼품없고, 참으로 답답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 있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참기 힘든 그 순간들엔 그날의 개나리 군락지를 떠올려 본다. 모두가 시들해져 버렸던 그 타이밍에 마치 기적처럼, 소설 속 주인공처럼 짠하고 등장했던 그 몇 송이의 개나리들을. 피어나지 못할 줄 알았던 그들이 느즈막에 누구보다 화려하게 피어났던 그 순간을.
양팔을 교차해 어깨를 감싸 안고, 나를 토닥여 본다.
"괜찮아. 너는 천천히 피어나는 중이야."
이런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할 여유가 있다는 것 또한, 아직은 살만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지금의 삶에 투덜대고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단, 가진 것에 만족하고 그것들이 나에게 주어졌음을 감사하며 살아가야지. 내 마음을 쓰고 이를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기쁨을 얻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한 행복이기에, 오늘도 난 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조금 더디더라도, 다소 부족하더라도, 결국엔 자신만의 속도에 맞추어 꽃을 피워내는 법이니까. 나에게도, 그리고 당신에게도 분명 그런 날은 찾아올 테니까. 기꺼이 자신을 믿어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일에 몰두하고,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 보자. 비록 완벽한 삶은 아닐지라도, 그 하루하루가 모여 결국 찬란하게 피어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