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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마주하는 기적

by 안개별


우린 어쩌면 매일같이 기적을 마주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별다른 일 없이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침대에서 내려와 두 발을 내딛고 걸어가는 것,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출근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 매일같이 경험하는 평범한 하루의 시작. 특별할 것도, 색다를 것도 없기에 느낄 수 있는 익숙함과 편안함이 좋다. 평범하고도 나직한 그 순간들은 아마도 기적이 아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기적이라는 단어에 거창하고도 대단한 사건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시한부 생을 살던 이가 10년을 더 살다 갔다는 이야기, 휠체어만 타고 다니던 이가 두 다리에 힘을 주고 걷기 시작했다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을 마주했을 때, 우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기적은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곳에서 존재감을 발현한다. 마치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는 그런 기적 따위는 바라서는 안된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살아보니, 기적은 꼭 그리 드라마틱하게만 찾아오는 건 아니었다. 매일같이 마주하는 사람들의 반가운 얼굴, 잔뜩 쳐져버린 어깨를 토닥이는 따스한 손길, 괜찮냐고 물어오는 다정한 마음. 손길 한 번, 말 한마디로 괜히 울컥해지고, 눈빛 하나로 충분한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살아가게 만들었으니, 이 또한 기적이 분명했다.


기적은 대단한 누군가에게만 찾아오는 특별한 선물은 아닐 것이다. 기적은 고요히 찾아와 우리가 모르는 사이 머물다 간다.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밥 한 끼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매일 저녁 걸려오는 전화 한 통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혼자만의 평온한 시간일 수 있다.

기적이 머물기를 바란다면, 주어진 하루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매일의 익숙한 순간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같은 풍경도, 말투도, 사람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그 안에 담긴 온기를 분명하게 느낄 수가 있다. 그리고 기적이 늘 곁에 머물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그런 기적들과 마주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용한 게 좋다. 심심한 건 편안하다. 나른한 건 안정적이다. 짜릿함은 여전히 즐겁지만, 뭐랄까. 조금 피곤하다. 예상치 못한 일은 이제 기쁜 이벤트가 아닌 새로운 숙제다. 어제와 같은 하루가 나쁘지 않다. 즐거워할 일은 없지만 실망할 일도 없는 이 일상에 감사하게 된다.
나도 이제 어른이 다 됐나 보다.

- 태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소란스러운 축하나 기쁨보다, 소박하면서도 안정된 순간들을 더 사랑하게 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설레는 시작보다, 무사히 끝난 하루에 더 깊이 안도하고 감사할 줄 아는 것. 무탈한 하루를 보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지를 알게 되는 것 말이다.

요즘의 나는 별일 없이 지나는 하루가 그저 고맙고, 이렇다 할 변화 없이 흐르는 일상에 기대어 쉬는 일이 말로 다 못할 만큼 좋다. 반복되는 삶 속 장면들 속에서, 매일같이 작지만 따뜻한 기적을 마주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이, 특별하지 않았다는 말이, 오늘을 가장 아름답게 설명하는 문장이 되는 그런 날. 그런 하루들이 모여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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