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와 격려가 섞인 응원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딸아이가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왔다. 학급 임원이 되었지만 할 일이 없어 그게 고민이란다. 야심 차게 공약도 준비했고 꼭 지키겠다는 열정도 가득 채웠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껴졌다고. 1학년, 2학년 반 친구들에 비해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이 없다고 했다. 좋은 친구들을 만난 건 복이지만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한 모양이었다.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잖아. 무슨 일을 해야 할지는 이제부터 찾아가는 거야. 친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왔을 때 네가 나서면 돼.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고 마음으로 느껴봐. 네 도움이 필요한 곳이 분명 있을 거야."
시간을 갖고 천천히 찾아가라고 했다. 서두르면 쉽게 일을 그르치는 법이니까. 일단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었고, 친구들을 위하는 예쁜 마음이 충분했기에 잘 해낼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째가 퇴근하고 돌아온 나를 소파에 앉히고는 그날의 사건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개학식 때부터 계속 관찰해 왔지만 점심시간에 밥을 한 숟가락도 먹지 않은 친구가 있어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남동생이 있어 그런지 그 친구의 행동이 염려되어 밥을 좀 먹으라고 수차례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고. 선생님에게 말할까 말까를 수십 번 고민했다고 했다. 공식 일름보가 되어버릴까 봐.
그러나 밥을 먹지 않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판단했고, 결국 선생님에게 자신이 본 것을 가감 없이 얘기했다. 선생님은 몰랐다며 화들짝 놀랐고 얘기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 친구와 얘기를 나눠보고 어머니께도 말씀드려 밥을 꼭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는 자신의 역할을 제법 잘 찾아냈다. 지난날의 걱정과 우려가 무색하게도.
우리 모두에게는 역할이 주어진다. 그 역할은 다른 누군가 또는 환경에 의해 형성되기도 하고, 스스로가 만들어 가기도 한다.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는 건 사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정해져 있는 범위 내에서 행해야 하는 것들이 분명하게 나와 있기에.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만들어 갈 때에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누구인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찾아내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경험을 듣고 난 그날의 긴긴밤,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으며 그 답을 떠올려야 했다.
"네 역할은 뭐야?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
내 대답은 "글쎄."였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역할을 하나둘씩 더 추가해가고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을 잘해가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자문했고 대답했다. 벌려놓은 일들만 수십 개가 넘었다. 공연히 욕심만 부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머리가 다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 봐, 결국 또 패배자로 남아야 할까 봐.
아마도 그건 역할이 가진 무게일 터였다. 책임감 있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해내라는 염려와 격려가 섞인 응원 말이다. 그 무게가 점점 커진다는 것은 내가 맡은 역할과 책임이 늘어난다는 것. 이는 곧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는 긍정의 시그널임이 분명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모두에게 처음은 있는 법이니까 어설프고 실수할 수 있다고. 갈고닦으며 빛을 내고자 노력하다 보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그날이 언젠가 찾아오지 않을까. 그렇기에 역할의 무게를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도약하고 날아오를 그날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그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겠다고, 견디고 버티며 찬란하게 나를 향해 내리쬘 그 빛을 향해 달려가 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