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하고 싶지 않았어요-꿈들과 이별하기

꿈만 많았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미니멀해져야 했다.

by 하루

잘하는 것은 없어도 꿈은 많았다.

과학자. 작가. 배우. 환경운동가. 방송인. 예술가. 화가. 의사. 군인. 탐험가. 고고학자.

역사가. 번역가. 통시통역사. 다큐멘터리 PD. 천문학자 등등.

스킨스쿠버. 패렁글라이딩이 취미인 뭐 그런 사람까지...


늘 아파서 울며 잠드는 아이에게

공부는 반 중간쯤에서 겨우 벗어날까 말까 하는 아이에게 왜이렇게 꿈 꾸던 것은 많았는지...


"공부는 못해도 즐길 수는 있는 거잖아요!"

"공자는 즐기는 사람을 따라 갈 수가 없다고 했어요."


개뿔! 노력해도 안되는 것들이 있다.

노력은 필수고 머리는 타고나야 했다.

그 무엇도 중간 이상 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노력덕분에 중간 갈 때도 간신히 있었다.

그래도 꿈꾸었다.

그 중에서 한가지는 내가 잘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대학교 때 영화동아리에 들어갔다.

동아리라기보다 과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같은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는 거였다.

평론가처럼.

그 영화모임의 이름은 <씨네21>이였다.

한 일년정도 유지되다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각자 자기 길들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졸업 후 <씨네21>이라는 잡지를 만나고 영화비평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 잡지들을 1회차부터 모으고 있었는데

당근에 나눔을 했다. 일부는 곰팡이가 피어서 버렸고. 그 새로운 직업은 꿈조차 꾸지도 않았다. 취미로 만족하기.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요리가 주는 그 느낌. 각 나라에서만이 가지는 요리의 역사. 도전해보고 싶었다. 늦은 나이란 없다. 시도했다. 한식자격증과 양식자격증을 땃다. 그리고 제과제빵을 배우고 2년 정도를 학원강사일을 하며 틈틈히 배워나갔다.

나만의 집밥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집안에 계속 일이 생겼고 그 스트레스를 계속 감당하다 번아웃이 왔다.

병원에선 제발 편히 쉬라고 했다.

수술을 했다. 원인은 알 수 없는...

그저 몸안에 알 수 없는 피가 자궁 안에 고였다.

그렇게 공부했던 것들을 파일 안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여전히 그래도 할 수 있는 뭔가를 찾고 싶었다.

그 다음 도전은 "역사.박물관 체험강사"였다.

역사도 박물관도 좋았다.

그곳에 가면 놀이터에 간 것처럼 신이 났다.


6년을 공부하고 그 과정에 장애인에게 박물관 수업봉사도 하고...잠시 취업도 했었다.

체험강사라 주말에만 일이 있었다.

공부의 양은 많았지만 돈은 되지 않았다.

집에선 그 시간에 <부동산 자격증>을 따라고 했다. 난 그냥 공부만 좋았나보다.


평일엔 학습지 강사를 하고 잠시 <모○○○> 체험 회사에서 주말 알바를 했다.

학습지는 나하고 안맞았다.

계단에서 굴렀고 아픈 채로 몇 달을 버텼다.

내 몸이 거추장스러웠다.

갑자기 소낙비라도 오면 차라리 좋았다.

거지같은 마음, 거지같은 세상!

흠뻑 젖어서 추위에 떠는 건 두렵지 않았다. 뚜버기인 나는 다음 타임의 시간까지 때로는 어느 집 계단에 앉아 추위와 비를 피해가며 학습지 일을 했다.


그런데 어느날 세월호가 터졌다.

너무 힘이 들어 그들의 슬픔이 보이지 않았다.

학습지 회사를 퇴사하고 문득 슬픔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감당할 수가 없었다.

선체에 둥둥 떠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 부모들의 눈물이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처럼 느껴졌다.


알 수가 없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의 슬픔이 다 느껴졌다.

같이 있으면 누군가의 고통이 내 몸으로 전해졌고 난 매일 몸살을 앓았다.

사람들이 두려워졌다.

아픈 사람은 아파서 고통이 전이되니 싫고 이기적인 사람은 그게 눈에 보여 싫었다.




그리고 어느순간 깨달았다.


이제 모든 꿈들을 포기해야 된다는 것을.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을.


책은 다 버려도 공부했던 그 동안의 모든 자료는

다 가지고 있었다. 당근나눔을 했다.

누군가에겐 그 사람의 꿈에 도움이 될 자료일지도 몰라서...

박스로만 7박스 이상이 나왔다.

나눔을 하고 잠시 후회했다. 다시 공부하고 싶지 않을까. 그러나 세상엔 나보다 더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많았다. 내 몸조차 감당 못하는 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꿈을 포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기억조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친구들도...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의 이름도...

나중엔 내 전화번호도..집 비번도...

식구들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아이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치매검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입밖에 낼 수 없었다.

두려움을 안고 일자리를 구했다.

최대한 단순한...막상 단순하지 않았지만

정리정돈은 습관이라 일하기에 적합했다.

그런데 돈이 안됐다.

학교에서 봉사직 겸 하는 알바였다.

학습자료실에서 복사도 하고 물건도 만들어주고

학습자료실 물건을 정리하고 인쇄도 하고 뭐..그런거였다.






매일 집정리를 했다. 나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왠욜? 가위로 그림을 잘라 코팅하고 복사하는 일들이 안정감을 주었는지

책도 다시 읽을 수 있었다. 기억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예전의 과거로 온전히 갈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다 정리했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될 수 없었다.

온전히 다 비우고 나서야

'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금 일을 하기까지 또 그 망할놈의 공부도 다시 했다. '사회복지사!'

친구가 앞으론 필요할꺼라고. 친구따라 강남 가는 대신 사회복지사 2급을 땃다. 그리고 또 잠시 안정된 직장을 꿈꿨지만.


노인생활관리사는 나에게 벅찼다.

매년 이력서를 넣고 같은 곳에서 일하는데 매년 면접을 본다. 5시간 시급일자리인데 의외로 시간도 많이 뺏겼다. 돈도 적다. 알바시급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튼 말만 근무시간이 적었다.

공식적으로는 10시부터 4시까지. 점심포함.

그러나 현실은 아침 7시부터 시작이다.

10시엔 집에 어르신들이 안계신다. 이집저집을 어르신들의 시간에 맞춰 대기조처럼 기다리다 방문하고 주말에는 안부인사를 다 돌려야했다. 덕분에 쓰러졌다. 결국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얼마나 더 포기하면 난 괜찮아질까.

아직도 세상은 나에게 더 내놓으라고 말한다.


자다가 여전히 악몽을 꾼다.

"괜찮아. 꿈이야. 괜찮아. 괜찮아."

일어나지 못하고 꿈 속을 헤매는 나에게 스스로 위로를 건넨다. 살기위해, 마지막정리를 위해 매일 극단적 미니멀을 유지한다.


나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나만의 '고립'이다. 인간관계마저 정리하고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버티기로 약속했다.

그게 나의 마지막 숙제이자 사랑이어야겠지.


그나마 난 참 운이 좋은건지...

버티기 위한 자연의 선물인지...

살기위해 버둥대다 만난 내가 잡은 기회인지...

최근엔 크로스핏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그것으로 작고 소소한 꿈을 또 꾼다.

다 비워냈지만 다른 것들을 또 꿈꾸는 나.

나는 여전히 꿈꾸는구나.





며칠전 백세희 작가가 장기기증을 했다고 부고가 떴다. 그 날 일하는 곳 근처 건물에서 누군가 뛰어내려 죽었다.

그에게 누군가 손길을 내어주었더라면...

달라졌을까? 모르겠다.


며칠을 울고 또 울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애도보다

"왜 죽어? 인생 다 그런거야!"

그 말이 상처가 됐다.

누군가는 말했다.

"배부르니까 그러지. 막상 바빠봐. 그럴까"

그는 배불러서 죽은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이 무섭다.


나는 미니멀과 운동을 하며

벼랑 끝에서 다른 누군가의 팔을 잡고 있다.

내가 놓아버리면 끝이 나겠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라니...

무엇이됐든 이젠 나의 영원한 숙제다.

내년엔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무엇을 포기해야되나.

얼마나 더 포기하면 자연스럽게 숨 쉴 수 있을까.



다 버렸으니 이제 다시 꿈을 꿔도 되지 않을까!

아님 아직도 뭔가를 더 버려야 되나.



그의 마지막은 무엇이었을까.

얼마나 세상이 컴컴했을까.

며칠 후 보니 국화꽃이 한쪽에 놓여져 있었다.

그러나 오후에 가니 치워져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애도보다 불편함이었고

개인의 문제였고 가십거리일 뿐이였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곳에선 늘 편안하시길...


전 지키기 위해 노력하자고 약속했습니다.

좀 더 힘내보자고. 그 끝에 가기 전까지.

마지막 1초까지 애써보겠습니다.

어느날 마지막 1초가 무의미해질지도 모르겠지만...전 매일 용기 내보겠습니다.




사진> 마곡역 원그로브 어느날 찰칵


배경으로 무엇을 쓸까 고민을 했다.

그 분이 떨어진 잔디밭을 배경으로 올렸는데

그분께 죄를 짓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 또한 가십거리처럼 쓰는구나 싶어서...

누군가 지금 힘이 든다면 인공꽃이지만

저 꽃처럼 화사하게 살길을 바라는 마음으로

책커버로 지정해본다.

인생 다 그런거야!라고 말해도

우리 다들 태어난김에 즐겁게 힘차게 살아보자구요!

물건은 미니멀해져도

마음 한 쪽은 미니멀해져도

행복은 맥시멀로 갑시다.GO~~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