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 입문기 : 계단이 무섭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삶의 변화가 왔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다들 급찐살을 말하며 체중증가가 급격히 왔다고 노래를 불렀다.
위태위태했던 나의 삶도 코로나를 기점으로 무너져내렸다. 마음은 이미 넝마가 되어 너덜너덜해지고 나는 매일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했다. 다 놓아도 괜찮다면. 난 뛰어내릴 준비가 되어있는데...
그런데 뛰어내릴 수가 없었다. 죽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아직은 책임져야 할 나의 몫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인생은 매일 숙제를 하는 기분이었다.책임을 지기 위한 숙제.
어느 작가의 글에서 책임이 아니라 사랑이라 말하라 했지만 난 나 자신을 찢어버리고 싶을만큼 밑바닥에 있었다. 억지 웃음을 짓고
"괜찮아"라고.
그런데...
"괜찮지않아, 괜찮지않아"
혼자 길거리에서 울고 사람들 안보이는 곳을 찾아다니며 가슴을 때리며 그렇게 매일 울며 버텼다.
그렇게 속이 망가져가면서 겉모습도 망가졌다. 급격한 노화가 왔고 감당못할만큼 살이 쪘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병원에 갔다. 폐경기란다. 온전한 폐경기!
그렇게 갱년기가 왔다!
"어머님,이제 근력운동 하셔야죠.뭐합니까!"
의사선생님의 말씀이셨다.
오래도록 나를 진찰하셨던 산부인과 선생님이 혼을 내셨다.푸하하하.
맨날 "어머님.쉬셔야죠. 왜 매일 몸이 감기에 걸린 사람처럼 아파서 어떻게 삽니까. 일도 하지말고 그냥 쉬세요" 이러던 분이...
서서히 쪘던 살은 코로나를 계기로 더 찐 채로 그렇게 2년을 버티며 살아갔다.
계단이 무서웠다. 올라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내려가는 것은 더 위험했다. 버스의 계단은 도전적이다. 언제든 모든 계단들은 내가 넘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단에서 구른 적이 있었던 터라 더 무서웠다.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내려간다. 산모보다 더 커진 배 때문에 계단이 보이지 않는다.그저 느낌으로 내려간다.
그렇게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버티며 살아갔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어서 무너져도 억지 웃음이라도 지으며 살아야 되기에 나의 살들을 붙잡고 그렇게 버텼다. 더이상 화장도 하지 않았다. 머리 감는 것도 발톱 깍는 것도 힘들었다. 머리는 짧게 자르고, 확 대머리로 밀고 싶었지만 그러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참고 버텼다.
그러다 더이상 이렇게 버티며 사는 것은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매일 울며 살 수는 없어! 그러기에 인생은 더럽게 엿같이 길어!'
내면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일단 겉모습이라도 바꾸어야 돼. 그렇게 운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젠장!
그런 나를 헬스장에서 거들떠보지 않았다.
내 초췌한 모습이 문제인건지 내 배와 엉덩이가 문제인건지......두번의 눈흘김과 건성건성한 상담에 헬스장을 가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운동시간을 잡는 것이 나도 부담스러웠다. 복싱장을 갔다. 성실하게 상담해주셨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리고 줄넘기가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찾게 된 크로스핏!
'누구나 운동을 좋아하게 됩니다!'
'일주일 무료체험!'
'크로스핏?'
처음 들어보는 운동이라 유트브와 네이버서치를 미친듯이 했다.
시간표를 보니 괜찮았고 땀배출이 잘 되지 않는 나에게 왠지 적합할 것 같은 느낌.
일주일 무료체험이라니 일단 가보자고.
오전 8시 무료예약을 잡고 충분히 늘어난 등산복바지에 검은색 평상복 반팔, 그나마 깨끗한 운동화 하나를 찾아 박스에 갔다.
박스(크로스핏에서는 운동하는 곳을 박스라 부른다)로 내려가는 입구에서 잠시 난 멈추었다.
"아, 씨, 계단이야"
손잡이도 없는 계단이 지하로 이어졌다.
망설였지만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벽에 손을 짚으며 천천히 내려갔다.
근데 뭐야? 아직 오픈 안 했어?
철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도 몰라서 힘껏 몸부림 치다보니 철문이 열렸다. 힘이 없었던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들어가니 이미 박스에는 7시 타임 사람들이 아름다운 몸짓으로 역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환상 그 자체였다. 언젠가 나도 저런 자세가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의 친구는 나중에 알고보니 클라이밍을 무척이나 즐겨서 그 친구의 인스타를 보는 것이 즐거웠다.
"어떻게 오셨어요?"
"저, 다이어트하려구요.
일주일 무료체험 신청했는데요."
"5분만 기다리시겠어요? 방금 타임이 끝나서 제가 5분만 쉬고 8시 타임 들어갈께요"
8시 타임엔 다행이 혼자였다. 왠지 미안했다.
무료체험이라는데...그럼 20분정도 체험만 하고 끝내려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이어트하신다고요? 운동은 해봤어요? 크로스핏 운동이 뭔지는 아시나요?"
"어.....체력증진에 효과가 있다는 글을 봤어요. 그리고 전 운동경험이 없어요.아주 옛날에 등산, 헬스장은 1년 정도 했는데 뛰는건 어지러워서 못하고 자전거 좀 타다가 사람 많아서 찜질해주는 네모난 상자에서 10분정도 있다가 그렇게 몇 번 갔다가 더이상 안 갔어요."
"어디 아프신 데가 있을까요?"
"제가 갱년기라 의사선생님이 근력운동 하라고 했고 땀이 잘 안 나는 체질이예요.그리고 믿기 어렵겠지만 제가 먹어서 찐 살이 아니예요. 거의 잘 못 먹고 아침엔 믹스커피와 보름달빵, 그리고 점심 가끔 한끼, 저녁은 잘 못 먹어요. 그런데 살이 너무 쪄서 계단도 오르내르기가 힘들어요."
"좋아요. 그럼 우리 유연성 먼저 체크할까요?"
"저 안 유연한데요!"
"괜찮아요. 봅시다."
"누워서 팔 쭉 올려보세요. 구부리지말고 끝까지. 다리를 위로 쭉 뻗어보세요. 음......유연성 나쁘지않고"
"네?"
처음 듣는 그 말이 어이없으면서도 좋았다.
1시간을 목이 아프도록 쉬지않고 말하면서 동작을 설명하고 체크해주시는 코치님 때문에
힘들어요 소리도 못하고 첫날은 요가 아닌 요가를 했다.
"여기 가장 작은 캐틀벨이 있어요. 들고 저기까지 걸어가보시겠어요?"
이건 또 뭔가?
처음보는 기구를 들고 걷는데 내 걸음은 왜이렇게 갈짓자가 되는지.
"자.배에 힘을 주고 최대한 천천히 흔들리지 않게 걸어봅시다"
최대한 천천히!
그렇게 나의 첫 크로스핏 운동은 끝났다.
그게 뭐라고. 지하철을 타러가는 길의 계단에선 다리가 휘청였다. 어이없어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그리고 결심했다. 무료체험인데 이렇게 열심히 가르쳐주시는 코치님이 있다니...무조건 하겠어.
어떻게든 내 삶을 바꿀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