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빠덜' 프로젝트, 성장의 기록
만다라트를 작성한 지도 어느덧 19일이 지났다.
처음에는 의욕이 넘쳤다. 내가 그린 목표들을 맥북과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지정하고, 와이프에게 자랑하며 "봐, 내가 이런 꿈을 꾸고 있어!"라며 떵떵거리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벌써 목표를 모두 이룬 듯한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만다라트는 점점 눈앞에서 사라졌고, 매일 핸드폰을 열 때마다 보며 자극받으려던 계획은 ‘피하고 싶은 목록’이 되어 있었다. 실행하지 못한 목표들이 나를 비웃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모습은 익숙하다. 학창 시절에도 회피는 나의 고질적인 습관이었다. 시험공부 대신 게임 캐릭터 레벨을 올리는 데 시간을 보내고, 해야 할 일을 미룬 채 친구와 어울리기를 택했던 기억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지금은 가정을 가진 가장이라는 역할을 갖고 있고, 예전과 다르게 살고 싶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다시 한번 던지는 질문. "넌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 이 질문은 나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렇게 내가 만든 만다라트를 다시 한번 보게 되고, 이 모든 걸 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굿파더가 되기 위해 세운 만다라트의 하위 카테고리 8개. 종류는 다양하다. 매출 10억, 영화 입봉, 아파트 이사, 건강, 트라이애슬론 수상, 인플루언서, 습관 형성,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까지. 솔직히 말하면, 그중 일부는 여전히 멈춰 있다. 그중에 DXG 매출 목표는 아직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반대로 작은 성취도 있다. 예컨대 영화 입봉 목표를 위해 설정한 하위 목표, ‘주 1회 영화관 가기’와 ‘주 1회 영화 2편 평론하기’는 실천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었던 내가 정작 영화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있었다는 게 스스로도 우스웠다. 지금은 만다라트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와이프와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연애 때는 데이트라는 목적으로 월마다 봤었는데, 지금은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지난주에는 영화 서브스턴스를 봤고, 집에서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함께 시청했다. 연애 때는 함께 있는 시간만으로도 행복하고, 영화를 보겠다는 목적보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의 손을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잡으려고 하는 목적이 더 크다 보니 영화가 눈에 안 들어왔는데… 지금도 당연히 그런 생각도 한가득이지만, 손 잡는 기술은 숙달되었는지 지금은 영화에 더 집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와이프와 영화를 보고 나누는 대화는 내 일상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영화의 주제를 탐구하고, 서로 다른 시각을 공유하며 몰랐던 세계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전에는 집이나 카페에서 숏폼 콘텐츠를 보며 '봤어? 웃기지?', '응, 신기하더라' 같은 대화가 전부였는데. 이제는 영화라는 새로운 공감대를 통해 한층 깊어진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작은 실천이 우리 부부의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건강 목표도 순항 중이다. 매일 과일을 먹는 습관만 빼고는 나름 잘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약간의 핑계를 부리자면 과일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비싸서 사 먹는 게 겁이 난다. (밖에서 사 먹는 술은 5,000원씩이나 하는데도 불구하고 고민 없이 사는데 과일은 고민을 많이 하게 만든다.) 오메가 3, 밀크시슬은 꾸준히 먹어왔었고, 아침 같은 경우는 내가 새벽 수영을 나가다 보니 일어나자마자 공복 물 한 잔을 먹게 되고, 수영이 끝난 후 집에 와서 내가 좋아하는 닭가슴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 여기서 양을 더 많이 해서 아내 아침까지 덩달아 준비한다. 그러면 건강과 가족 부분에 있는 세부 카테고리를 지킬 수 있다. 레몬차 같은 경우는 하지정맥이 있는 아내를 위함으로 시작했는데, 맛이 없다 보니 잘 안 먹게 된다. 그리고 건강 부분을 챙기면서 생긴 단점이 하나 있는데, 내 건강 관리가 아내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영향이 ‘긍정적’인지는 고민이다. 내가 먹으라고 권유(혹은 협박?)한 결과, 아내는 몰래 마라탕을 즐기는 비밀스러운(?) 반란을 시작했다. 마치 그녀의 작은 자유투쟁 같다고나 할까. 때로는 나를 웃게도 한다.
가족과의 목표는 사실 제일 쉬운 부분이었다. 말 그대로 정말 쉬운 부분이었는데 가장 쉬운 것조차 지금까지 해오지 않았다는 것이 참… 부끄러웠다. 내게 어르신들이라 하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친할머니인데, 연락 한 번 드리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도 왜 이렇게 오랜 시간 미뤄왔을까? 이번에 연락드려 보니, 다들 인사 한마디만으로도 너무 행복해하셨다. 재밌는 것은 어르신들은 인사가 끝나자마자 고맙다는 말씀 하시며 바로 전화를 끊으신다. 나를 위해 끊으시는 걸까? 아니면 내가 불편해할 것을 알고 미리 끊으시는 걸까? 아니면 어르신들도 똑같이 내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과 누나에게도 종종 연락을 드리긴 했지만 주마다 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꾸준히 연락드리다 보니, 뭔가 더 돈독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같이 살았을 때보다도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어쩌면 물리적인 거리 덕에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장모님 댁은 가까이에 계셔서 원래부터 자주 연락을 드리곤 했다. 그래서 이 부분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또 본가에서 키우는 우리 강아지 ‘가을이’를 신혼집에 초대해서 며칠간 함께 지내기도 했다. 가을이가 우리 집에 엎드려 낮잠 자는 모습을 볼 때마다 미래의 내 자식이 누워있는 모습이 가을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 아내를 위해 매일 아침을 챙겨주는 것도 생각보다 큰일은 아니었다. 수영 후에 내가 먹는 아침 양을 조금 늘려서 준비하면 되는 일이었고, 매일 "사랑해"라고 말하는 건 원래부터 해오던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어려웠던 건 아내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녀를 격려하는 일이었다.
아내는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낱낱이 내게 들려준다. 나는 요점만 듣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라 서론이 길어지면 "결론부터 말해줘"라며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곤 했다. 나는 MBTI에서 ‘T’를 갖고 있는 사람답게 문제의 해결을 우선시한다. 아내가 "힘들었다"라고 털어놓을 때조차, 나는 그걸 감정적으로 토닥여주기보다, 문제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자신을 발견한다. 감정을 이해하고 그 후에 옳고 그름을 따져도 늦지 않은데, 옳고 그름을 따지고 그 모습에 실망하는 아내를 보고 그때서야 감정적으로 다가가게 된다. 이 부분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이 든다. 아내는 내게 어떤 굿파더의 모습보다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안아주는 '파트너'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트라이애슬론 도전은 여전히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작은 발걸음부터 시작하고 있다. 처음에 1,000m도 어렵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1,500m는 거뜬해지고 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그전에 마음으로 아 1,000m 하고 싶다~ 하고 싶다~ 외치기만 했었는데, 이렇게 적고 나서 목표를 세우다 보니 그 원하던 목표를 뛰어넘어 달성을 했다. 무엇이든 말로만 뱉는 건 쉽지. 실제로 목표를 세우고 진행하면 실행력도 결과도 훨씬 좋아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인플루언서가 되고자 하는 꿈 역시 이루기 위해서 기획안을 탄탄히 잡아가고 있다. 아직 컨셉에 머물러 있지만 이것도 많은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목표가 순탄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만다라트 속 작은 네모 칸들이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너의 목표는 뭐야?' '너는 왜 살아가는 거야?' 그리고 그 물음은 내게 다시 힘을 준다.
한 2주 동안의 내 모습을 돌아본 결과 전체적인 평가는 좋지 않아도 조금씩 변해가려는 내 모습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지금 당장 한 번에 모든 걸 바꾼다면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들만 있을 것이다. 속도는 느리더라도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조금씩 조금씩 노력하고자 한다. 지금 막 출발점을 지났지만, 내 위치에서 출발점을 바라보니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하다.
내가 과거에는 이런 나를 고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나를 꾸짖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내 잘못을 인정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내가 더 이상 '나만의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변해가는 과정은 아직 서툴고 느리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배우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이 작은 깨달음이 나를 더 단단히 만들어주길 바라며, 오늘도 다시 노력하기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