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삶

난 기독교인이 아니다.

by 지비에스

나는 보통 선하게 산다는 것에 자신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런 이유는 세상이 주는 냉정함에 주눅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선한 삶이란 지양하는 것이 좋다고 느낀다. 세상의 불확실성이나 남들의 오해나 무지에 관해서 내가 그것을 통제하기가 불가능에 가깝기도 하고 일단 선을 행하는 것 자체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실제 삶에 적용하는 것에 있어 약간의 괴리가 생기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 친절과 불친절에도 나름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에 식당에 갔을 때는 주인이 손님을 챙기거나 말을 거는 행위가 하나의 친절처럼 사용됐고, 친밀감이 더 있다면 서비스나 음식을 더 추가로 주거나 했지만 요즘은 오히려 이런 행동 한번 했다가는 다시는 그 식당을 안 찾는 경우가 더 많다.


자기 할 일만 하면서 사는 인생이 오히려 더 편안하다는 인식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친절하게 일부러 행동하는 것이 하나의 위선처럼 일시적으로는 사용되나. 자신의 의사결정의 통제가 없는 환경에서는 오히려 일부러 나서거나 자기 일자체 이상으로는 하지 않는다.



교육의 시작은 결국 도덕이다. 사람됨이 되지 않는다면 어떤 일에서도 실패하거나 무시당한다고 옛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부분적으로는 맞다. 다만 나는 이것이 그저 하나의 이론일 뿐이지 보장된 것은 확률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교육이 가르친 사회생활은 우리 모두는 평등하며 서로가 상부상조한 관계를 이루고 더 큰 나라. 더 큰 민족과 성취를 위해서 살아갑시다! 하지만 실제 사회생활은 어느 집단이건 갑을 관계가 존재하며 한 사람의 인성이 윗사람들에게 잘 보인다고 해도 아랫사람을 대할 때는 전혀 다른 경우도 있다.





나는 선하게 산다는 것에 자신 있다고는 말하지 않지만, 내 삶에 있어서는 자신 있다고 말하는 삶을 살고 싶다.


사회가 주는 공격에 때론 힘겹더라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거짓 없이 자신 있게,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다만 그렇다고 나는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도덕이 사라지고 인문학이나 감수성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인간적인 것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나쁜 측면만 바라보지 말고 가끔은 좋은 것도 보며 - 나를 돌보면서 살아야한다.


나는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더 배워야 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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