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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Dec 23. 2024

비교가 꼭 나쁜 건 아니네

[어제보다 나으면 돼]

영옥을 만났다.

이곳에 오기 전 다니던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었는데 그녀는 내가 퇴사하기 몇 달 전 입사한 상사였다.

동갑인 데다가 입사 후배인 상사와 서로 존칭을 써가며 상대를 존중하는 것 같은 모양은 취했으나 마음으로는 무시당하지 않으려 바짝 날을 세워 긴장했던 것 같다.

함께 근무한 기간은 몇 개월에 지나지 않지만 그녀와 살얼음판에서 칼싸움을 하는 것처럼 대립각을 세운적도 있었다. 

직급이 높다는 이유로 자기 업무 외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탕비실 탁자 위의 종이컵은 어제부터 있던데 치우는 사람이 없네'

'유리문에 손자국이 많아서 지저분하네'

하는 말로 은근히 압력을 주는 것이 상당히 못마땅했다.

그렇게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사사건건 모든 일에서 무시당하는 마음이 들었고, 그렇다면 나도 너를 나도 무시하겠다는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으니 그녀도 내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퇴사하면서 나는 인수인계 때문에 연락처 차단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알게 된 모든 사람들과 하루빨리 관계를 정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몇 달 후 영옥에게서 카톡이 왔고 자신이 퇴사했다는 소식을 조심스럽게 전했다.

왜 갑자기 그녀가 나에게 연락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퇴사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감정이 '억울함'인 것처럼 그녀는 나와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가끔씩 그녀가 연락했는데 몇 줄 안 되는 메시지에서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긴장하는 게 역력했다.

같이 퇴사한 마당에 직급은 의미 없다고 생각한 나도 괜한 자격지심에 존대어 하나에도 신경 써가며 답을 했다.

언제 한번 보자는 가벼운 인사말조차 쉽지 않은 관계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만나자는 말을 에둘러서 몇 번 했었다.

못 알아듣는 척하고 지나갔더니 그 후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가끔씩 그녀 생각이 났고, 내가 좀 너무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엔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동갑이라 서로 이름 부르며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이지만 직장에서 만난 관계가 하루아침에 그렇게 편해지긴 쉽지 않다.


점심을 먹으며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퇴사하게 된 이유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나 쫓겨났잖아요. 몰랐어요?

김대표가 자기한테 대든다고 같이 일하기 힘들대요.

난 할 말을 한 건데 대들었다고 표현하더라고요.'


그곳에서 직원들의 입퇴사를 여러 번 보았지만 해고를 당한 사람은 영옥이 처음이다.

직원들에게 보이는 이미지를 목숨처럼 여기는 김대표에게 해고란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영옥의 이야기는 머리가 띵할 정도로 충격적이기는 했으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자기를 거역하는 직원이라니...

그는 자기 권위에 도전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걸 견디기 힘들어했는데, 그 경우가 좀 황당할 때가 더러 있었다.



입사 2년 차쯤 있었던 일이다.

대표는 회사의 모든 업무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돈의 입출금은 본인이 관리했다.

담당하는 직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래처에서 수금되는 돈과 직원들의 급여는 직원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관리했다. 이해되지 않았지만 성향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추석연휴 전이었으니 10월쯤으로 기억한다.

명절이라고 해서 떡값 한번 준 적 없기에 기대하지 않았으나 급여가 오히려 평소보다 적게 입금되어서 대표에게 물었다. 

대표는 건강보험료가 추징되어 내 급여에 해당하는 부분을 공제한 거라고 했다.

나도 대표만큼이나 돈에 예민한 사람이었기에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대표를 의심했다기보다 정확하게 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찜찜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매월 해당급여에 대해 4대 보험료와 소득세를 계산하여 공제했는데 추징이라니 이해되지 않았다.

확인한 결과, 직원들에게는 급여에 맞는 보험료를 공제했지만, 급여가 변경되었을 때 공단에 따로  변경 신고를 하지 않았기에 예전 보험료를 납부한 것이다.

연말정산을 하면서 연소득이 공단으로 전송되니 공단에서 그에 맞는 보험료로 정산하여 추징을 한 것이다.


나는 관련 자료를 출력해서 김대표에게 들어가서 설명을 하고 공제한 금액에 오류가 있다고 말했다. 

설명을 듣던 대표는 의중을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다른 직원들한테 말했어요?'


대표의 질문은 예상 밖이라 당황스러웠다.

보통 이런 경우면 실수해서 미안하다든가, 아니면 다시 확인해 보겠다든가라고 답을 하지 않나?

대표의 질문은 마치 은밀하게 추진하던 일을 들킨 것 같은 느낌을 주었기에 나도 반박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확인하는 과정에 다른 직원들도 듣게 되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고 대답하니 낯빛이 변하며 매우 불쾌해했다.

질문 자체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의 반응은 더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일단 그렇게 일단락되었는데, 나중에 대표의 배우자는 그 일로 대표가 명절 연휴 내내 화가 안 풀려 집에서 씩씩대는 바람에 가족이 힘들었다고 했다.

다른 직원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겠냐며 화를 했다는데 그렇게 신경 쓰는 사람치고는 행동에 모순이 많았다.

실수라면 그냥 사과하고 돈을 돌려주면 되는 것인데 며칠을 두고 분노했다는 그의 행동은 점입가경이 따로 없었다.


그래...

나야 고작 2년 근무했으니 이번 추징액만 돌려주면 되지만 10년이 넘은 직원들에게 지금까지 그래왔다면 계산이 복잡해지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애써 이해해주려 했다. 하지만 대표는 다른 직원들에게는 1년 해당분만 정산해 주는 모습을 보고 알았다.

그는 체면이나 이미지 때문에도 화가 났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돌려줘야 할 돈이 아까웠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 일에 대해 아무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오히려 돌려받은 1년분의 보험료에 고마워했다. 

이런 불이익을 당하고 가만히 있는다고? 다들 가스라이팅이라도 당한 것인가?

평소에 대표에 대해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았던 사람들의 행동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모습을 보니 그 회사는 다른 세상 같아 보였다.


건강보험료 추징 사건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대표의 상습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거래처 계좌에서 cms로 출금을 하는데 이중으로 돈을 받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처음엔 정말 실수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실수를 하면 다른 부분보다 더 신경을 쓰고 조심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대표는 거래처에서 알고 요구하면 돌려주고, 아니면 그냥 넘어가는 식으로 이런 일을 반복했다. 

거래처에서는 '내가 통장 확인 안 했으면 어쩔 뻔했냐, 그냥 넘어가는 거 아니냐, 이거 아무래도 고의적인 것 같다' 면서 화를 냈다.

대표의 반복되는 실수는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 지갑에 돈을 채울 수만 있다면 뒤를 보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런 일로 본의 아니게 우리가 거래처의 화받이가 되니 다들 짜증을 냈지만 그때도 직원들은 대표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퇴사를 한 이유는 연봉협상 결렬이었다. 

돈 많이 벌면 올려달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올려주겠다는 식으로 연봉인상을 거절한 대표에 대해 그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절대불신' 때문이었다.


어제 만난 영옥은 내가 함께 근무하는 동안 대표에게 대든다는 느낌보다는 할 말을 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영옥은 대표의 지시가 비합리적이고 무리가 될 때도 찍소리 하지 않고 조용히 일하는 다른 직원과 다를 뿐이었다..

내가 퇴사하고 나서 다른 직원을 구하지 않고 나의 업무를 나머지 직원들에게 분담하여하라는 말을 따르지 않았더니 며칠 후에 퇴사를 권유했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워낙 변수가 많은 사람이라 영옥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닐 것이다.


대표는 명절에 선물이나 상여금을 주지 않는 인색함을 보이면서 반대로 명절에 거래처에서 우리에게 선물이 들어오면 자기에게 꼭 말하라고 했다.

명분은 자기가 알고 있어야 거래처에서 혹시라도 얘기를 꺼내면 대응을 할게 아니냐고 했으나 속뜻은 그게 아니었다.

들어온 선물 중에 욕심이 나는 희귀템은 자기를 보고 선물한이나 마찬가지라며 자기 지분을 요구해서 일부 가져가기도 했다.

쪼잔하기가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직원들은 사주지는 못할망정 받은 선물까지 빼앗아 간다며 투덜댔지만 역시나 대놓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상명하복의 분위기에서 영옥의 입사로 인해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영옥은 가끔 권리 주장을 해서 대표의 입을 다물게 했다.

대표가 버거워할 만하다. 

어쩌면 스스로 그만두길 바랐을지도...


영옥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새삼스럽게 지금의 직장에 고마움이 느껴진다.

차별로 상처받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상여금이나 명절보너스, 생일축하금등 한번 정해진 것에 대해서 꾸준히 챙겨주는 현재의 회사가 아주 좋은 복지를 제공했었네.

게다가 지나친 자격지심으로 쓸데없는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선물은 하나라도 우리들에게 주려고 하는 마음이 고맙다.

1년에 두 번의 상여금은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었기에 당연하다 여기지만 생일, 명절, 휴가를 비롯해서 집안의 대소사에도 꼭 봉투를 준비하는 대표에게 새삼 감사가 나온다.

게다가 '중식제공'이라는 황금카드가 있지 않은가.

의외로 안 먹이고 일 시키는 곳이 상당히 많다. 

박봉에 매일 사 먹는 점심이 부담스러워 도시락을 준비한다지만 사 먹는 밥도 '오늘 뭐 먹지?' 하며 고민을 하는데 도시락반찬은 오죽할까?

이렇게 당연히 여겨지는 복지는 가끔씩 헬직장을 볼 때마가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

그렇다고... 꿀이라는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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