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보증금을 마련할 3개월이 지나면 약속한 대로 순순히 집을 나갈까.
절대 아니다.
나는 약속이라 생각하지만 남편은 그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기술을 썼을 뿐이다.
남편은 여느 때처럼 나의 일시적 화풀이쯤으로 생각해서 별일 아니라고 치부한 것 같다.
그러나 기대-실망-포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던 나는 이번에야 말로 어떤 식으로든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나에게 단호함이 없다고 했던 상담사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벌거벗고 온몸을 스캔당하는 느낌이었지만 수치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이유 없는 통증에 대한 확실한 병명을 알게 된 것처럼 속이 후련했다.
남편이 이렇게 되기까지 나의 우유부단함이 큰 몫 하고 있는 걸 알았으니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날 이후 나는 남편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잔소리 하게 되면 남편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같고, 공연히 본질이 흐려지는 일이 될까 봐 가능하면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물론 남편은 전혀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듯 보였다.
한 달이 지난 후 남편에게 문자를 했다.
-두 달 남았어. 방 미리 알아봐야 약속한 날 나갈 수 있을 거야.
무슨 생각인지 남편은 문자를 읽고 아무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변함없는 루틴대로 평일엔 일하고 휴일엔 외박하고, 자기 먹고 싶은 음식은 장을 봐서 해 먹었다.
이 상황에 밥을 저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딸과 함께 하는 상담과정에서 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부분을 많이 알았다.
평소에 카페 가서 대화를 자주 하는 편이라 고민이나 속마음을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상담사는 딸 자신도 알지 못했던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들을 꺼낼 수 있는 질문으로 딸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 나갔다.
나의 감정상태에 대해 딸은 매우 민감하다.
나에게 잘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고, 반대로 나를 힘들게 하면 나쁜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빠로부터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남편 퇴근 후에는 늘 긴장상태라고 하는 말에 딸에게 많이 미안했다.
딸에게도 아빠는 집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가 된 것이다.
-엄마, 그냥 이혼하면 안 돼? 나는 이해를 못 하겠어. 왜 아빠랑 같이 살아야 하는데?
-아빠는 그럼 노숙자 될게 불 보듯 뻔한데 불쌍하잖아.
딸이 이혼 이야기를 할때마다 나는 같은 대답을 했다.
물론 그 대답이 가식은 아니었다.
말을 하는 그 순간만은 정말 진심으로 남편을 걱정했었다.
딸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절망스러울 정도로 답답해서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상담사에게 호소하듯 말했다.
딸이 입다물 었던 것이 내 말에 동의한 것이 아니라 극도의 실망과 포기였다는 것에 놀랐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부부도 그렇지만 자식에 대해서는 백분의 일도 모르는 것 같다.
거실에서 나와 재미있게 이야기하다가도 남편이 퇴근하면 인사만 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던 아이들.
독립한 아들이 아빠와 같이 밥 먹지 않아도 되니 너무 좋다고 했던 말.
무심하게 넘기는 동안 딸과 아들은 계속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독립할 능력이 되지 않는 딸은 모든 걸 견디고 참아냈다.
-3개월만 기다려. 아빠 나간다고 했으니까.
-아빠가 나가겠어? 설령 나간다 해도 며칠을 못 참고 엄마가 다시 불러들일 텐데 뭐.
-아니야 이번은 달라.
이미 딸에게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나였지만 그렇기에 이번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아들에게도 이번 일을 말해줬다.
함께 살 때는 딸보다 더 아빠를 불편해했던 아들이 따로 살다 보니 오히려 이번일에 부정적인 속내를 드러냈다.
-우리 집도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나는 그래도 부모와 자식이 한집에 사니 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너 독립했다고 이제 예전일은 다 잊었구나?
아들은 내세울 것 별로 없는 우리 집에 유일하게 위로가 된 것이 이혼하지 않은 것이었나 보다.
그러나 남에게 보이는 것 때문에 마음에 병을 얻으면서까지 참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도 아들처럼 이혼가정이라는 말이 주홍글씨처럼 여겨졌기에 그동안 한 번도 이혼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남편이 제멋대로 살 수 있는 것도 그 이유다.
아침에 눈을 떠도, 출근길에도, 밥을 먹을때도 '3개월'이라는 단어를 수시로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