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별거를 시작하니 가슴 한편에 커다란 돌덩어리 하나 올려놓은 것처럼 무거웠다.
이걸 애증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별거생활이 몸 편한 만큼 마음이 따라 주지 못했다.
남편이 혹시라도 술김에 찾아와 고성방가 하며 행패라도 부리면 그땐 어쩌지?
경찰에 신고하고 접근금지 신청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반대로 자기 관리도 안 되는 사람이 먹고 잘 곳은 구했는지 어디서 눈칫밥 먹으며 얹혀사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다.
주변에서는 내가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드는 거라고 했으나 그건 절대 아니었다.
남편은 내가 없으면 폐인이 될 것 같고, 만에 하나 그러다가 객사라도 하면 나에게 온갖 원망이 쏟아지고 나는 죄책감으로 얼굴 들고 살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걸 남편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메모를 해 봤다.
남편이 집 나간 후 장점과 단점을 정리해 보면 내 마음이 정리가 좀 될 것 같았다.
장점보다 단점이 많다면 이 문제를 다시 고려해 봐야 할 수도 있을 테니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결과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머리로 생각만 하는 것과는 다르겠지.
장점을 쓰려니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줄줄 써 내려갈 만큼 계속 떠올라서 금방 열 가지가 넘었으나, 남편이 없음으로 해서 생기는 단점은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슬픈 일이네.
그렇다면 남편이 없어서 좋아진 건 어떤 것일까.
첫 번째, 욕실에서 향긋한 냄새가 난다.
남편은 요즘 남자답지 않게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꼰대라 절대 앉아서 소변보는 일이 없다.
그마저도 주의를 좀 하면 좋으련만 변기 주변에 흔적을 남기니 욕실에서 지저분한 공중화장실 냄새가 났다.
청소한 후 남편이 한 번이라도 사용하면 악취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가족이 식사 중에도 아무렇지 않게 욕실 문을 열고 소변을 보는 무례함도 정말 싫었다.
둘째, 거실이 깨끗해졌다.
집에 들어오는 즉시 이불과 베개를 거실 바닥에 쫘악 펴 놓고 누워 TV 리모컨을 잡는다.
자연스럽게 거실은 남편의 공간이 되어 남편이 귀가하면 모두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깔린 이부자리는 내가 치우지 않으면 몇 날 며칠 그대로다.
거실에 누워 주방에서 내가 뭘 하는지, 누가 식탁에서 뭘 먹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식탐꾼이다.
이따금 일어나 냉장고를 뒤적뒤적하다가 주전부리가 보이면 들고 이부자리로 돌아간다.
이부자리 주변에 있는 과일씨, 껍질, 과자봉투...
모두 내가 치워야 할 일거리다.
버릇을 잘못 들였다는 둥, 그걸 치워줘서 그런 거라는 둥 하는 사람들에게 딱 일주일만 살아보라 하고 싶다.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지.
주방도, 가스레인지도 깨끗하다.
뭘 해 먹겠다고 싱크대에 잔뜩 음식물 쓰레기를 늘어놓고 그대로 두면 날파리들의 천국이 된다.
가스도 중불을 사용하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항상 최고화력을 쓰니 작은 냄비 음식이 넘쳐서 눌어붙는다.
한도 끝도 없는 내 불평이 과연 누구의 문제일까.
이제 남편은 집에 없고, 내가 연락하지 않는 한 집에 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 문제로 쓸데없이 감정을 소모할 필요도 없고, 하나하나 기억하며 남편의 험담을 한다는 게 의미 없기도 하다.
남편은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용기부족인지 모르겠지만, 다투고 나서 가출하면 내가 먼저 연락하기 전에 돌아온 적이 없다.
나는 남편이 없으면 불안증 때문에 힘들어서 결국 먼저 연락을 하곤 했다.
그러니 남편 눈에 나의 생각이 모두 읽혀서 남편의 생활 패턴이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게 항상 억울했었는데 이번 별거는 시작부터 내 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예전처럼 내가 먼저 남편에게 연락할 일은 없다.
걱정이 되는 마음이야 어쩔 수 없지만 남편에게 연락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에 5개월이 되는 지금까지 남편과 연락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집으로 날아오는 자동차 과태료 고지서가 남편에 대한 일종의 생활반응이라 '음, 잘 지내고 있군'하면서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다.
자동차세 납부서 나온 건 사진으로 찍어 보냈지만 미납으로 번호판이 영치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나는 영락없는 '공동의존증' 환자다.
그 사람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나의 변화에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는데 여전히 그게 잘 안된다.
잘 안 되는 나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오늘도 이렇게 글로 남기며 나에 대해 관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