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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Mar 13. 2024

외벌이만 못한 가난한 맞벌이

[바닥이라 생각된다면 아직은 바닥이 아니다]

남편은 내가 일을 하는 것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보험회사라는 것 때문에 결사반대 했다.

노가다 업계에서는 아내가 보험회사 다니면 십중팔구 바람이 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런 사람도 있었다면서 무슨 수를 쓰든 나를 막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남편의 고집만큼 나도 확고했다.

나를 말리는 이유가 그것이라면 더 용납이 되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바람이라면 친정아버지 외도에 치가 떨리는 사람인데 설마 내가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보험회사에 나가고 싶은 이유는 더 있었다.

온종일 집에 있다 보면 남편이 돌아오는 시간만 기다리게 된다.

독박육아는 어차피 내 몫이라 여겼으니 당연한 듯하고 있었으나 돈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다투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나는 안중에 없는지 남편은 자기가 들어오고 싶은 시간에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 싶으면 외박도 했다.

연락도 없이 안 들어오는 날엔 나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그럴 때마다 남편은 나를 피했다.

신혼 때 나만 바라보던 그 남자는 다른 사람이었나?

사람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그러니 남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려면 나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고 그것이 바로 보험회사 교육이었던 것이다.


교육은 한 달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교육이 무서운 것이 처음엔 날짜를 카운트하면서 한 달만 채우자며 나갔는데 교육을 받다 보니 점점 자신감이 생기면서 나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고 해보고 싶은 마음까지도 생겼다.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만 키우며 사느라 이제는 사회생활도 못하겠구나 했는데 수업태도와 성적이 좋다는 칭찬도 듣고 일을 하면 아주 잘할 것 같다는 말에 고래처럼 춤도 출 것 같았다.


교육을 마칠 즈음에는 사막에 가서 모래도 팔 수 있을 것 같고, 시베리아에서 얼음도 팔 것 같은 자신감으로 충만해졌다.

교육받으러 다닌다고 살림에 소홀하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새벽 일찍 일어나서 집안 청소까지 다하고 가느라 교육장에 도착하면 녹초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의 교육이 끝나고 나니 소장으로 있던 박 집사님이 나에게 제안을 했다.

"출근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아침에 와서 차 한잔 마신다고 가볍게 생각해요. 차 마시고 점심 먹고 들어가면 되죠"

"어떻게 그래요... 그건 아니죠"

그렇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내가 사회생활한 지가 좀 오래되긴 했지만 그 정도로 경우 없는 사람은 아니니까.

"아니 진짜라니까. 애가 그렇게 어린데 뭘 하겠어요. 그냥 슬슬 놀러 와요. 집도 가까우니까"

정말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밖에 안 되었기에 거리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보험회사 소장이라는 자리는 그냥 앉는 자리가 아닌가 보다.

그는 나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부담 없이 오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부담이 없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직장인데 시장이나 마트 드나들듯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첫째가 다니는 놀이방에 둘째를 보내고 출근을 할까 하며 나를 소개한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자기 딸이 다니는 선교원 원장이 같은 교회 집사님이니 잘 봐주실 거라며 그곳에 보내라고 했다.

선교원이 집에서 거리가 좀 있기는 했지만 원장님이 교회에서 유치부 교사로 봉사하고 있기에 아들도 낯설지 않고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들은 나와 몇 번 떨어져 보더니 분리불안이 심해져서 선교원 간판이 보이기 시작하면 딱정벌레처럼 나에게 딱 달라붙어서 악을 쓰며 울기 시작했다.

선교원까지 안고 가면 등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흐르고, 안 떨어지는 아기를 억지로 떼어내고 나면 진이 빠져서 사무실까지 가는 길이 퇴근길 같았다.

'이게 다 남편의 부도 때문이야'

남편이 돈을 벌어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조금씩 남편에 대한 원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남편이 아닌 나의 돈욕심 때문이지만 그건 지금 생각이고 그때는 아니었다.


요즘 인스타에 1981년 영상이 하나 올라와 돌아다닌다.

미혼의 남녀들이 모여 의견을 주고받는 프로인 것 같은데 보기만 해도 어이없고 화가 나는 영상이다.

출연한 남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여자가 결혼하고 애 낳아 키우면서 남편 밥해주고 빨래하고 퇴근한 남편 잠자리 깔아주고 시부모 잘 모시고 살면 그게 행복 아닙니까"였다.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망발이야??

여자들은 몇 마디 반박하다가 말발이 딸리는지 입을 다문다.

댓글에선 불이 난다.

이래서 페미니스트가 양산된 것이라며 앞에 있으면 후두려 팰듯한 기세다.


지금 생각하면 내 남편도 그런 사고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네가 저녁밥만 해놓고 나가면 밤 열두 시에 들어와도 상관없어."

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을 해놓고 막상 보험회사에서 회식이라도 하는 날엔 아무리 저녁 준비를 다 해놓아도 소용이 없었다.

"살림하는 여자가 말이야..."로 시작되는 잔소리에 중죄라도 지은 것 마냥 미안해했던 게 지금도 억울하다.

게다가 애들 둘까지 내가 데리고 갔는데 말이다.


그러나 나도 IQ는 낮아도 JQ는 보통을 넘는 사람이다.

그 후로 회식이 있으면 먼저 선수를 쳤다.

"자기 오늘 몇 시에 와?"

이렇게 물으면 남편은 항상 같은 답을 한다.

"늦을 거 같은데 왜?"

누가 술 먹자고 하면 바로 ok를 외치며 따라갈 준비를 하고 있는 대기조 같다.

"오늘도 늦어?  왜 맨날 늦는데??? 안돼. 오늘은 일찍 와서 애들 좀 봐. 나 오늘 늦으니까 자기가 애들 봐야 돼. 알았지? 오늘까지 늦으면 정말 그건 아니다. 약속도 없는 거 같은데 일찍 와. 무조건이야"

이렇게 선빵을 날리면 남편의 선택은 아내의 회식을 용납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내가 일찍 가야 되냐 아니냐로 달라지기 때문에 잔소리할 생각을 안 한다.

오히려 애들을 못 봐서 아내가 데리고 회식을 가게 만들었으니 자기가 죄인이 되는 것이다.

조금씩 포기도 하고 익숙해지기도 하면서 남편과 나는 맞벌이부부가 됐다.


내가 보험회사에 나가면 절대 돈을 주지 않겠다던 남편은 고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점점 돈을 가져오는 액수가 적어졌고, 건너뛰는 달도 있었다.

내가 잘못한 것일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남편만 보고 있었어야 했나?


남편은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 계속 작은 공사들을 맡아서 했는데 그때마다 공사대금을 받지 못했다거나, 늦어진다거나 하면서 거짓말 아닌 거짓말이 늘어갔다.

시댁이나 친정이나 부자가 아니라 비빌 언덕이 없으니 한번 넘어진 남편은 좀처럼 일어서질 못했다.


집주인은 월세가 하루만 밀려도 계단 한 칸 한 칸을 힘든 걸음으로 올라와 문을 두드렸다.

내가 이럴 줄 알고 처음부터 계약을 안 하려고 한 거라며 듣기 싫은 말을 할 때는 정말 쌀은 못 사도 월세는 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나도 스트레스였지만 집주인도 매달 독촉하는 게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일 것이다.

임대차계약 만기 2년이 되어가자 집을 비워 달라는 요구를 했다.

거절할 수 없는 명분.... 임대료 체납.


이제 우리가 갈 곳은 반지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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