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 꽃 피어/조동화
나 하나 꽃 피어
논픽션 nonfiction의 한 인물이 있다.
피지도 않고, 우거지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은 계절. 오늘도 미세먼지는 보통, 초미세먼지는 나쁨이라고 한다. 스산하고 뿌연 날씨에 한 술 보태는 인물이 있다.
일어탁수一魚濁水. 물고기 한 마리가 물을 흐리고 있다. 세상을 온통 어지럽히고 있다.
다 자기가 해놓고서도 잡아떼는 모르쇠 작전, 다 자기가 저질러 놓고서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치매 작전, 자기가 다 아랫사람을 부려놓고서도 난 아니라는 떠넘기기 작전, 온갖 수법을 구사하고 있는 그 인물은 추악하다.
논픽션 nonfiction의 한 인간은 꽃밭을 짓밟고 숲에 불을 질러버렸다. 어리석은 그가 모르는 한 가지는, 때가 되면 꽃은 피어나고 숲은 다시 살아난다는 것.
그리고 여기 픽션 fiction의 한 인간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영화 <나처럼 사소한 것들>의 명대사다. 빌의 아내가 하는 말은 틀리지 않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그렇게 살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뭉뚱그려 보아도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고 답답한 느낌이 드는 이유를 나는 알 것 같았다. 내가 왜 그런 건지. 나는 가톨릭 신자인데 74년 동안이나 끊이지 않았던 '막달레나 세탁소'의 악행을 저질렀던 수녀와 그들을 비호했던 세력의 추악함에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다. 나라면 어땠을 까라는 생각이 계속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빌의 아내가 한 말은 빌의 그다음말과 이어져야 비로소 명대사가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빌 펄롱의 아내
"당신은 의문이 안 들어?" -빌 펄롱
영화를 통틀어 빌이 하는 도움들이 과하게 느껴지고 저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은 대목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과거 자신이 결코 사소하지 않은 도움 덕분에 살 수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받은 그대로, 본능적으로 베푸는 것 같아 보였다. 빌의 무의식적인 행동을 설명하는 글이 책에 잘 묘사되어 있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이걸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펄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책 <이처럼 사소한 것들> 120쪽.
영화와 책 속의 인물은 모르쇠 작전, 치매 기법, 떠넘기기 작전, 이런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부류다. 고난 받는 예수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을 정도였으니까. 오래 여운이 남는 인물이다. 과연 나였다면, 이란 질문과 함께.
이 시와 무슨 관련이 있다고 이렇게 죽 늘어놓고 있는 걸까. 영화 책이든 봤어야만 알 만한 이야기를. 최근 읽고 본 것이 속수무책으로 엉켜버린 것만 같다. 이야기는 그렇더라도 시와 시인에게 나는 무죄다. 시는 시 그대로 엄청 애정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