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석어당과 살구나무 한 그루
약속보다 일찍 시청역에 도착했다. 아직 오후의 햇살이 남아있었다.
'시간도 남았으니 돌담길 따라 걷지 말고 덕수궁 안으로 질러가자, 천천히. 관람료 1,000원이 주는 기쁨이 그 안에 분명 있을 거야.'
대한문 매표소 앞으로 걸어갔다. 이런 식의 선택은 내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한동안 잊어버린 것이기도 했다. 겨울이 춥고 길었기 때문이다.
금천교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덕수궁이 친숙하게 느껴졌는데, 문득 덕수궁 미술관 앞에서 찍은 어린 시절의 사진이 떠올라서였던 것 같다. 기분 좋은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덕수궁 야외음악회에 데리고 온 우리 집 아이들은 음악보다 분수대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는데 그런 풍경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고. 은행잎이 융단처럼 깔린 곳을 걸었던 기억도 나고. 가장 최근에 온 게 재작년 장욱진회고전 때였다는 것까지. 접근성이 좋아 덕수궁은 지나다가도 마음만 먹으면 금방 들어설 수 있다, 담장 안으로 쑥. 담장 하나 사이로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는 게 늘 놀랍다.
사방에 빌딩숲으로 둘러싸인 궁궐 안, 움푹 파인듯하고 야트막해서 아늑하고 바닥은 흙이라 걸을 때 부드럽다. 내가 걷는 곳이 임진왜란 때 의주로 도망갔던 왕, 선조가 돌아와서 머물기 전까지는 월산대군 후손이 살았던 곳이라고 들었다. 임란으로 경복궁과 창덕궁은 모두 불타 임시궁궐로 쓰인 것이다. 선조가 머물렀던 행궁을 광해군 때는 경운궁으로, 순종에게 양위한 고종이 머물면서부터는 덕수궁으로 불렀다고 들었다. 서울도보관광해설사 선배한테 들은 것을 떠올리면서 걸었다.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는 건 단지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에 관한 것이리라. 관심 있는 것을 더 잘 기억해 내는 것을 보면.
내가 좋아하는 '곳'에 멈추었다. 단청이 없어서 단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전각, 석어당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2층 건물이라 고개를 안으로 쑥 디밀어 보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전에 들었던 것을 떠올리고 안내판을 보고 떠나는 시간여행. 석어당의 현재의 모습은 사실은 1904년 화재로 불타 다음 해 다시 지은 것이다. 선조가 머물렀을 때 어진 허준이 수시로 드나들었을 것이고. 광해군에게 유폐당해 인목대비가 갇혀있었을 것이고. 인조반정으로 복권된 인목대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 광해군의 모습까지 그 곁에서 살아온 살구나무는 기억하고 있을까. 목탁으로 만들어졌으면 청아하고 맑은 소리가 났을 것이고 다듬이대로 만들어졌으면 평생 두들겨 맞았을 살구나무가, 이곳에서는 전각을 드나들던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한자리를 침묵으로 지켜온 아름드리 살구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보탬도 거짓도 없으리라.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확실히 해가 길어졌다.
'앗!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러다 약속시간 늦겠다, 서둘러 나가자. 대한문으로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인화문 쪽으로 나가야겠다. 원래 거기가 정문이었다지.'
처음 마음먹은 대로 세종로로 들어왔고 덕수궁을 가로질러 새문안로 쪽으로 가기 위해 후문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다시 펼쳐진 아스팔트를 따라 약속장소를 향해 걸어갔다. 마음속으로 다음을 기약하고 있었다. 꽃피는 3월. 햇살 좋은 어느 날. 다시 살구나무를 보러 들르리라. 꽃단장하고 있을 나이 지긋한 나무를 봐야 봄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