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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반티카 May 23. 2024

스트레스받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기적

2024 21일 루나 디톡스: 하루를 마무리하는 감사함명상 에세이 #16



오늘은 그림 수업을 들으러 가는 날이었어요.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시간이 훌쩍훌쩍 잘 가요. 아쉬운 마음을 안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어요. 같은 방향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료 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역으로 걸어갔죠.


정들었던 그림 작업실. 즐겁고 감사한 기억이 많이 있는 곳이에요.


그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먼 거리도 금방 지나갔어요. 다만, 반대편 방향 종점 한 정거장 전이라는 걸 너무 뒤늦게 알아차렸을 뿐이죠.


"우리, 반대로 온 것 같아요."


아직도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던 동료 분에게 말했어요.


"아, 그래요?"


놀라거나 당황할 법도 한데, 그분에게선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어요. 내려서 바로 반대편 승강장으로 갈 때, 그분이 말했어요.


"저는 이런 일이 자주 있어요."

"그래요? 저도 지나칠 때가 있긴 한데, 이렇게 멀리까지 온 건 처음이에요."

"아, 정말요? 저는 버스 타고 반대편 종점까지 간 적도 꽤 있어요."


그런 적이 꽤 있다는 것도 신기했는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그분도 더 신기했어요. 보통은, '어떡해!' 하고 당황하거나, 내가 왜 그랬지, 하고 내릴 때를 놓친 나 자신을 탓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제가 그랬었거든요. 명상 수련 시작하기 전에는. 한 정거장만 지나서 내려도,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 또는 약속에 늦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곤 했었죠. 명상을 하지 않아도, 그런 일에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좀 놀랐던 것 같아요.


"아, 지하철이 바로 오네요?"


오히려 그분은 지하철이 바로 왔다는 사실에 더 놀라워했어요. 늦게라도 알아차린 덕분에, 그래도 집에 갈 수 있게 됐죠. 내릴 곳을 지나쳤는데도 둘 다 아무 생각도 없었다는 사실이 웃겼어요. 생각해 보니 갈아탈 때 방향이 맞는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더라고요. 앞에 걸어가는 사람들을 따라 탔던 것도 웃겼어요.


이런 상황에서 둘 중 한 사람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 스트레스가 옆 사람에게까지 전해지기 마련이에요. 확인을 제대로 할걸, 왜 그랬을까, 하고 각자 자신을 탓할 수 있죠. 또는 더 편안한 친구나 가족 사이였다면, 내가 안 보고 있었으면 너는 보고 있었어야 하지 않냐, 타박을 주면서 투닥댔을 수도 있고요. 둘 다 다시 반대로 가면 되지 뭐, 하는 마음으로 있기가 참 쉽지가 않은데, 오늘은 그랬어요.


둘 다 반대편 종점 한 정거장 전까지 왔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아 하니까, 돌아가는 길에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음악 이야기, 종교 이야기 등등 많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또 만나요, 하고 헤어질 때도 산뜻한 기분일 수 있었고요. 미안해하거나, 탓하는 마음 없이.


이런 게 바로 기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릴 역을 놓쳐서 한참 지나서 내렸어도, 그걸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 않는 나.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역시 스트레스가 아니라는 것. 둘 다 마음이 평온한 상태이기 때문에, 각자의 스트레스로 서로에게 영향 주지 않을 수 있었던 것.


불치병이 낫고,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던 꿈을 이루는 것만이 기적이라 생각하면 삶이 슬프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런 일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일상에서, 사소한 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 역시 우리가 정말 염원하는 일 아닌가요?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는 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힘,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해소할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싶어서이기도 하잖아요.


스트레스받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게 얼마나 대단하고 감사한 기적인지, 꼭 같이 나누고 싶었어요. 이 사실을 모르면, 우리가 보내는 매일이 지루하거나, 의미 없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의미를 찾을 때 삶의 가치를 느끼니 말이에요!


여러분의 하루에, 어떤 소소한 기적이 있었나요? 똑같이 반복되는 의미 없는 일상이 아니었다는 걸 꼭 알아차리는 시간을 가지시면 좋겠어요. 소소하게 보이는 그 현상이 기적이라는 걸 느낄 때, 어떤 감정이 느껴지시나요?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꼭 느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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