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1일 루나 디톡스: 하루를 마무리하는 감사함명상 에세이 #18
저녁이 되도록 졸릴 수가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눈꺼풀에서 잠이 떨어지지 않는 느낌. 솜뭉치처럼 몸이 무거운 날이에요. 미용실에 가서 커트하는 동안에도 피곤하고. 그림을 그리려고 일정을 비워놨는데, 도저히 그릴 수가 없어요.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와요. 물에 푹 젖은 솜뭉치처럼 너무 무거워서, 짜증에서 화로 옮겨가지조차 않아요.
'몸이 안 따라준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지.'
좋아하는 작가의 화집을 펴놓고 감탄하다가, 그 사람처럼 좋은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종이에 끄적이다가 또 접었어요. 잠을 자기에도 이미 늦은 오후가 되어 있었죠. 도저히 오늘은 아닌가 보다 싶어서, 빵을 구웠어요.
빵 구울 기운은 어디서 나오냐고요? 빵 굽는 건 생각보다 큰 힘이 들어가지 않아요. 느릿느릿 반죽을 만들고 면보를 덮어서 기다리면 발효가 돼요. 발효된 반죽을 조금씩 떼서 예열된 오븐에 넣고 기다리면, 노릇노릇 구워지는 거죠. 어려운 게 없어요.
혼자 먹을 거니까, 많이 만들 필요도 없고 예쁠 필요도 없어요. 햄프시드, 치아시드, 해바라기씨를 섞어 반죽에 묻혀놨더니 못난 듯 예쁜 것도 같아요. 어떻게 보면 안 그래도 못난 게 더 못나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게, 세상 다른 것들과 다 똑같네요.
뽕뽕 빵에 뚫린 구멍은, 발효가 잘 되어 빵이 숨 쉬고 있다는 뜻이에요. 생긴 건 못났지만, 살아있는 빵!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어요.
식사하는 사이 식은 빵을 먹어보았어요. 캐슈 치즈를 발라서요. 캐슈 치즈에 메이플 시럽 같은 걸 섞어볼까 했는데, 단 걸 먹고 싶진 또 않더라고요. 단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상하죠? 빵이 폭신하면서도 두툼해서, 하나만 먹었는데도 포만감이 굉장했어요. 다 먹고 나니, 더 졸린 것 같아요.
뭔가 하려고 할 때,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어요. 자책하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그래도 뭔가 해야지,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생각, 그래가지고 어떡하려고, 하는 미래에 대한 걱정까지. 부정적인 생각들이 구름처럼 몰려와요. 그럴 땐 감사함을 애써 찾진 않아요. 찾으려 해도 부정적인 생각의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거든요. 습하고 불쾌한 느낌에 젖어 감사함 특유의 산뜻함이 느껴지지도 않고.
대신 눈을 감고 숨을 쉰답니다. 코끝으로 들어오는 숨, 나가는 숨.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걸 보니, 다른 날에 비해서 코가 좀 막힌 것도 같아요. 그러고 보니 날씨도 흐리고 습해요. 아침엔 전날보다 춥다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아!
몸이 솜뭉치가 된 건 날씨 때문인 것 같아요. 몸이 좋지 않거나, 게을러서가 아니고. 원인을 알고 나니까, 몸을 탓하지 않게 됐어요. 날씨가 좋지 않은데, 못난이 빵이라도 구울 수 있는 몸 상태니까 그건 그것대로 다행이에요.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일은, 감사할 수도 있는 일이에요. 많을 다, 행복할 행. 행복함이 많다는 뜻이잖아요?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지만요. 다행이다, 는 느낌이 감사함으로 이어지면, 다행이라면서 안도한 뒤 '그치만,' 하면서 불안으로 이어지는 부정적인 감정을 끊어낼 수 있게 돼요.
결국 그림은 종이에 선 몇 개 끄적인 게 다였어요. 숨을 잘 쉬고, 잘 자면 몸은 또 가벼워질 거예요. 그리고,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겠죠.
오늘의 날씨는 여러분의 몸 상태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기분은 어떠셨나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었을 오늘 하루의 경험. 그 가운데, 감사했던 것이 있으시면 마음에 환한 달빛처럼 품어보세요. 어제도 달이 예뻤는데, 오늘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모두, 마음 평온한 토요일 밤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