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반티카 May 22. 2024

불편 사항도 상냥하게 말하면

2024 21일 루나 디톡스: 하루를 마무리하는 감사함명상 에세이 #15




동네 스포츠 센터를 이용하고 있어요. 시설도 깨끗하고, 직원 분들과 이용하시는 분들 모두 좋아요. 그런데 가끔은 불편한 일이 생겨요. 이건 샤워장에서 오늘 겪은 일이에요. 


샤워하는 도중에, 누군가 와서 다짜고짜 제가 사용하고 있는 자리에 본인의 물품을 놓고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천천히 해.“ 


말투는 더없이 부드러웠지만, 무례한 행동과 일치하지 않아 이상하고 찜찜하게 느껴졌어요.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너무 천연덕스러워서 황당하고, 그다음엔 무례하게 느껴졌어요. 샤워 다 하시면 그 자리에서 해도 되나요, 미리 물품을 놔도 될까요. 그렇게 물어보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 거예요. 물론, 자리 선점이 금지되어 있어서 그마저도 적절한 행동은 아니에요. 


샤워할 때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순서가 오는데, 그걸 못 기다리고 그렇게 와서 눈치 줄 일인지. 마치 그 사람이 미리 와서 쓰고 있던 자리에 제가 끼어들어 샤워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어요. 


샤워를 거의 다 하긴 해서, 쓰세요, 하고 자리를 비켜주었어요. 서두르고 싶지 않았는데 서둘러야 하게 된 것이 불쾌하기도 했어요. 불편하니 그러지 마세요, 바로 얘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죠. 그렇지만, 이렇고 저래서 불편하다는 얘기를 듣고 미안합니다, 하고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할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거든요. 


예전엔 그런 상황이 생기면 얘기를 반드시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러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보니, 그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할 일이란 걸 알게 됐어요. 듣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듣지 않는데, 붙잡고 얘기해 봐야 소용이 없거든요. 화난 상태로 얘기하면 안 해도 될 말까지 하게 될 때도 하고, 혼자서 진이 빠지기도 하고요. 말도 아끼고, 상처도 덜 받을 수 있는 방법이에요. 


그래도 여러 사람이 쓰는 시설이니까, 직원 분에게 이야기하기로 결심했어요. 이런 일로 다른 사람들도 불편함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기분 나빠하면서 혼자 꽁하니 집에 와버리면 그대로 기분 나쁘게 하루를 낭비하게 될 수도 있고, 무언가가 개선될 여지도 사라지잖아요. 


화를 내거나, 불만을 쏟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선을 위해 이야기해야겠다고 확실히 다짐하며 접수처에 갔어요. 


"불편 사항은 여기서 말씀드리면 될까요?"

"무엇 때문에 그러세요?"


펜을 들고 들을 준비가 된 직원 분에게 오늘 있었던 일과, 지난 한 달 동안 누군가의 자리 맡기 때문에 겪었던 또 다른 불편 사항에 대해서 차분하게 이야기했어요. 개선을 위해서 이야기하는 거라는 확실한 다짐 덕분인지, 내가 이런 일을 왜 겪어야 되냐, 고 따지지 않을 수 있었죠. 


"많이 불편하셨죠. 자리 선점 관련한 문제가 많아서, 저희도 안내문에 붙여놨는데도 계속 그러네요. 이런 일이 또 없지는 않겠지만,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생기면 그분에게도 불편하다고 이야기를 해주세요."


직원 분의 표정과 말투에서, 제가 겪은 상황이 정말 불편했겠다는 것을 공감해주고 계시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업무 일지에 꼭 써서 개선될 수 있게 전달하겠다고 말씀도 해주셨고요. 제 뜻이 제대로 전달이 되었다고 느껴지니, 직원 분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근무하는 동안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 피곤할 수도 있는데, 제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었으니까요. 


인사를 하고 돌아서면서, 그냥 넘기지 않고 말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당사자에게도 불편한 건 불편하다고 얘기하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불편한 걸 어떻게 이렇게 상냥하게 얘기할 수 있었지?'


예전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거든요. 욱해서 격앙된 말투로 내가 이런 불편함을 겪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냐, 그 사람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고, 어쩌구 저쩌구 어쩌구 저쩌구, 다다다다 쏴댔었을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상냥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요? 




그건 바로, 오랜 명상 수련 덕분이에요. 하던 대로 반응하기 전에,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살펴보니 바로 욱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게 나 자신과 스포츠 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 일하는 직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할 수 있었죠. 그리고, 내 안의 생각이나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충분히 호흡하면서 직원 분에게 필요한 이야기만 할 수 있었어요. 


불편 사항도 상냥하게 말하면, 듣는 직원 분도 같이 욱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어요. 제가 부드럽게 얘기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들어주신 직원 분도 제게 귀 기울이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여유가 더 있으셨을 거예요. 물론, 제가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친절하고 능숙하게 대응하셨을 수 있지만요.


매일 거울을 보면 내가 내 얼굴에 익숙해져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할 때가 있죠? 매일 나 자신과 붙어있으니, 돌아보지 않으면 과거의 나로부터 지금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제대로 느끼지 못해요. 오늘은 불편했던 점에 대해 경청하고 도움을 준 직원 분에게도 감사하고, 꾸준한 명상 수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화라는 감정을 바이러스처럼 옮기지 않을 수 있었던 제 자신에 대한 감사함도 느꼈어요. 자랑스럽기도 했고요! 이렇게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생길 때, 언제든지 스스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반응이 아닌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제게 주어진 명상이라는 선물이 감사해요. 




오늘이나 최근, 불편했던 부분에 대해서 내 생각, 감정과 거리를 두고 상냥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적이 있으신가요? 또는,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 상냥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적이 있으셨는지 돌아보세요. 



내가 언제나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또는 과거의 나보다 성장해서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것인지도 찬찬히 보세요. 그렇게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어떤 노력을 기울이셨었나요? 나의 노력을, 인정하고 칭찬해 주실 수 있나요? 



노력하고, 성장해 온 나 자신을 칭찬해 주는 기분 좋은 밤 보내시기 바랍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내게 좋은 변화를 가져오는 명상을, 직접 만나서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앞서 공지드린 바 있었던, [멈추어, 봄] 반나절 명상 리트릿. 이번주 일요일, 서울 성북동 사월한옥에서 열려요!



아름답고 고요한 공간, 사월한옥에서 열리는 세 시간 명상 리트릿입니다! 


명상 경험이 없어도 쉽게 해 볼 수 있는 명상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아직 한 자리 남아 있으니, 명상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신청서 내용 보시고 신청해 주세요 =) 


리트릿 구글폼 신청서:

https://forms.gle/rcnTyEdchnrL63fw5

 



이전 14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