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 명상 에세이, 21일 루나 디톡스 #18
10년, 아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있다 못해 넘쳐났다. 예쁜 외모를 가진 연예인(만큼 예뻐지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문장이 뛰어난 작가, 기깔난 가사로 히트곡을 제조해 내는 작사가, 아름다운 요기니, 깨어있는 의식을 가진 명상 수련자이자 선생님. 눈부신 성과, 업적을 가진 사람들이 빛나보였다. 나도 빛나고 싶었다. 그래서, 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그를 롤모델로 삼고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그 사람의 사진을 붙여놓거나, 그 사람의 작품을 계속 보거나 듣는다던지, 수업을 들으러 계속 간다던지 하면서, 그처럼 되기 위해서.
시간이 지나면서, 롤 모델이 누구든 그와 똑같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슷하게 된다고 해도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사진을 들고 가서 이 사람처럼 만들어주세요, 하고 성형수술을 한대도 그 사람과 똑같이 생긴 외모로 다시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방탄소년단의 지민을 너무 좋아해 그처럼 고쳐달라고 몇 번이고 수술을 했다는 백인 청년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가 수술 전에는 어떤 외모였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추측컨대, 백인 청년의 예전 모습에는 그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나 고유한 개성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얼굴은 글쎄, 안 본 눈을 사고 싶을지 모르니 굳이 검색해 보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점을 언급해 둔다.
다시 주제로 돌아오자. 아주 많이 노력해서 되고 싶은 사람과 얼추 비슷한 실력을 가지거나 하게 되더라도, 그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지쳐서 그 뒤엔 그냥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을 가진 적이 많다. 그러면서 뭔가 이뤘던 것도 흐지부지되고, 나중엔 그게 정말 이룬 것이었는지, 왜 애초에 그걸 향해 그렇게 달려갔었는지를 자문하게 되었다. 그리곤 느끼는 것이다.
'세상은 너무 허무해.'
그리고 스스로 뼈를 때려보자면 (다소 무자비하지만 남한테 맞는 것보다 낫다), 되고 싶은 그 사람이 들인 만큼의 노력까지는 한 적이 별로 없기도 하다. 어느 정도까지 해보고 안 되겠다 싶을 때 그만두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다.
'아, 역시 안돼.'
그런 패턴으로 뭔가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예상치 못했던 무언가가 되어 있기도 하지만 (무언가는 항상 되어 있다), 그에 대해서 심드렁하게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령 타인이 볼 때는 그게 대단해 보일지라도, 스스로 느낄 땐 같아지지도 않았고 만족스럽지도 않고 실패한 것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노력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다. 들일 수 있는 만큼의 노력과 시간, 집중과 비용은 들였다. 그런데 결과가 이것뿐이야, 하고 자문하게 되는 지점에서는 어떤 과정을 지나왔는지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되어있는지는 물론이다. 목표라고 생각하고 달려온 곳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니, 또 떠나고 다른 목표를 찾아 떠난다. 그리고 또 비슷한 과정과 생각과 느낌이 반복된다. 어딜 가나 비슷하게 심드렁해진다.
왜 그런 악순환이 반복될까? 이유는 간단하다. 목표 이상의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만큼 예뻐지는 것, 그 사람만큼 잘하는 것 이상의 목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뻐지고 잘하게 되어서 도대체 뭘 할 것인가? 그게 중요한 건데, 그걸 늘 빠트린다. 그리고 스스로를 못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만든다. 그게 나라는 사람이 가진, 습관이다. 무서운 건, 이런 습관이 이것 하나가 아니라 더 많다는 것이겠지만. 단정해 보이는 삶은 뚜껑을 열어보면 엉망진창이다.
단정하고 완벽히 정리된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원했다. 좋아 보이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그 마음으로. 하지만 삶의 모든 순간은 언제나 지나가는 과정이라,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노력을 하다 힘이 빠지고 빠져, 더 이상 누군가가 되기를 원하지 않게 되었다. 되고 싶은 사람이 없게 된 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우러러보는 사람도 딱히 없다. 그저, 존중하는 마음을 가질 뿐이다.
누군가를 열의를 다해 좋아하며 그 사람이 요즘 뭘 하는지 소셜 미디어에서 체크하거나 공연이나 작품을 쫓아다니는 팬의 마음 같은 것이 없다. 자본주의에선 그런 관심과 팬덤을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도 그런 마음이 없어진 다음에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구를 봐도 그가 유독 눈부시거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 사는 게 무슨 재미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후광' 필터가 벗겨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을 보는 것이 재미이다. 어떤 현상을 볼 때 나에게는 이렇게 보인다고 얘기해 주고, 당신에겐 어떻게 보이냐, 어떻게 생각하냐 물어보고 의견을 듣는 것이 재미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본 적이 없다면서 놀라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에 그게 또 재미있다. 더 나아가서는 나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후광 필터가 벗겨진 뒤에야 알게 된다. 사실은, 나를 포함한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는 것을. 아, 미세한 빛들의 파동을 볼 수 있는 시야가 트여 얼마나 감사한지.
애씀을 놓고, 놓고, 또 놓고, 숨을 쉬고, 쉬고, 또 쉬고. 무언가가 되기 위해 절박하게 노력하던 내가 사라진 자리에는, 무언가가 되지 않을 자유를 누리는 내가 있다. 외부의 요소로부터 덜 영향을 받는, 순수한 무엇을 나누는 내가 있다. 그런 내가 좋다. 모두가 그 선택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할 수 있다고 해서 꼭 하리란 법은 없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자유를 선택하고 누려보았으면 한다. 그러면, 전에 맛본 것과는 또 다른 맛이 삶에서 느껴지면서 그 풍미가 더 깊어질 테니까.
| 당신을 위한, 당신의 명상 |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보신 적이 있나요? 꼭 특정 롤 모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도, 더 나은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서요. 그런 적이 있었다면, 그 과정은 어땠나요? 즐거웠나요? 결과를 소중히 하게 되었나요?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지금의 내가, 좋으신가요?
나의 재능 (gift)는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가요? 그 일을 할 때,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
그 일이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면, 그런 일엔 무엇이 있을까요?
단순 단기 목표를 넘어서는 장기적이고 다차원적인 목적을 가지고 계신가요?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을 향해 가는 원동력이 되는 생각과 감정은 무엇인가요?
목적이 있든 없든, 지금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시나요? 심장 위에 손을 얹고 숨을 쉬며 정말로 그런지 느껴봅니다.
나를 느끼며 지금 있는 자리에 있게 된 나를 축하해 주세요. 그리고, 지금껏 비운 것과 가지게 된 것, 지금까지의 삶의 여정에 감사함을 느껴봅니다.
소리 내어, 또는 속으로 스스로에게 이야기해 주세요.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당신은 지금 이대로 충분합니다.
있는 그대로, 반짝반짝 빛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트를 꾸욱 눌러 출석 도장을 찍으세요. 명상 중 마지막 두 문장은,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들려주시면 더 도움이 되실 거예요! 믿거나 말거나, 효과가 정말로 있답니다. 그렇게 느끼지 않는데 억지로 믿으려 할 필요는 없지만, 그런 마음이더라도 효과가 있어요. 진심을 담아서 얘기해 주면 100만 배 효과가 있습니다 (약장수 같지만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찾아내신 보물 같은 감사함은 댓글로 나누어주셔도 좋습니다. 저에게는 연재를 이어가는 힘이 되고, 다른 독자 분들에게는 이런 부분에도 감사할 수 있구나, 하고 시야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